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는 여자, 고기 굽는 남자
언젠가부터 숯불에 고기 구워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남편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캠핑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지, 캠핑장이 있는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데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똥강아지 루피와 보아가 있고, 그곳은 반려견 동반이 불가한 곳이기 때문에 애초에 제쳐두었다는 게 맞겠다. 그러다 문득, 어차피 우리는 숙박을 하지 않을 것이고 캠핑장 옆에 피크닉장이 있으니 거기에서 몇 시간 있다 오는 것은 굳이 똥강아지들을 데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왜 이 생각을 이제야 했을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그늘막 텐트를 들고 근처 한강으로 나가 가벼운 피크닉을 즐겼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느끼며 텐트 안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챙겨 온 음식을 먹기도 하고, 그러다 낮잠을 자도 좋은 그런 시간을 보냈다. 가서 읽을 책이나 먹을 음식이나 BGM처럼 들을 음악을 챙기는 것은 나의 몫. 텐트와 의자를 챙기고 음악을 좋은 소리로 즐길 수 있는 스피커를 챙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고 다시 걷는 일까지가 남편의 몫이다.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세팅이 완벽히 되었을 때, 남편의 이마엔 언제나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단 한 번도 그는 그 일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내게 그 일을 나누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리를 잡으면 의자를 먼저 펼쳐두고는 나를 앉혀두는 것이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뭐라도 하려 엉덩이를 들썩거리면 '가만히 앉아있는 게 너의 일'이라고 늘 말해왔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한강을 벗어나 이곳에 와서도 남편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비록 이제는 텐트를 설치할 필요는 없지만 숯불을 피울 화롯대와 숯을 챙기고 그곳에서 필요한 다른 준비물을 챙긴다.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자르고 내 앞에 놓기까지 모든 건 그의 몫이다. 나? 나 또한 한강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떠나기 직전의 것들을 하지. 가서 먹을 것을 준비하고, 들을 음악을 준비하고, 맛있게 먹고 신나게 즐길 마음을 준비한다.
한 번은 동네 삼겹살집에 갔을 때였다. 우리와는 정 반대인 커플을 보았는데 아주머니는 고기를 굽고 있었고 그 남편은 앞에서 앉아 먹고 먹고 또 먹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고기를 굽는 아주머니의 손이 쉴 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 마치 내가 그 테이블의 남자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이제 내가 구울까?" (이마저도 '구울게'가 아니라 '구울까'였다.) 그는 웃으며 "집에선 마누라가 하잖아. 원래 밖에 나오면 남편이 굽는 거야. 나 고기 굽는 거 좋아해." 라며 고기 한 점을 내 앞에 갖다 주었다.
그래, 맞다. 이 사람은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내 지난 언젠가 우리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저녁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무리한 후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아마 나도 모르게 피곤함을 토로하는 말이 나왔나 보다.
"저녁밥에 너무 신경 쓰지 마. 난 아무거나 줘도 잘 먹어. 알잖아."
"응. 힘든데 힘들지 않아. 좋아서 하는 거야. 내가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거든."
한두 번도 아니고 싫은 걸 억지로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나 나나 모두 진심인 거지. 그 결과 집 안에서는 내가, 집 밖에서는 그가. 어느덧 자연스레 우리는 서로의 어미새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우리는 몇 시간 짧은 캠크닉을 즐기러 갈 것이다. 그 시간을 채워 줄 귀가 편한 음악과 그가 좋아하는 어묵탕을 준비해야지. 그곳에 가서는 언제나처럼 난 아기새가 되어 어미새 남편이 주는 고기를 맛있게 받아먹을 거고, 그가 애써준 덕에 힐링의 시간을 갖게 될 거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즐겨야겠다. 그 순간의 행복을 기꺼이 만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