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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25. 2019

평온한 인내

모두 다르게 보이는 사물들, 상황들, 그 속에서 공감과 연대

두 장의 사진은 같은 풍경을 찍은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관점을 '프레임'이라고도 한다. 프레임은 개인 혹은 집단이 갖는 세상을 보는 '창' 같은 것이다. 사진은 자동차의 '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피사체와 내 마음 사이에 어떤 창이 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벗들이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관계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모르겠다. 도무지 진실이 어디 있고, 팩트가 무엇인지, 복수의 이해당사자가 생각하는 인과관계를 통약 불가하게 정초 할 수 있는 것인지. 세상은 모호함 덩어리다.


두 장의 사진은 전적으로 같은 피사체를 찍은 것이다. 어떤 필터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보인다. 필터, 즉 거름 장치가 곧 프레임이다.


이렇듯 너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다른데, 혹은 다르게 보이거나 의도적으로 다르게 보는데, 뭔가 한 가지 기준으로 옳으니 그르니 따져봐야 답은 나오지 않고 답답하기만 할 거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는 한 가지라고 말한다. 절대자의 설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겠지. 주로 종교에서 보는 방식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도 그러하다. 내 관점을 말하라 하면 세상을 보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관점은 없다는 것이다.


그냥 무엇이 많아서 다양한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객체가 고유성과 개별성을 뽐내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서로 다름'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존중되거나 최소한 차별하지 않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선택지가 아닌 필수 사항이 되고 있지 않은가. 전에 한 번 이야기한 바 있는데, 젊은 시절의 나는 원칙적이며 비타협적이었다. 탄압을 견디고 운동의 논리를 세워야 했던 엄혹한 시기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봐도 꽤 유연하다. 최근 만난 친구도 '50대 남자'로는 드물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이 가혹하고 개선의 조짐이 없을 때,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전망을 세우는 일조차 절망적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매일을 우울에 잠겨 세상을, 정치를, 교육을 냉소하고 있을 수야 없는 노릇이다. 지금 당장 현실을 가치 있게 살지 못하면서 미래를 기약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현실 회피의 수단일 뿐이다.


오히려 내 걱정은 집 밖에서든 안에서든 반짝반짝 빛났던 유머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주변과 평화를 유지하고, 가혹한 현실을 견디는데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낙천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주 이야기하는 '평온한 인내'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상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는 낙천성에 기반한 평온한 인내의 결과로 주어진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마다 타고나는 성향일까. 가정환경이나 부모, 사회경제적 조건에 많이 영향을 받으며 성격이 진화한다는 것이야 설명이 필요 없는 사항이다. 타고난 성향이나 개인의 기질에 따라 정해지는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그렇게만 보면 인생이 너무 허무해진다. 현실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대개 성격을 분류하고 기질을 분석해 준다는 이런저런 유사 심리학에 끌린다. 기질 분석에 과잉 의존하는 것은 '고유한 나'에 대한 애정에 앞서 갖지 않아도 될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난 어린 시절, 청소년기, 청년기를 행복하게 보내지는 않았지만 유머를 잃지 않으려 했다. 가혹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논리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려 노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낙천성, 평온한 인내 같은 것들이었다. 막연하게 '잘 될 거야'가 아니라 '잘 되는 쪽'을 상상하고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흐린 하늘조차 파랗게 보고 싶은 것은 내 욕망이다. 그러면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된다. 왜곡이라 할 수 있겠지만 빛과 색을 보는 것은 마음과 뇌의 작용이다. 그것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없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보이는 사물들, 상황들, 그 속에서 공감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 현실은 여기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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