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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n 03. 2023

한 점 하늘 김환기

읽고 쓰며 걷는 일상을 꿈꾼다. 어디선가 청하면 그곳에 가서 독자들을 만나고, 담백한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상상을 한다. 가끔은 미술관에 가서 느릿하게 작품을 감상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설렘이 있는 삶이다. 업무 일정 중에 잠시 짬을 내어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회에 다녀왔다. 김환기 화백에 따라붙는 기록과 수식어는 꽤 많다. 먼저 그는 한국 작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1971년 완성한 푸른색 전면점화 ‘우주(Universe 5-IV-71 #200)'는 2019년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낙찰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우주'는 작가의 뉴욕 시절 주치의었던 김마태 부부가 40년 넘게 소장한 그림이었다. 김환기를 마지막 병상까지 보살핀 후원자가 구입했다는 것, 김환기가 남긴 유일한 두폭화라는 점 등으로 인해 희귀성까지 갖춘 그림이다. 국내 미술품 가격 상위 10점 중 9점을 김환기가 그렸다. 이것만으로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로 충분하다. 


'우주' 그림 앞에서 넋을 잃고 보았다. 가까이 갔다가 또 물러나기를 몇 번, 그림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두 폭 그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어느 한 점으로 수렴하는 듯하면서도 광활한 우주에서 운행하는 촘촘한 별을 연상하였다. 그림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적이 드문데 확실히 이 그림에는 '기운'이 있었다. 많은 관람객들이 '우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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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Universe 5-IV-71 #200)

'산과 달'도 그렇고 김환기는 신비로운 느낌의 청색을 많이 썼다. '환기블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특히 말년에 그렸던 점화에 쓴 청색은 환기블루의 절정이었다. 노동이 아닌 그림은 없다. 캔버스 안에 무수한 점을 찍어 완성한 그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엄격한 '노동의 시간'. 분명히 보는 사람까지 노동을 체감하게 하는 몰입감이 있다. 


무수한 점은 그리움인 듯하다. 한편으론 예술가의 집념이다. 한국에서 평탄한 삶을 뒤로하고 뉴욕을 향했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술가로서 자기 세계를 분명하게 구축하는 것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그의 뉴욕 생활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과정이었다. 뉴욕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는 그림을 그렸고, 일기를 썼다. 육필을 보면서 마음이 아렸다. 


산과 달


거장의 그림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정하게 손을 모으고 인증샷을 찍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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