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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미 Aug 09. 2021

엄마의 환갑에는

컨셉진스쿨-8월 에세이 프로젝트 #5. 약속

태원준 작가의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라는 책이 있다. 30세의 아들이 환갑을 앞둔 엄마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는 과정을 엮은 에세이다. 처음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엄마에게 보여줬다.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부러운 부분도 있었다. 나도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다녀봤던지라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그런데 국내도 아니고 세계를, 거기에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를 고생하면서 다니는 여행이라니. 사실 믿기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존경심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날부터였다. 엄마의 환갑에는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다니자고 이야기했던 게. 엄마는 가게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가, 어느 날은 기대된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돈으로 달라고 했다가 열댓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도 은근 여행을 기대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주 생각을 하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번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예정대로라면 올해가 엄마의 환갑이다. 만약 계획을 했더라도 코로나 때문에 제주도나 엄마가 좋아하던 울릉도를 다녀오는 것으로 끝났을 여행일텐데, 막상 이야기 했던 그 시간이 되니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엄마는 여권을 만들고 중국밖에 못 가봤다고, 가게 융자를 다 갚으면 엄마도 맘껏 좋아하는 산에도 다니고 여행도 갈 거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융자를 갚기 4개월 전에 암 선고를 받아 투병생활로 강제로 휴식을 해야 했다. 5년 넘게 손때 묻히며 겨우 자리를 잡은 가게도 갑자기 내놓아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하고 싶은 거나 실컷 하면서 살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나는 원래도 즉흥적이고, 하고 싶은 것을 되도록 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때에는 포기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중에 이렇게 살아야지'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의미 없는 말임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컨셉진스쿨 - 8월 에세이 프로젝트 https://conschool.imweb.me/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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