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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Nov 14. 2023

경쾌하고 다정한 시작

언젠가부터 남편의 경기 인근 당일 출장에는 동행하고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새벽 글방에 참여하고 낭독까지 마치고 나면 똥강아지들 아침 산책을 서둘러 마치고 출근하는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선다. 바로 출발하는 건 아니니 남편은 사무실로, 나는 사무실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어와 시간을 보내는 거지.


언젠가 파파 스머프를 만났던 곳. 오늘도 혹시 출근길의 파파 스머프를 만날 수 있을까 귀를 기울였는데 파파 스머프는 없고 근래 본 중 가장 에너지가 좋은 직원을 만났다. 목소리는 크지만 거슬리지 않았고, 밀려드는 주문에 바쁠 테지만 음료를 기다리는 고객을 호명하는 목소리 끝에 친절함이 묻어있다. 이어폰을 꽂는 것도 잊은 채 아침의 경쾌한 BGM처럼 그이의 목소리를 한참 들었다.


일어나는 시간은 5시 30분이지만, 오늘은 4시 20분이 조금 지나 잠이 깨버렸다. 다시 잠들기 쉽지 않을 거 같아 애쓰지 않고 일어났다. 고카페인의 커피를 마시고, 속 편하게 화장실도 다녀왔더니 평소라면 허기가 질 시간이 아닌데도 허기가 지는 기분이다. '배고파' 하고 허기짐을 인정하고 나니 정말 더더더 배가 고파오는 기분이다. 어차피 아침에 커피는 마셨으니 커피보다는 따뜻한 수프를 주문했다. 수프를 내주는 직원(경쾌한 직원과는 다른)이 혹시 물을 같이 준비해 줄까 묻더니 좋다는 말에 너무 뜨겁지 않게 온수에 정수를 섞어 한 잔 내준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물 한 잔이지만 어쩐지 유난히 맛이 좋다.


경쾌한 BGM과는 안녕하고 이어폰을 꽂고 노이즈 캔슬링으로 음악을 재생한다. 수프와 함께 나온 토스트 칩을 잘게 부숴 수프에 넣고 눅진해지길 기다리다 한 입 넣는데 아뿔싸 테이블 대각선으로 마주 앉은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입을 벌리고 눈이 마주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게 최대한 시선을 피하고 냠냠 먹는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기에 나는 너무 배가 고프거든요. 그리고 아마 그이도 나를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어느덧 수프는 다 먹었고, 배도 적당히 찼다.

기대했던 파파 스머프는 만나지 못했지만, 경쾌하고 다정한 직원을 만났다.

하루의 시작이 좋다.






언젠가 파파 스머프를 만났던 날의 이야기

https://brunch.co.kr/@wednfri/48#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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