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Feb 04. 2024

가르치기, 훈육하기

교사는 삶 속에서 살아 있는 교육의 의미를 계속 증명하는 사람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The tone of teaching)'를 쓴 반 매넌(Max van Manen)은 한 영어 교사가 교실에서 있었던 학생과의 대치 상황을 예로 들어 ‘가르치는 행위의 적절한 거리’를 설명한다. 읽기를 거부함으로써 교사에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아이를 두고 교사는 분노하거나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읽을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교사는 소설책 몇 권을 골라 학생의 책상에 조심스럽게 놓아두고 학생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학생은 성의 없이 의자 끝에 걸터앉아 몇 페이지를 넘기지만 교사는 돌아서서 수업을 진행하였고, 몇 분 후 학생은 스스로 책을 읽는다는 일화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지시나 권유를 거부할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동기가 있다. 공부를 잘하여 늘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아이는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서 인정을 받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학습 성취로 인정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든 아이에게 교사는 저만큼 먼 거리에 있다. 이들에게 교사는 스스로 다가서기 힘든 존재이고, 이른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반 매넌은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아이와 인격적으로 교감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어떤 아이에게는 이렇게, 또 다른 아이에게는 저렇게 하는 방식으로 교사가 ‘맞춤식 대응’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필자 역시 사춘기의 절정에 있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절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시험에 빠졌다. 노골적으로 수업을 방해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특징은 일탈 과정에서 반드시 교사의 반응을 살핀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반응을 살펴가며 일탈 과정을 보이려 한다는 점 때문에 교사는 더욱 자존감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당 학생을 제압하여 교실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기도 한다. 만약 반 매넌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사려 깊은 사람은 경박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더 예민하고 그래서 더 섬세하다. 교육적 판단은 성찰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과거의 경험을 숙고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즉각적으로 해야 하는 것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감지’하면서 형성된다. 교육적 판단은 학생에게 귀 기울이고, 학생을 인식할 줄 아는 능력에 기인한다. 가르침에 대한 감각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임기응변적’이다.(가르치는 것의 의미, 74-75쪽)


순간적으로 중요한 것을 ‘감지’한다거나, 가르침에 대한 감각은 기술이 아닌 ‘임기응변’이라고 말하는 반 매넌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린 오랜 세월 ‘행동적 수업목표’를 명확하게 내걸고 가능한 수업을 정교하게 계획하고 계획한 대로 실행하여 기왕에 내걸었던 목표에 맞는 평가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렇게 실천해왔다. 그러하기에 교사는 아이들이 수업을 방해하면 무엇보다 ‘계획된 수업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다.

많은 교사들이 어느 날, 어느 시간에 가르쳐야 할 내용이 구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판단할 때 수업과 수업 외의 것을 구분한다. 한 단위마다 설정한 수업의 목표를 최선을 다해 달성하고 싶은 교사는 가르쳐야 할 것과 배제해야 할 것을 구분하려 들 것이다. 혹시 이 경계를 너무 확고하게 사고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 수업과 수업이 아닌 것의 경계는 때로 모호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예측할 수 없는 교실 상황에 노출돼 있다. 옆 반에서 경험한 사례가 이 반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르고 무엇보다 교사와의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는 배려와 민감성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민감성을 설명해주는 교육학 관련 책은 거의 없다. 왜 없을까? 이것은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시나 일화를 통해 우리는 교육학적 민감성을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교육학적 민감성이란 상황을 감각적으로 아는 것(sensitivity), 상황에 맞추는 것(attunement)이라고 생각한다.(78쪽)     


교육학적 민감성은 교사의 감각을 통해 학생을 만나려는 자세이다. 교사가 단순한 지식을 전달자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보고 듣고 만지면서 학생이라는 존재와 맺는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특별하게 발휘되는 것이다. ‘얼핏’ 보이는 것은 교육적 관계가 형성되는 영적인 순간이다.(같은 책, 82쪽) 진정한 교육은 총체적 존재로서 어린이가 세계를 체험하도록 누군가가 세심하게 조율해 주는 것이다.(같은 책, 83쪽)


‘훈육(discipline)’의 사전적 의미는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쳐 기름’이다. 일상에서는 규율이나 태도를 바라게 익히도록 엄하게 가르칠 때 훈육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반 배넌은 교육 행위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훈육의 의미를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훈육이 교실을 질서정연하게 유지하는 방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교사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식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삶 속에서 그들의 사랑을 계속 증명해야 하듯이, 교사는 삶 속에서 살아 있는 교육의 의미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같은 책, 93쪽)     


교사는 ‘삶 속에서 살아 있는 교육의 의미를 계속 증명해 가는 자’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사는 일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교육의 의미 안에서 통합돼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로서 교사는 먼저 그 순간에서 조치를 위한 다음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직감적으로 행동한다. 달리 말하면 경험이 있는 교사는 중요한 그 순간에 교육적으로 행동한다.(같은 책, 93쪽) 교사가 아이들과 ‘교육적 관계’를 맺는 일은 이토록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다.

교사는 스스로를 가르치기 적절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94쪽) 이는 아이들과의 끊임없는 관계 맺기 과정에서, 교사 스스로 공부하고 단련하는 과정에서, 여러 교육적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특유의 능력이다. 지식을 매끄럽게 잘 전달하는 것, 학생들의 질서를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 교사의 가르치는 능력을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함영기(2021)의 <교사, 책을 들다>에서 일부를 인용함
도서 정보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8809298


목차


책장을 펼치며_ 공부하는 교사를 위하여

첫 번째 책_ 교사, 교육적 상황과 맥락의 창조자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막스 반 매넌

두 번째 책_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 바실리 수호믈린스키

세 번째 책_ 문화적 재생산과 수저계급론
《교육과 이데올로기》 마이클 애플

네 번째 책_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역량담론
《역량의 창조》 마사 누스바움

다섯 번째 책_ 교육은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활동
《 윤리학과 교육》 R. S. 피터스

여섯 번째 책_ 성장은 경험의 연속적 재구성 과정
《민주주의와 교육》 존 듀이

책장을 덮으며_ 또 다른 시작

공부를 돕는 질문들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추가] 아이들은 모험으로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