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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08. 2023

후반전

복잡한 시스템에 붙박인 삶

내 직업 생활 후반전은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이다. 정년을 앞두고 조금 여유를 부려볼 만도 하지만 상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두세 개가 대기하고 있고, 업무 외 대화를 해본 것이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단순히 바쁘기만 하면 좋겠지만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고도의 긴장 속에서 보낸다. 시종 법과 규정을 다투고, 의원들의 날 선 질문에 답하며, 기자들을 무리 없이 상대하는 일은 무거움과 임기응변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해야 할 말을 적시에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것, 언뜻 쉬워 보이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신줄을 놓지 않아야 한다. 종종 이 구분은 모호하게 다가오지만 한마디 말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내뱉는 말은 차분해 보여도, 머릿속에선 몇 개의 CPU가 광속을 달린다.
짬짬이 읽는 책, 쓰는 몇 줄의 글은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에서 나온다. 바로 지금, 주말 이른 아침 시간 같은 것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여유 넘치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더 편안한 선택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느 순간 개인
이 아닌, 복잡한 시스템에 붙박인 삶이 됐다. 중세의 무사가 그랬을까.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를 긴장감에 온신경을 자신이 품고 다니는 칼에 집중하고, 긴장된 삶을 살았던 풍운의 검객 같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우습다. 하긴 누구의 삶도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이거늘.


축구 경기를 봐도 후반전이 바쁘면 극적으로 이기든, 지든 멋진 승부가 나는 것 같더라고. 


Real Salt Lake gets 2 second-half goals, beats Montreal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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