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미 Aug 01. 2021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

컨셉진스쿨- 8월 에세이 프로젝트 #1. 성격

넌 참 심간이 편해서 좋겠다.


엄마와 대화 속에서 나는 항상 철부지 딸이었고,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어른이었다. 언제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굳게 믿는 나와 달리, 엄마는 뭔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엄마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밤에 잠을 깊이 못 드는 날도 허다했다. 가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고, 속앓이를 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다.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자기 학대로 낭비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세상에 없던 듯 엄마의 존재가 희미해질 무렵, 나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온전히 혼자서 큰 일을 진행해본 것은 올해 '이사'가 처음이었다. 집을 알아보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전세자금 대출 등의 각종 서류들을 주고받으면서 고작 1g도 되지 않는 종이에 적힌 빼곡한 글씨가 나의 전재산이라는 사실에 식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잘못될 것만 같았고, 말이 안 되는데 사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걱정이 나의 밤으로 흘러와 시간을 재촉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그때 엄마도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었구나.


엄마는 태어나기를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부모, 형제, 남편, 건강 등 평생을 잃으면서 살았던 엄마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기보다, 너무도 당연하게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존재의 이유들을 지키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그 의지가 엄마를 더 신중하게 살도록 가뒀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환경이 만든 틀 안에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무수한 '결핍'을 경험했던 엄마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으려고 매일을 아등바등 살았는데, 그게 철없는 내 눈에는 걱정과 고민으로만 보였었나 보다. 


나는 엄마에게 "내려놓고 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엄마에게는 얼마나 모질고 가혹하게 들렸을까. 낯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때 내가 "힘들면 나한테 기대, 김여사" 혹은 "난 늘 엄마 편이야"라는 말을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엄마의 버거운 삶의 무게가 조금은 나아졌을까. 엄마도 조금은 편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됐을까. 


컨셉진스쿨 - 8월 에세이 프로젝트 https://conschool.imweb.me/103
작가의 이전글 서울 촌년의 강남 적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