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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미 Jul 24. 2021

어쩌다, 곧 마흔.

"시집 언제 갈래?" 

"만나는 사람은 있고?"

"그러다 나중에 나이 들면 후회해"


이 나이가 되니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레퍼토리다. 


"우리 같이 실버타운 들어가자"

"연애만 하자 연애만"


이 레퍼토리도 여전하다. 


서른하고 7년이 지난 이 시점에 아직 결혼 안 한 친구들이 몇이나 있나 돌아보니 거의 없다. 심지어 남자 친구랑 절대 결혼을 못하겠다고, 결혼은 안 할 거라고 호텔 바에서 실버타운 동맹을 맺었던 친구마저 결혼을 했다. '남들 하는 거 나도 한 번은 해봐야지'라는 말과 함께.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친구 결혼식의 사회를 보고 있었다. 화려한 싱글을 약속했던 친구는 화려한 예식장에서, 세상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그렇게 싱글라이프를 청산했다.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법 익숙해져서 이제는 누굴 만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벅차고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결혼은 안 해도 연애는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오지랖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썩 외롭지 않은 것이 한몫한다. 굳이. 


무엇보다 30대가 되어보니, 만남의 기회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아, 물론 또 만나는 사람은 출근하려고 집 밖에만 나서도 인연을 만나기는 하더라. 나한테 없다는 거다. 매년 친구들과 연말연시 모임을 가지면서 "올해는 누구라도 만나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는데, 개뿔. 그런 거 없다. 올해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잘 알거든.


그래도 다행히 쌓여가는 연차만큼 높아지는 연봉과 통장잔고......라고 쓰고 싶었는데, 통장잔고가 높아지긴 한다. 위가 아니라 아래로 땅을 뚫고 지하로 뚝뚝 떨어져서 문제지만. 친구들은 "빚도 자산이고, 능력이다"는 위로를 해준다. 그래서 걱정 없이 카드를 긁고 있다. 이렇게 혼자 벌어서, 혼자 쓰고, 혼자 즐기는 재미가 쏠쏠한 게 혼자라이프인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드라마를 볼 때, 어른 여자들의 삶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눠졌던 것 같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서 살림만 하는 찐 아줌마 라이프 거나 커리어우먼으로 살거나. 하지만 신기하게도(흑은 안타깝게도), 내가 본 드라마에서의 여자 주인공들은 마치 짠 것처럼 연애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인 것처럼 사랑이 종착지였던 것 같다. 꿈을 이루고, 사랑도 이루는.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스토리가 아주 인기였다. 


물론 노처녀의 이야기도 많았다(근데 노처녀, 노총각은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고작 30살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늙었다고 꼬리표를 달다니). 올드미스 다이어리, 내 이름은 김삼순, 달자의 봄 등등. 모두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노처녀라고 불리던 그 사람들은 고작 30대 초반의 푸릇푸릇한 나이였다. 정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얼마 전 김삼순을 다시 보면서 삼순이가 나보다 7살이나 어린 30살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특히 김삼순에서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바로 그 대사 말이다. 25살이 지나면 떨이 취급. 그 말은 즉, 12월 37일을 넘어 38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떨이 중에 상 떨이가 되었다는 것? 도대체 그런 말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아주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은 나이가 그다지 중요한 스펙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있고 내 수명도 조금씩 줄어가고 있는 이때, 뭔가 이대로 살아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이패드를 펼쳐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6개월이 지나고 얼마 전 열어봤는데, 이럴 수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난 철저하게 인간 그 자체였다. 세상 지켜지는 것들이 없었다. 전체를 100으로 본다면, 한 40%? 시작이 반이다 싶어서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언제까지 행동하는 대로 생각할 순 없으니. 


물론 연애도 있다. 이 나이에 반드시 연애를 해야 하고, 남자를 못 만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주변의 평가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그냥 마음 맞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최근 조금씩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뭐 언제 다시 흐지부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기록으로는 그러하다. 


마흔이라는 숫자가 사실 아직도 생소하긴 하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내가 마흔이라는 나이를 잘 받아낼 수 있을까, 그 무게에 무너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도 있다. 마흔이 된다고 해서 빨래를 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마흔이 된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닐 테니. 아, 혼자 사는 게 마냥 익숙한 것도 아니다. 어쨌든 아직도 사는 게 어설프고 매일이 요절 복통한 내 독립생활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까. 


일단 지금은 쌓여있는 설거지를 너무 하기 싫으니까, 내일 아침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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