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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Feb 14. 2023

지상의 방 한 칸

읽고 쓰는 데 불편함이 없었던 나의 작은 공간 

2년 반 만에 서울로 이동을 해야 해서 방을 내놓았다. 방이 새 주인을 찾을 때까지 부동산을 통해 방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다. 내가 살고 있던 방을 그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또 부동산 직원과 새로 들어올 분들이 여기저기 훑어보는 것도 당연히 기분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임차인으로서 들고 나는 룰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방을 최대한 정리해서 깨끗한 상태로 보여주는 편을 택한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서식처는 입주 이래 가장 깨끗하다. 평소에 이렇게 하고 살았으면 삶의 질이 좀 높았을까. 워낙 새로 지은 오피스텔에 들어왔으니 조금만 정리해도 깔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처음 이 도시에 내려와서 일 년을 산 곳은 거실과 방이 별도로 있는 제법 넓은 오피스텔이었다. '투룸'이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혼자 지내기에 충분했고 17층이라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어서 큰 불만은 없었다. 

겨울에 꽤 추울 때 난방이 고장 나서 관리사무소에서 몇 번이나 올라와 수리한 적이 있다. 고치고 내려가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니 자꾸 직원들을 부를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에는 마치도 '진상 입주자' 같은 눈초리를 받았을 정도다. 원인은 직원들이 난방 배관을 반대로 연결했기 때문에 고쳐도 개선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중에 이를 발견한 직원이 멋쩍게 웃던 것이 기억난다. 난방이 제대로 되니 살만했다. 


동료들이 임대료엔 '뷰' 값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한 해를 지나고 여름이 돌아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 설치된 에어컨이 시간제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밤 11시면 에어컨이 중지됐다가 다시 아침에 틀어주는 방식이었다. 열대야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새벽에 잠을 못 잤는 데 동향에 넓은 창문까지 있어서 아침에도 햇살이 뚫고 들어와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에 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처럼 강렬한 빛에 노출된 고독한 도시인이 됐다.

시간제로 나오는 에어컨인데도 관리비는 그 동네에서 가장 높았다. 직장 동료들이 호수 전체를 조망하는 값이라 했다. 설상가상 일 년이 지나니 임대료도 올려달라 했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해 110만 원 이상을 내야 할 상황이었다. 방을 옮기기로 했다. 사실 내가 살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사'다. 규모가 작든 크든 이사 가기 한 달 전부터 이사 가는 날까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후천성 이사 면역 결핍증' 
체질이다.


아무튼 그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결행했다. 문제는 계약 기간 때문에 열대야를 다 견디고 가을의 초입에 이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2년 반 이상을 이 도시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난 무조건 아파트를  선택했을 것이다.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단기 거주는 오피스텔, 장기는 아파트가 편하다. 오피스텔에는 냉장고, 세탁기 등 빌트인 상태라 준비할 세간이 별로 없어 좋은 대신 워낙 공간이 좁으니 살 수록 답답함을 느낀다. 아파트는 몇 가지 가구와 가전제품을 사야 해서 재정 지출도 있고, 품이 들어가는 대신 공간이 확보되니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 

지금 이 집에서는 일 년 반을 살았다. 방은 하나지만 조금 넓은 집인데 부동산 사람들은 이런 곳을 1.5룸이라 불렀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해서 지난번 살던 곳에 비하여 30만 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 대신 승용차로 출퇴근했다.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 갇힌 느낌이라 편안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큰 불만 없이 살았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글을 썼다. 다음 주 초에 선 보일 새책도 그곳에서 썼다. 한 걸음만 나가면 금강변이라 하루에 꼬박꼬박 1만 보를 걸었다. 먹고 자고 쓰고 걷는 생활의 무한루프였다고나 할까. 


거의 매일 걷다 보니 봄을 맞아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여린 새싹을 볼 수 있었고,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눈이 트이고 연두색 이파리가 나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비가 몹시 온 날 우산을 쓰지 않고 호기롭게 걸어보았으며 눈 쌓은 산책로를 걷는 사치도 부려보았다. 캐나다 단풍을 유난히 많이 심어 놓았던 강가에서 갈색으로 변해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단풍잎도 보았다. 꽤 많은 종이 있었던 작은 장미원에도 초여름부턴 장미가 흐드러질 것이다. 2년 반 동안 열 번의 계절이 바뀔 때마다 깊이 살폈고, 사진도 많이 찍어 두었다.


이제 곧 이곳을 떠날 것이다


물론 가끔 적응이 되지 않는 날이 있다. 대체로 주말에 서울에 올라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내려왔는데 오자마자 방 청소에 세탁, 재활용 분리배출을 하고 일주일 입을 셔츠 다림질까지 대략 2시간이 걸렸다. 보통 저녁을 간단히 먹고 강변을 산책하면 충분했다. 그런데 가끔 이 루틴이 깨지면서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넷플릭스 영화도 시큰둥한 그런 날, 누군가를 불러내는 것도 귀찮고, 걸으러 나가기도 싫은 묘한 일요일 저녁 시간 말이다. 쓸쓸하고 허전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피곤한, 아마도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기분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오늘도 방을 보러 올 사람들을 위해 조금 일찍 일어나 방을 정돈하고 나왔다. 책은 모두 박스에 넣어 한쪽 구석에 밀어 놓았고, 평소 소파에 올려두던 옷가지는 붙박이 장에 구겨 넣었다. 침대 시트도 가지런히 정리했다. 나머지 소품들도 줄을 맞추거나 벽에 바짝 붙여 방을 최대한 넓게 보이게 했다. 실내화는 방 쪽으로, 운동화는 바깥쪽으로 나란히 놓았다. 눈에 보이는 영역만큼은 나무랄 곳 없이 깔끔하다. 낮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면 비번을 알려주고 낯선 이들이 방을 열람하는 것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박영하의 소설 '지상의 방 한 칸'이 생각났다. 겨우 다락방 하나를 얻어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제 몸 하나 누일 곳을 찾아 돈을 벌고, 먹을 것을 구하며 삶을 유지한다. 분명 나에게도 그러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반지하부터 다세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살아 보았다. 물론 지금은 썩 풍요롭진 않아도 불편한 삶은 아니다. 정년을 앞두고 오랜만에 혼자의 생활을 이어갔던 2년 반,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 기간 동안 가장 편안했던 시간은 토요일 오후 서울집에 있을 때




몸글에서 언급한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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