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간 말고 다른 수업 시간엔 억지로라도 깨어 있어야 했다. 반 아이들은 자기들은 지영에게 못생겼단 말을 입에 달면서도 교사가 외모 지적하는 것은 참지 못했다. 소라가 좋아하는 체육 샘이 운동장에서 뜀틀넘기 수업을 하다가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지영을 향해 중얼거린 적이 있다.
“못생긴 녀석이 운동도 못하네...”
이 말을 옆에서 들었던 여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외모 지적하시면 안 되죠. 빨리 지영이에게 사과하세요. 요즘 때가 어느 땐데...”
그 말을 들은 체육 교사는 결국 지영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지영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멀뚱 거릴 뿐이었다. 소라가 놀렸다. “너 체육시간 싫지? 운동도 못해. 잠도 잘 수 없지...” “근데 왜 체육샘이 나한테 사과한 거야?”
“그거 몰랐어? 어쩌면 애가 이렇게 무디니 그래... 그냥 죽 모르는 게 낫겠다. 들어가야지. 점심시간이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아이들은 급식실 입구에 줄을 섰다. 반별로 한 줄씩 세 줄로 서서 배식대로 향했다. 바로 옆 줄에 상헌이 반이 줄을 섰다. 상헌이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지수의 말이 생각났다.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안면은 있던 사이라 지영이 말을 건넸다. “야 너, 내 동생한테 내 얘기했다면서?” 작게 말한다는 것이 주변 아이들까지 다 들릴 정도로 말을 하고 말았다. 상헌은 당황했다. 아니 지수라는 놈이 내가 ‘네 누나 못생겼다’고 한 말을 전했나? 주변의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을 주시했다. 지영은 단지 상헌이가 본인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상헌은 확실히 당황한 눈치였다. 아이들은 “오, 오... 이렇게 사랑이 싹이 트나요?” 해가면서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아니, 그... 그게... 도장에서 운동하다가 그냥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했는데...” “그래? 알았어. 밥 먹어라.” 지영이 상헌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아니,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시시하게 끝이 나나요?”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사실 지영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얘길 했길래 지수가 말을 하려다 까먹었다고 주워 담은 건지 말이다. 그런데 겨우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라니...’ 운동만 잘했지 영 싱거운 놈이라 생각했다. 배식대 앞의 줄이 줄어들면서 지영과 상헌도 앞으로 나아갔다. 둘은 말이 없었지만 지영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소라가 뒤에서 옆구리를 찔렀다. “야 뭐라고 해봐... 그냥 끝낼 거야?” “뭘 끝내... 아무것도 아닌데...” 그날 지영은 급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거참 웃기는 놈이네... 자식이 싱겁기는...’ 이 말만 중얼거렸다. 지영의 몸에서는 항상 ‘집안일’의 냄새가 났다. 소라가 방향제를 건네주면서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에 지영도 알고 있었다. 매일 하는 식사 준비, 설거지와 청소, 세탁, 동생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일, 가끔 새벽에 들어온 엄마를 챙기는 일까지 지영은 자기 몸을 돌볼 새가 없었다. 때로 교복을 입은 채로 식사 준비를 하니 냄새가 옷에 배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들은 못생긴 데다 냄새까지 나는 지영이와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소라만이 지영을 위해 말을 했고, 시간을 투자했고, 용돈을 썼다. 지영은 나중에 그 고마움을 모두 갚으리라 생각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나올 때 다시 지영은 상헌과 마주쳤다. 가슴이 뛰었다. 운동장으로 향하던 상헌이 말을 붙여 왔다. “저기, 그 언제 삼겹살 먹지 않을래?” 소라가 먼저 대답했다. “그럼 먹어야지. 니가 사는 거지? 너 도장에서 알바한다며? 언제 먹을래?” 소라는 지영을 꾹꾹 찌르며 빠르게 대답했다. 지영은 생각했다. 했다는 말은 고작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거 하고, 뜬금 없이 삼겹살을 먹자고?’ 그런데 지영의 가슴은 요동을 쳤다. 소라가 대신 대답했다. “그래, 지영이랑 나랑, 참 지영이 동생 둘도 나갈 테니까 언제 볼래?”
상헌이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삼겹살을 먹자고 했지? 나 참 좀 미안해서 한 말인데... 갑자기 삼겹살이 왜 튀어나와서...’ 대책 없이 들이대는 소라의 말에 상헌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응 저기 내가 오늘 다섯 시에 도장에서 잠깐 나오니까 다섯 시 반에 그 삼거리 초원식당으로 올래?”
소라도 지영도 웃었다. 초원식당은 또 뭐래니. 요즘 젊은 사람들 많이 가는 퓨전 고깃집도 얼마나 많은데 그 아저씨 아줌마들 주로 가는 초원식당이라니. 그래도 뭐 지난번에 양이 적어 동생들이 아쉬워했는데 이번에 실컷 먹으라 해야지. 지영은 들떴다. 동생들 고기 먹일 생각에, 그리고 뭔지 모를 이 싱숭거리는 마음에도.
상헌은 관장에게 돈을 좀 쓸 일이 있다고 말했다. 관장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10만 원을 상헌에게 건넸다. 다섯 시 반에 초원식당에는 상헌과 지영, 소라 그리고 지영의 두 동생이 모였다. 지동은 영문을 모른 채 삼겹살을 또 먹자는 누나의 말에 따라 나왔다. 지수는 도장에서 상헌이 잠깐 같이 갈 데가 있다면서 함께 나왔다. 소라가 경쾌한 목소리로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요, 삼겹살 일단 4인분 주시구요. 음 그리고 콜라 또 지수 지동이는 사이다... 이렇게 주세요.” 상헌도 지영도 별 말이 없었다. 말은 주로 소라가 했다. 소라는 훌륭한 통역꾼이었고 바람잡이였으며 분위기 메이커였다. 지영은 그런 소라의 성격이 부러웠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소라는 지영이 봐도 예쁜 얼굴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나 하는 짓도 밉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니 지영은 잠시 우울해졌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외모가 받쳐줘야 남들이 감동을 하는데. 근데 뭐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나한텐 챙겨야 할 엄마와 동생들이 있으니까 외모에 신경 쓰고 어쩌고 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해. 지영은 실현되지 않는 것은 포기가 빨랐고,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지영은 물수건을 꺼내 지동이의 손을 정성스레 닦아 주었다. 처음 4인분으로 시작한 삼겹살 파티는 2인분을 추가로 시키고 된장찌개와 공깃밥까지 이어졌다.
상헌은 아빠와 먹었던 삼겹살을 떠 올렸다. 말없이 먹으며 아빠는 소주잔을 비웠다.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둘은 조용하고 진지하게 고기를 먹었다. 오늘 상헌은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지영의 두 동생은 볼이 터질 정도로 고기를 즐겼고, 소라도 만만치 않았다. 지영도 처음엔 몸을 사리는 듯했으나 결국 마음껏 먹었다. 상헌은 10만 원을 다 썼다. 상헌은 기분이 좋았다. 특히 지수와 지동이 맛있게 고기를 먹는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갑자기 치러진 삼겹살 파티는 끝났다.
이제 서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며, 지동이 잠들고, 지수가 잠들고, 소라가 전화를 해 올 것이고,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면 내일 아침이고, 새벽 언제쯤 엄마가 들어올 것이고, 아침을 먹고, 잠들어 있는 엄마에게 ‘지동이 잘 봐’하면서 지수와 함께 집을 나설 것이다. 지영에겐 편안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그냥 생활이었다. 외모는 좀 빠지고 공부도 못해도 그로 인해 못견딜 정도로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따돌림당할뻔한 적도 있지만 소라가 다 옆에서 막아주었다.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생활에서 더 욕심부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지동을 재우고 지영은 오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열 다섯 소녀가 아니라 피곤하고 지친 여인의 모습이 있었다. 지영은 화장실로 들어가 말끔하게 세수를 하고 엄마 화장대 앞에 앉았다. 엄마는 이것저것 복잡한 화장품이 많았다. 어디에 쓰는지 무엇을 먼저 바르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고루 펴서 발랐다. 금세 얼굴이 피어났다. 내친김에 분홍색 립스틱도 발랐다. 입술 밖으로 번졌지만 조심스레 닦아 가면서 꼼꼼하게 완성을 했다. 눈썹에다 마스카라도 칠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다. 그 대신 눈가에 조금 짙은 아이라인을 발랐다. 거울 속에 미녀가 나타났다. 지영은 갑자기 웃었다. “푸하하... 이것 좀 봐. 지수야 여기 좀 와바. 어머나, 이걸 어째... 깔깔깔...” 지수가 뛰어 왔다. “누나 미쳤어? 아주 바람이 들었구나. 그 상헌이 형에게 잘 보이려고 그래?” 지영은 그 상태에서 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얘가 오늘따라 언니한테 먼저 전화를 하네. 잘 먹었으면 어여 자야지...” “소라야, 잠깐 영상통화 좀 하자...” 지영은 휴대폰의 모드를 영상으로 전환하였다. 잠옷을 입은 소라의 모습이 나타났다. 소라가 외쳤다. “너 이거 실례인 거 몰라? 갑자기 무슨 영상통화야... 얘가 왜 오늘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잠시 후 소라의 비명이 터졌다. “헐~, 이게 누구야... 어머 어머 내가 미쳐...” 소라는 어설프게 화장을 한 영상 속의 지영을 얼굴을 보고 몇 번이나 “어머, 어머”를 연발했다. 이렇게 둘은 영상통화를 하면서 깔깔댔다. 지영은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이지 하면서도 싫지 않았다. 그래 그런데 이렇게 맨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 불편하기도 하겠네. 매일 여기 쏟는 시간이 얼마야. 또 화장품 값도 많이 나가겠는 걸? 그날 지영은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들었다. 새벽에 돌아온 엄마가 잠든 지영의 얼굴을 보고 놀랐고, 아침에 깬 지동이는 누나 얼굴이 무섭다며 울었다.
지영과 상헌이 조금 더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소라는 지영과 상헌의 관계를 깨지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치가 보이면 두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관계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지수도 상헌을 잘 따랐고, 지동이도 ‘사범형’이라면서 서툰 발음으로 부르곤 했다. 지영과 상헌은 가끔 동생 둘을 끼고 저녁을 먹었다. 소라는 자주 지영에게 말했다.
“지영이 넌 이 언니 덕분에 연애도 해보는 거야. 고맙다고 해야지? 모르는 건 그때그때 물어보고. 아유, 애가 공부가 좀 되면 금세 배울 텐데... 이제 얼굴도 좀 가꾸고, 옷도 사 입고 그래...” “얜, 연애는 무슨. 그냥 지수 귀여워해주니까 고맙기도 하고. 가끔 저녁이나 먹는 거지. 상헌이네 아빠도 지방에 출장 가면 보름씩 안 오고 그런다며. 상헌이 혼자 밥 먹기 적적할까 봐 같이 먹어주는 거야. 그래도 니가 항상 옆에서 챙겨주니까 고마워. 나의 베프.” 이렇게 말하곤 했지만 지영은 소라가 고마웠다. 맞는 말이었다. 소라가 아니었으면 뉘라서 못생기고 음식 냄새나는 지영과 어울려 주었을까. 소라와 있을 땐 든든했다. 확실히 소라는 지영보다 한 두 살 더 먹은 듯, 아는 것도 많았고 붙임성도 좋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고마웠다. 다 연결된 가족 같았다. 우리 지수, 지동이 잘 크고 있고, 소라와 상헌이까지. 또 상헌이 도장의 관장님도 좋은 분 같았다. 상헌이 말을 들어보면 상헌 아빠도 좋은 분인 듯했다. 수학 시간에 잠자는 것 그냥 넘어가주는 담임 샘도 고마웠다. 뜬금없이 지영에게 외모 지적해서 미안하다는 체육 샘도 좋아 보였다. 소라가 좋아할 만했다. 이 모든 것이 지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냥 지금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살만한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