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이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Mar 01. 2024

자유하는 법을 알아

하루키 책에서 다시 희망을 얻다

어제 직책을 내려놓았고 오늘부터는 휴직이다. 정년까진 6개월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니 만 10년의 전문직 생활 중 국장(급)만 네 번을 했다. 고단한 시간이었다. 지금 내 앞의 시간은 불확실성이 높아져 있고, 삶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차질을 만났다.


어제는 강변을 걸었다. 진심으로 정신없이 걸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대지의 질감을 더 확실하게 느끼고자 하였다. 어쩌면 별것이거나 혹은 별것 아닌 그러나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 헤쳐나가야 할 이런저런 과제들, 놓아선 안될 정신줄 등 두서없는 잡생각 속에 2만 보를 걸었다. 그나마 걷기구나. 하면서.


강 건너 고층 아파트에 저녁 해가 걸렸다


휴직 첫날인 오늘은 고향에 다녀왔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와 유소년기를 보냈던 집터에선 (당연하게도) 옛 모습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추억을 되새겨보려고 친구들과 뛰어놀던 학교 뒤편 야산으로 향했으나 그곳 어디에도 내 어린 시절의 흔적은 없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정상까지 30분이면 뛰어 올라갔던 야산이다. 다음에 혹시 올 기회가 있으면 올라가 보리라 생각했다. 그 외엔 철저하게 '다른 곳'이 돼 있었다. 당연하지. 50년이나 지났는데. 중얼거리면서 살짝 짜증이 났고 이내 슬픔이 몰려왔다. 기억을 되살릴수록 진한 허전함이 몸을 감쌌다. 어쩌면 기분 때문인지도.


집에 돌아와 하루키의 새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펼쳤다. 첫 문장이 바로 가슴을 강타했다.


-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첫 문장은 하나의 문장이자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하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에서 "과연 하루키"라는 말이 나왔다.


- 그 여름 해질녘, 우리는 달콤한 풀냄새를 맡으며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야트막한 물둑을 몇 번 건너고,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서 웅덩이에서 헤엄치는 가느다란 은빛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하루키 책들

여기까지 읽고 일단 덮었다. 그리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같은 삶도, 일상도 하루키의 언어와 문장을 거치면 독특한 생명감을 얻는다... 고 생각했다. 나는 글쓰기와 관련하여 주로 걸으면서 소재도 얻고, 문장을 구성할 때가 많았는데 하루키는 오랜 세월 달리면서 그 일을 하였다. 책 중간쯤의 몇 문장으로 나는 다시 힘을 얻었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 그러나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어느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체내의 독소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한 독소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좀 더 힘 있는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게 된다.


나온 지 꽤 된 하루키 인생 회고록

그래서, 대략 앞으로 6개월 간의 계획은 3,4월/5,6월/7,8월 세 단계로 나누어 세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말하자면 준비기/실행기/회복기 정도가 될 것이고 9월부턴 진짜 자유이다.


'악뮤' 노랫말처럼 "나는 자유하는 법을 알아."



"자유하는 법을 알아"가  노랫말에 나오는 악뮤의 뱃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NewORF3VFeA




*커버이미지
https://think.kera.org/2022/12/29/in-mexico-some-enslaved-people-found-freedom-2/

매거진의 이전글 가르치기, 훈육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