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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Sep 25. 2024

춤을 추다(1)

지영이와 엄마는 열아홉 살 차이가 났다

 오늘도 지영은 학교에서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가장 친한 소라에게서다. 본관 앞 등나무 벤치에 앉아 담임 이야기, 소라가 좋아한다는 체육 선생님 이야기, 남자 아이들 이야기까지 쉬는 시간 10분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다가 소라가 정색하고 내뱉은 한마디였다.

 
   “근데 지영아. 너 솔직히 너무 못 생겼어...”
 
    갑작스러운 소라의 외모 지적은 놀랄 일도 아니다. 하루에 한두 번씩 꼭 듣는 말이니 말이다. 지영이가 하루에 가장 많이 듣는 말도 그것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여자 아이들, 또 남자 아이들이 수시로 지영의 외모를 지적했다. 지영은 눈을 치켜뜨고 소라에게 말했다.
 
 “그래 나 못생겼다. 이것아. 어쩔래?”
  “오, 못생긴 거 인정? 지영이 너 나 아니면 누가 놀아주냐. 나에게 고맙다고 해.”
  “그러는 너는? 넌 얼굴도 예쁜데 아무도 안 놀아주잖아.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얘가 데리고 놀아주니까 아주 지가 잘난 줄 알아.”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교실로 향했다. 담임 과목인 수학 시간이었다. 지영은 3학년에 올라와 첫 수학 시간 빼고 잠을 잤다. 한 번은 얼마나 곤히 잤던지 주변 아이들도, 심지어 선생님도 깨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살짝 코까지 골거나 알 수 없는 헛소리까지 곁들여 깊게 잠을 잤다. 어쩌다 담임이 깨울 땐 볼멘소리를 했다.
 
   “지영아. 오늘 공부하는 내용 중요한 건데 또 자니? 이건 쉬운 내용이니까 잠깐 일어나 공부하다가 또 잘래?”
 
  지영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담임을 올려다보았다. 머리는 헝클어졌고 입가엔 침이 묻은 상태였다. 지영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 샘... 지금 깨우면 어떡해요? 그래도 첫 수학 시간엔 안 잤잖아요. 그거 정말 노력한 건데...”
   “그래, 그래... 그땐 아주 큰일 했다. 그럼 더 자라...”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마디씩 했다.
 
  “샘, 애를 그 모양으로 다루니 아주 그냥 더 버르장머리가 없잖아요. 따끔하게 혼을 좀 내주세요.”
  “쟤는 복도 많지. 못 생겨가지고 아주 담임 사랑은 독차지야. 샘, 너무 봐주시는 거 아니에요? 저번에 전 잠깐 졸았다고 혼내시더니. 아주 차별이 몸에 배셨어. 이러시는 거 아니죠.”
 
  준혁이 나섰다.
 
  “그만하고 공부 좀 하지. 깨서 공부한다고 머리에 뭐가 들어가니? 안 자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공부하자고.”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민 교사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누가 범생이 아니랄까 봐? 너나 혼자 열심히 공부하시지?”
 
  담임은 한차례 소란이 끝나기를 기다려 수업을 계속했다.      


  “자 그러니까 여기서 엑스가 이항이 됐잖아요?”
 

  아이들이 받았다.


   “네네, 용의자 엑스의 헌신이라고나 할까요?”      


  수학 시간이 끝났다. 지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소라는 지영을 흔들어 깨웠다.
 
   “야 지영아. 일어나. 쉬는 시간까지 자냐? 그렇게 엎드려 자니깐 네 얼굴이 점점 더 넓어지는 거야. 아까운 시간 다 지나가네. 얘가 그래도 노는 시간은 잘 지켰는데, 요샌 아주 잠 귀신이 붙었네? 자 지영아 일어나자. 옳지. 옆 반에 잘생긴 애가 전학을 왔다네. 보러 가야지?”
 
  지영은 ‘잘생긴 애’라는 소라의 말에 부스스한 몸을 일으켰다.
 
   “누가 왔다고? 잘생긴 애? 그럼 가 봐야지.”
   “우리 지영이 못생겼어도 잘생긴 남자는 밝히는구나. 가자!”
 
  옆 반에는 인근 학급에서 몰려온 여학생들로 넘쳤다. 새로 전학 온 남자 학생은 보기에도 야리야리하니 순정 만화 속 주인공 모습이었다. 여학생들은 ‘전학남’을 둘러싸고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소라와 지영도 창문 너머로 전학남을 보았다.
 

  “잘생겼네. 어쩜 얼굴은 저리도 작고, 눈도 참 초롱하네.”     


  지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쉬는 시간 10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다음 쉬는 시간에는 전학남을 보러 가는 여학생들이 반으로 줄었고, 오후쯤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하교 시간이 됐다. 지영은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담임의 종례가 길게 느껴졌다. 청소 당번이었으나 소라에게 “내 몫까지 부탁해!”라는 말을 남기고는 교문을 빠져나왔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지영의 집이 있었다. 빌라가 밀집해 있는 구역의 맨 끝 집 반지하가 지영의 집이었다. 반지하였지만 방이 두 개였고 밖을 볼 수도 있는 창문도 있었다. 방 하나는 엄마가 썼다. 그 방에 가끔 어른 남자가 찾아와 머물다 가곤 했다. 나머지 방 하나에 지영과 남동생 둘이 지냈다. 지영과 남동생 둘은 모두 혼외자였다. 엄마는 결혼한 적이 없었으나 세 명의 아이를 두었다. 모두 아빠가 다른 아이들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소리쳤다. 지영과는 딱 열아홉 살 차이가 나는 엄마다.
 

  “너는 왜 이렇게 늦었니? 6교시 끝나고 바로 오면 세 시 반이어야 하는데 지금 네 시가 다 됐잖아? 난 지금 나가야 해. 애들 아직 점심 못 먹었으니까 먹이고, 난 내일 아침에 들어온다. 애들 잘 봐. 괜히 딴짓하지 말고.”
 
  지영의 엄마는 원색의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짙게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지영은 엄마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가끔 몇만 원씩 던져주면서 살림을 하라고 할 뿐이었다. 그 돈을 받아 시장을 보고, 동생들 간식까지 챙기고 나면 티셔츠 하나 사 입기도 빠듯했다. 힘든 삶이었다. 바로 아래 동생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막내는 이제 세 살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었으니 정식 남편도 없었다. 잠깐 얼굴을 볼 때면 지영을 향해 불만을 쏟아냈고 자주 공치사를 했다.
 
   “내가 너네들 버리지 않고 키웠으니까 너도 지수도 학교에 다니는 거야. 내가 돈을 버니까 반지하 전셋집이라도 얻어서 살고 있는 거고. 내가 너희들만 아니면 벌써 팔자 고쳐서 멋들어지게 살고 있을 텐데. 한 번뿐인 인생에 도대체 꼴이 이게 뭐람? 지영이 넌 정말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내가 널 안 버렸잖아. 너 키우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몇 번이나 죽고 싶었어. 근데 난 죽지 않았고 너희들 안 버렸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나한테 감사하면서 살아야 돼.”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은 언제 철이 드는 걸까. 지영은 아이들 간식을 챙겨 먹이고 동생을 태권도장으로 보냈다. 그리고 세 살짜리 막내와 근처 놀이터로 갔다. 소라가 그곳에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언니가 살살 다뤄주니까 아주 제 멋대로야. 좋니? 너 청소 안 하고 내빼는 바람에 네 몫까지 내가 다 했잖아. 다른 애들이 어찌나 뭐라 하든지. 지똥아 누나가 하드 사줄까?”
 

  소라는 지영의 막내 동생 지동을 지똥이라 불렀다. 놀이터 옆 작은 슈퍼에서 하드 세 개를 사 온 소라는 지영이와 지동이에게 나누어 주면서 쉴 새 없이 중얼댔다.      


  “그 새로 전학 온 애 말이야. 아까 청소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나를 이렇게 다정하게 쳐다보는 거 있지? 걘 왜 전학 오자마자 나한테 빠졌다니. 자식, 이쁜 건 알아가지고... 지똥아, 흘리면 안 되지. 자, 이렇게, 이렇게 먹어.”
 

  셋은 그렇게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소라는 집으로 돌아갔고, 지영과 지동도 반지하로 돌아왔다. 세 살박이 지동은 누나가 힘든 걸 아는지 혼자서도 잘 놀았다. 옷에서 모래가 한 주먹 쏟아져 나왔다. 옷을 벗겨 세탁기에 던져 놓고 새 옷을 갈아입히려는데 아직 마르지 않은 옷만 건조대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티셔츠를 입혀 놓고 나니 바닥에 질질 끌렸다. 웃음이 나왔다. 지동이도 웃었다. 그리고는 두 방과 거실을 뛰어다녔다. 태권도장에 갔던 지수가 돌아왔다.
 
  “지똥아 너 왜 형 옷을 입고 있어? 푸하하... 누나 얘 좀 봐. 옷이 바닥에 질질 끌리네. 지똥아 잘 입어. 더럽히지 말고. 형이 또 입어야 하니까.”
 
  지수는 성격이 좋았다. 아마 지동이도 그럴 것이다. 어떨 때 지영은 혼자 소리를 죽여 울곤 했다. ‘난 왜 이렇게 철없는 엄마를 두었을까. 내가 있게 한 아빠는 얼굴도 모르고, 동생 둘도 제각각 아빠가 다른데 도대체 나는 언제 한번 행복해보나. 다른 애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시간이 있다 해도 이렇게 못 생기게 낳아 놓아서 소라 빼고는 어울려 주지도 않고.’ 그렇게 30분쯤 울고 나면 왠지 모를 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지영은 동생들 밥을 챙겨 먹였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그래도 다행이야”라고 혼잣말을 했다.

  철이 없는 엄마이긴 해도 우릴 버리지 않았으니 그게 어디야. 또 반지하 전세방이라도 있고, 엄마가 가끔 몇만 원씩 생활비라도 주니 나와 동생들이 굶어 죽지는 않았잖아. 아빠는 없지만 소라네 아빠처럼 때리는 아빠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낫지. 그것도 참 다행이야. 지영은 자신이 못생긴 것 빼고 모든 것을 축복처럼 느꼈다. 내가 조금만 더 예쁘게 생겼으면 좋았겠지만 나중에 돈 벌어서 성형하면 되지 뭐. 아홉 시가 되면 지동이 잠이 들었고, 그때 지영은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먹어야 할 반찬을 만들었다. 소시지도 볶아 놓고, 계란도 미리 부쳐 놓았다. 빨래를 모아 빨래통에 넣어두면 주말에 네 식구 빨래가 좁은 베란다 바닥까지 넘쳤다.
 
  열 시가 되면 지수가 잠에 들었다. 지수지동이 평화롭게 자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때쯤 지영의 몸은 파김치가 됐다. 대략 열한 시쯤에 어김없이 소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이터에서 헤어지고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둘은 그날 있었던 일로 수다를 떨었다. 소라와 통화를 하고 나면 비로소 하루일과가 끝났다. 어른 남자가 오지 않는 날엔 엄마 방에서 잘 수 있었다.

  엄마는 가끔 새벽에 어른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그럴 때면 지영은 방을 비워주고 동생들이 있는 작은 방으로 가야 했다. 엄마 방에서 낯선 어른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영은 반지하라도 방이 두 개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방이 하나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엄마 방엔 퀸사이즈 크기의 침대가 있었다. 훨씬 편안한 잠자리였다. 화장대에는 화장품이 가득했다. 가끔 지영은 이것저것 찍어 바르고 칠해보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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