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Dec 13. 2022

파파 스머프와 이여사, 모두의 멀티버스

더 모든 날 모든 순간

어제는 아침부터 남의 동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주택가가 아닌 오피스 상권이라 그런지 출근시간대 커피를 사러 오는 직장인들이 정말 쉬지 않고 오가던 곳.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음료를 주문받고 만들어 내어 주기 바쁘고, 손님들 또한 주문한 커피를 받아서 그들의 일터로 향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바쁜 그들을 살펴보다 나 또한 나의 시간으로 들어가려던 중,


"파파 스머프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라는 소리가 들렸다.


호명된 수많은 고객님들 중 유난히 귀에 꽂힌 파파 스머프 고객님을 향해 고개가 들렸고 눈은 픽업대 근처의 많은 사람들 속을 헤매고 있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자고로 스머프라 함은 다소 미니멀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연상되기 마련인데 직원의 부름에 다가가 음료를 받은 사람은 나보다 충분히 연배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체격 좋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귀여움과는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모습에 파파 스머프라는 닉네임이 붙으니 그 의외성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린 거겠지. 겉모습에서는 알아챌 수 없는 센스나 유머러스함이 내재된 인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결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그 남성분의 일상 속 작은 예외적인 부분을 상상하기도 했다.


얼마 전 영화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았다. 그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랐고, 생각지도 못한 의외성과 발상의 전환에서 에너지가 폭발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에너지가 기폭제가 되어 각기 다른 멀티버스에서의 다양한 나를 소환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 안의 내재되어있는 수많은 나 자신이 아닐까.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다던 그 노래처럼. 더불어 나 자신에게는 물론 모두에게 다정하기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기도 했다.


이따금 일상의 변화를 꿈꾸기도 하지만, 사실은 평안한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 좋다. 물론 어제와 같은 오늘, 그런 반복되는 일상 속 작은 변화가 때로는 활력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런 변화가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는데 언젠가부터 자꾸만 고요한 일상을 추구하게 되는 것도 같다. 마치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그런 이벤트는 기가 빨린다는 이유를 앞세워 거부하듯 말이지. 하지만 알고 있다. 그 기 빨리는 일상 속 이벤트가 오히려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내 마음속에서 발현되고자 하는 의외성을 기 빨린다는 이유로 누르지 말고 나도 모르는 멀티버스 속에 존재할 나를 끄집어낼 수 있는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멀티버스 속 다양한 각기 다른 에블린(더 모든 날 모든 순간의 주인공/양자경)처럼 어쩌면 스타벅스에서 만난 파파 스머프 또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중년 남성의 수많은 우주 속 하나가 아닐까. 이를테면 '스타벅스라는 멀티버스 속의 그'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로 '스타벅스라는 멀티박스 속 파파 스머프'의 오늘이 어제보다 유쾌하기를 잠시나마 기원해 본다.


오늘 나는 나의 멀티버스 속 각기 다른 나를 얼마나 불러내 살아가게 될까. 지금 이 순간은 글 쓰는 나로, 자리에서 일어나면 집안일하는 나로, 그리고 순간순간 똥강아지들을 돌보는 개엄마의 나로, 각기 다른 나로 살지만 결국은 모두가 나다. 그러니 어느 순간 어떤 모습을 불러오게 되더라도 나에게 다정하기. 그리고 너에게 다정하기를 잊지 않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