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
보아가 침대로 올라와 이불속에 들어오겠다고 나를 깨운다. 녀석이 들어올 수 있게 이불을 들어주고 품 안에 들어온 똥강아지를 쓰다듬고 시계를 확인해보니 5시가 채 안 된 시간이다. 남편은 코를 골고 있고, 루피도 잠깐 잠에서 깼는지 거실에 나갔다 오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어온다는 것은 다시 잠들기 글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눈을 다시 감아보지만 역시나 글러먹었다. 그렇다면 그냥 일어나자.
안경을 챙겨 쓰고 핸드폰을 들고 어둡고 조용한 거실로 나와 전기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인다. 보리차 티백을 하나 챙기고 내 방으로 들어가 전등의 불을 켠 후 챙겨 온 티백을 뜨거운 물이 담긴 텀블러에 넣는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지만 노트북이 아닌 노트를 앞에 두고 앉는다. 그렇게 모닝 페이지를 썼다. 앞 장의 날짜를 확인해보니 두 달 만이다.
차를 마시려 고소한 보리차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입에 가져온 순간.
앗, 뜨거워!
아직 편히 마시기엔 많이 뜨겁다.
차를 내리기에 좋은 온도가 있다. 가늘고 어린 차는 낮은 온도에, 보이차나 우롱차는 높은 온도에서 우리는 것이 좋다. 물론 어떤 온도에서 차를 우린다 한 들 그게 맞다 혹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겠지. 다만, 조금 더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적정 온도'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마시는 차 마저 적정 온도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사람에게도 상황과 상대에 따른 그 적정 온도라는 게 있지 않을까.
항상 끓어올라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찌 매 순간 끓어오를 수가 있겠나. 중요한 건 그 순간에 알맞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되 언제든 필요한 순간에 끓어오를 수 있게 에너지를 축적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어떻게 축적시켜야 할까. 사람마다 그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매일 30분 이상 책을 읽고, 매일 한 문장이라도 손글씨를 쓰고, 매일 영양제를 챙겨 먹고, 매일 뭐라도 쓰고, 매일, 매일, 매일,... 그렇게 사소하지만 꾸준한 것들이 내 안의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매일 사소한 일상의 반복이 쌓여 단단해지면 분명 끓어올라야 하는 순간 끓어오를 수 있게 만들어 줄거라 믿는다.
믿는다,라고 썼지만 사실 매일매일 해 오던 것들을 매일매일 하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실제로 모닝 페이지도 두 달 만이 아닌가. 그나마 이 중에 '매일'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쓰는 것뿐. 책을 읽는 것도, 손 글씨를 쓰는 것도, 하다 못해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도 그 '매일'이 안되고 있으니 요즘의 내가 자꾸 바람 빠진 인형같이 느껴지는 건지도.
다관을 갖추고 내린 차도 아닌 고작 1.5g의 티백을 우려 마시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역시 세상 만물에 다 배움이 있다는 걸 이렇게 또 깨닫는구나.
두 달만의 미라클 모닝은 내 몸만 깨운 것이 아님을.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