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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10. 2019

진부한 평온

보잘것없는 일상의 순환에 겸손하기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강이 있다는 것은 서울을 서울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큰 강에 붙어 남북으로 흐르는 지류는 내가 자주 걷는 곳이다. 사진에서 보는, 지류 양쪽으로 높다랗게 솟은 건물들은 모두 주거지다.


어제 교육부 일정 소화하고 사무실로 복귀하여 컴퓨터를 켜니 밀린 결재가 줄줄이 나온다. 마치도 상자를 열었을 때 내용물이 무질서하게 쏟아지는 격이다. 하나씩 살펴보고 결재를 완료하니 퇴근 시간이 꽤 지났다. 책을 몇 줄 읽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강변으로 나갔다.  

낮엔 무더웠지만 화창했고 하늘엔 조각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는데, 밤이 되니 조각들이 모두 모여 하늘을 덮었다. 피곤에 지친 여행자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는 모양이다.


내가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지류 저 편은 온통 논이었다. 오거리는 서울의 대표적인 변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 밀집지역이 됐고, 주거지로는 가장 높은 육십몇 층짜리 건물이 솟아 있으며, '교육 일번지'(사실은 사교육 특구)로 변모했다. 교육청으로 전직할 때까지 그곳의 학교에서 근무했었다. 가르치는 아이들과 사이가 나쁘진 않았지만, 그 동네는 나에게 늘 이질감으로 다가와서는 "야, 촌놈!"이라고 부르는 듯했다.



그런데 가끔 그쪽에 가보면 묘하게 익숙하다. 존재가 인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맞다. 우린 항상 자기 처지에서 말하고 주장하고 싸운다. 가끔은 타인이 되어 나를 응시하는 훈련이 부족한 탓이다.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타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사려 깊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타인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마치도 내가 받는 고통처럼 느끼고 아파하는 것이다. 때로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모종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이른바 사회적 참여다.


이런 잡스런 생각을 하며 구름을 쳐다보았다. 시간과 공기의 흐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바뀐다. 종종 구름은, 나를 멍 때리게 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혹은 가벼운 상념으로 구름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내일 활동할 에너지를 준다. 긴장을 푸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이 잠을 자야만 몸이 쉬고, 그 사이에 키도 크고, 힘도 비축하는 이치와 같다.


어제 인간의 삶이란 컴퓨터를 리셋하듯 새 출발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썼다. 어쩌면 오늘부턴 잘 살아봐야지 하는 많은 벗들에게 실망을 주는 글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쩌랴. 새 출발을 하든, 개과천선을 하든 그 모양과 질은 그동안 자신이 축적해온 경험의 연장일 뿐이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 여기에서 현재화할 능력이 없이 왕년을 들먹이거나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공허하다.


늘 그렇듯, 아침 출근 직후 업무결재 시스템을 열면 결재할 거리들이 줄줄이 소시지 딸려 나오듯 할 것이다. 그러면 침침한 눈을 비비며 깨알 같은 텍스트를 보겠지. 그런데 이렇게 아침을 시작해야만 점심이 오고, 저녁이 온다. 그래야 난 또 식사를 하고 강변으로 나가 흐르는 구름을 쳐다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건조하고도 진부한 흐름이다. 


그런데, 나이 좀 들었다고 건조하고도 진부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겠더라고. 이 보잘것없는 순환 앞에 겸손해지는 것, 그게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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