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스노우볼
밤사이 내린 눈과 비가 얼어 길이 미끄러우니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행정안전부의 메시지가 시끄럽게 도착했다. 어젯밤 늦은 산책에서 느꼈을 땐 오히려 조금 푸근해진 듯했는데, 행정안전부의 메시지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예외인가 보다.
그래. 어제 눈이 내렸지. 그것도 아주 예쁘게.
새벽에 일어나 축구를 보고 새벽 글쓰기 모임까지 연이어했다. 출근하던 남편은 눈이 내리고 있으니 잠자기 좋을 거라며 커튼 치고 조금 더 자라고 친히 전화를 걸어왔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내인 나는 그의 말대로 온수 매트의 온도를 조금 올리고 1시간 후 알람을 맞춘 채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똥강아지들과 함께 그대로 짧고 굵게 밤잠보다 더 달게 잤다.
일어나 창밖을 보았을 때 너무 이쁜 풍경에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 전 첫눈이 내리기는 했지만 그건 밤사이 조금이었고 내리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진 못했었다. 그런데 당장 내 눈앞에 춤을 추며 흩날리고 있는 눈송이는... 세상에나... 너무나 탐스럽고 예쁘잖아! 마치 커다란 스노우볼을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루피와 보아에게 패딩 조끼를 입히고 나 또한 모자와 장갑까지 챙겨 일단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에 공원이 많은데 그중 최고는 생태공원이다. 오가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사이사이 발길이 뜸한 곳도 제법 있으니 이처럼 눈이 내리는 아침이라면 고민 없이 생태공원의 인적 드문 길로 가야 한다. 예상은 적중했다. 산책로에 접어들었을 때 그곳은 누구도 다녀간 흔적이 없었고, 혹여 누군가 다녀갔다 해도 쉼 없이 내리고 있는 눈으로 이미 하얗게 덮혀진 길이 펼쳐져 있었다. 쭉 뻗은 길엔 나와 똥강아지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단단하게 메어있던 줄을 풀었다.
루피는 줄을 풀어도 내 곁에서 멀어지지 않았고, 보아는 그런 루피 곁에서 머물다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벌려 갔다. 각자의 취향대로 눈을 맞고, 눈을 밟고, 눈을 맛보고,... 눈 때문인지 오랜만에 풀어 준 줄 때문인지 녀석들이 굉장히 신나 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을 지켜보는 나 또한 굉장히 신이 났다. 녀석들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걷다 뛰다 그대로 멈춰서 그냥 바라만 보다 보니 내 마음은 쉼 없이 콩닥거리고 있었다. 집에서는 스노우볼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면 눈 쌓인 공원에서 눈을 맞고 있다 보니 스노우볼 안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루피와 보아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이 계절 한없이 가라앉지 않고 이렇게 눈 내리는 공원에 나와 등에 땀이 나도록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나를 살리고 채워주는 녀석들. 때로는 돌봄에 지치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결국은 나를 살리는 녀석들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일렁이는 마음을 잡고 녀석들의 사진을 찍고, 아무도 없는 눈밭을 찍고, 그 모든 순간을 남긴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기억을 위해 순간을 기록한다.
아침에 시끄럽게 울리던 행정안전부의 문자가 무색하게 제법 포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제 나의 스노우볼이 꿈이 아니었다는 걸 사진을 꺼내보며 확인한다. 이처럼 사진으로 남겨진 행복한 기억은, 분명 추운 이 계절은 물론 느닷없이 만나게 될 지뢰 같은 날들도 기꺼이 견뎌내는 사소하지만 강한 힘이 되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