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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Nov 23. 2022

새로운 꽃말이 생기는 마법

칼란디바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후부터 순간순간 명치끝이 불편해지곤 했다. 비록 제법 오래전이긴 하지만 첫 만남의 기억이 나쁘지 않았으면서도 말 많은 '시'이모님들 중 한 분이기 때문일 거고, 며느리로서 지금 내 포지션이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말 보태기 좋은 상황이기도 해서였으리라.


사실 시어머니나 시누이는 내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금치도 먹기 싫게 만드는 시월드'는 아니다. 아이에 대한 압박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참견을 하지도 않으니. 


나의 시어머니는 일곱 자매의 넷째. 우리끼리(남편과 시누이를 포함한 사촌 동기간) 부르는 호칭으로는 4호다. 1호와 3호는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고 그중 1호는 몇 해 전 명절을 하루 앞두고 돌아가셨다. 이제는 홀로 미국에 머물고 계시는 3호가 10여 년 만에 한 달 일정으로 부부가 함께 한국에 나오신 거다. 


처음 보름간은 김포의 2호와 함께 계시다 나머지 보름은 내 시어머니인 4호와 함께 지내시는 일정. 거처가 어디든, 미국이든 한국이든, 시차와 상관없이 자매들이 모인 단톡방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쉼 없이 울려대는 걸 알고 있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는 자식들은 물론 며느리와 사위들에 대한 얘기도 포함이라는 것도. 물론 4호인 내 시어머니는 주로 청자에 가까운 분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워낙 말하기 좋아하는 분들이니 이따금 종일 바쁜 그 단톡방에서 대체 어떤 얘기들이 오가는지 궁금하면서도 아예 모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결혼초 시가 쪽 사람들이라면 꼬맹이도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안 그래도 말 많은 이모들 중 독보적이고 필터링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는 6호의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상처받았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불쾌하다. 그리고 그 불쾌함 뒤로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하지 못하고 동공만 흔들리고 있던 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만다. 그래서인지 이번 3호와의 약속을 잡고도 마치 마인드 컨트롤을 하듯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고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또 돌렸다. 당황해서 어버버하지 않으려. 못되고 되바라진 조카며느리가 되더라도 할 말은 꼭 하자는 생각으로. 


머릿속으로 작성한 시나리오를 수없이 복기한 후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다. 번거로운데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으로 시작된 만남은 얼굴을 마주하기 직전까지 머릿속에서 펼쳐졌던 드라마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메뉴로 식사를 하고, 10여 년 전 함께 갔던 카페에 다시 가고 싶다셔서 식사 후엔 한참을 달려 그곳엘 다시 찾아갔다. 역시 이곳은 여전히 좋다며 좋은 곳에 데리고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이모님의 말씀에 부끄러웠다. 다 같이 사진 찍자고 내 옆에 서시며 정작 당신의 조카인 남편에게 카메라를 내미시는 이모부님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고 말았다. 휴가 내서 미국에 놀러 오라고 하시는 말씀에 그저 인사뿐이라도 감사했고, 아무래도 살아생전에 다시 나오기는 힘들 테니 어쩌면 우리 이렇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씀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걱정은 가불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도 결국 이렇게 또 미리 땡겨서 머릿속으로는 온갖 막장 드라마를 써 내려갔던 나는 2류도 아닌 3류였다는 생각에 숨고 싶어졌다.  


길지 않은 하루의 일정이 피곤하셨는지 숙소인 시가에 도착하자마자 이모부님은 방으로 들어가 주무시고 우리가 대문 밖을 나오기 전까지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셨다. 헤어질 때 건강하라며 꼭 안아주신 이모님, 자느라 가는 걸 보지 못했다며 따로 전화까지 해주신 이모부님의 마음이 전해져 따뜻했다. 정작 내 이모와 이모부와도 이런 정을 나누지는 못했었는데 말이다.


다음날 부모님 산소에 가신다며 국화 화분을 사러 가신 화원에서 너무나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 준 조카며느리에게 이모부가 뭐라도 사주고 싶어서 그러니 골라 보라는 말씀에 바로 눈앞에 화분을 집었다. 꽃은 작지만 겹잎이라 탐스러운 오렌지빛 칼란디바. 설레임이란 꽃말을 가진 칼란디바에 이제는 시이모와 시이모부라는 꽃말이 새롭게 붙었다. 말씀처럼, 살아서 우리 다시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칼란디바를 보게 되면 이날의 부끄러울 정도로 성급했던 내 마음과 따뜻했던 기억이 살아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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