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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Sep 26. 2024

춤을 추다(2)

스커트 아래 퉁퉁 부은 다리, 세상을 지탱하는

  거의 매일 새벽에 돌아온 엄마는 무너지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점심 후에는 몸단장을 하고 외출을 하기 위해 지영을 기다릴 것이다. 지영은 미리 해두었던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반찬 몇 가지를 챙겨 동생들을 먹였다. 3학년이 된 지수는 혼자 공부하기 힘들어했다. 엄마는 지영이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지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는 데 어떻게 가르쳐? 엄만 나 한 번도 공부 안 봐줬잖아...”
 
   “그러니? 호호호... 나도 공부 꼴찌였는데... 얘 우린 공부하고 담 싼 가족인가 보다.”
 
  지영 엄마는 해맑았다. 지금도 자기를 이해해 주는 좋은 남자를 만나면 팔자가 확 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엄마는 점심 때까지 잠을 잤고 지동은 혼자 놀았다. 세 살밖에 안 되었지만 지동은 혼자 잘 놀았다. 엄마 주변을 맴돌다 그 옆에 쓰러져 자기도 했고 위험한 물건엔 손을 대지 않았으며 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엄마가 술에 취해 돌아온 날이면 지영은 학교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엄마 걱정이 아니라 지동이 걱정 때문이었다. 엄마는 겨우 제 한 몸 씻고 단장하는 일 외에 집안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동이와 함께 지영이가 해놓은 밥과 만들어 놓은 밑반찬으로 점심을 먹는 것이 가족과 함께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담임이 맡고 있는 수학 시간엔 잠을 자도 뭐라 안 하니 좋았지만 다른 수업 시간에 지영은 매번 졸다가 지적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못생긴 애는 혼을 좀 내줘야 한다’라고 조롱했다. 학급의 학생 중에서는 소라만 유일하게 지영을 걱정했다. 담임선생은 다감한 사람이었다. 수학 시간에 곤히 자는 지영을 모습을 보고 차마 깨울 수가 없었던 민 교사는 교무실의 자 자리로 돌아와 수첩에 끄적였다.

  언제 한 번 지영이와 대화를 할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아버지란이 비어 있었다. 다만, 엄마의 나이가 지영과는 열아홉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에서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민 선생은 볼펜을 들고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우리 반 신지영 양

그 아버지 바람 들어 집 나갔고

그 어머니 화병 나서 정신을 놓았다     


그 바람에 신지영 양

밥 짓고 설거지에 동생까지 보살핀다     


우리 반 신지영 양

학교에서 마음껏 잔다

학교가 쉼터다     


오늘도 신지영 양  

꽃다운 사춘기를 생존과 맞바꾸고

스커트 아래 퉁퉁 부은 다리로

세상을 지탱한다     


지금도 신지영 양

책상 위에 엎드려

맘 놓고 코를 곤다     

그 모습 평화다
 

  사실 지영에게 집 나간 아버지는 없고, 엄마는 아파서 몸져눕지 않았다. 담임이 물어보길래 그냥 둘러댔을 뿐이다. 어떨 때는 담임이 자신을 너무 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애들과 똑같이 대해줘야 하는데 잠을 자도 혼내지 않으니 다른 아이들이 불만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학 시간까지 잠을 방해받는다면 학교는 너무 괴로운 곳이었다. 그런 담임지영은 좋다.


  지수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새끼 사범' 노릇을 하는 상헌이는 지영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다. 이미 상헌이는 태권도 검은 띠에 3단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다. 자기 말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해서 10년도 더 됐다고 했다. 상헌이는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두 마디가 없었다. 날 때부터 그랬던 것인지, 사고로 그랬는지 아무도 몰랐다. 누가 물어보면 아무리 화가 나도 ‘뻑큐’를 할 수 없게 신께서 창조한 것이라 답했다. 상헌이가 지수에게 다가왔다.
 
   “야 지수 너, 그 못생긴 지영이 동생 맞지?”
 

  지수는 누나를 부를 때 어김없이 이름 앞에 ‘못생긴’이란 말을 지겹게 들어왔던 터라 평소 좋아하던 사범 형에게서까지 그 말을 들으니 그만 부아가 올라왔다.  바로 지지 않고 대답했다.     


  “맞는데요. 근데 우리 누나 못생기지 않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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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춤을 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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