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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Dec 20. 2022

기어코, 코로나

확진자의 푸념

결혼하고 꽉 채운 12년. 처음 1년은 친정 옆에, 이후 6년은 시가 옆에 살았지만 그마저도 친정과 30분 거리였다. 지금 사는 곳도 막히지 않는다면 편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결혼 후 단 한 번도 친정에서 잠을 자고 온 적이 없었는데, 하필 그날은 처음으로 1박을 계획한 날이었다. 


밤새 뒤척인 새벽. 밤 사이 옆에 있는 남편이 나를 때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몸이 너무 아팠고, 으슬으슬 몸살 기운도 있는 듯했다. 주말답게 늦잠 자는 남편을 기다리다 느지막이 일어난 그와 함께 똥강아지들 산책을 나가려다 열감이 있어 체온을 재보니 37.6. 전날 저녁에도 등이 시린 듯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며칠 전 눈이 참 예쁘게도 내린 날 긴 시간 산책을 했던 탓에 그저 감기 기운인가 싶었다. 일단 산책을 하고 들어와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한숨 더 자보려던 찰나,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바로 코로나. 다행히 사다 놓은 자가 검사 키트가 있어 목과 코를 연달아 찌르고 확인을 하니 대조선 옆으로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나타났다. 


일단 병원으로 갔다. 확진이 맞다는 병원의 확인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럴 확률은 매우 낮지만 자가 검사 키트가 불량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분명 코를 찔렀는데 목이 찔린 것 같은 기묘한 통증을 경험하고 눈앞에 마주한 선명한 두 줄. 그렇게 마침내 기어코 난 COVID-19 확진자가 되었다.


양성 확인서와 확진자 안내문을 들고 약국을 들러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남편은 내 방에 최적의 격리 환경을 만들어 두었다. 간이침대 위로 1인용 전기요와 포근한 구스 이불, 머리맡에 둘 베개와 다리를 올릴 수 있는 쿠션까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으며 책상 위 가습기는 이미 최대 분무 량으로 방 안의 습도를 한껏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위생장갑부터 끼고 체온계와 여분의 마스크와 장갑과 충전기를 챙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그의 다정한 배려가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야속한 마음이 든다. 이내 철없는 야속한 마음은 지우고 고마운 마음만 남기기로 했다. 


그동안 밀접 접촉자이기는 했어도 한 번도 확진이 된 적은 없었다. 우리는 슈퍼항체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건방진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실 확진이 된다 하더라도 만나는 사람들이나 동선이 한정적인 나보다야 남편이 확률상 더 높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뻔한 동선 속에서 생활해 온 내가 확진이라니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뭐, 그렇다고 사람들을 아예 만나지 않고 살았던 것은 또 아니니 어쩔 수 없기는 하지. 이번에도 역시 검사 결과 남편은 음성이고, 아직까지는 의심을 해 볼 만한 어떠한 증상도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필이면 친정에 가기로 한 날 확진이라니. 자주 보는 사이지만 그래도 결혼 후 처음으로 자고 갈 딸을 기다리고 있을 내사랑 김여사에게 다른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결국, 전화를 걸어 나의 확진 소식을 최대한 가볍게 전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니, 가볍지 않으면 어쩔 거야. 확진되었던 날인 17일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3,536 명이, 전국에서는 무려 31,702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난 그저 31,702 명 중 하나일 뿐이다. 어디선가는 두 번 세 번 확진될 때 이제 겨우 처음 확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운이 좋다면 좋은 사람인 거고. 휴. 


내사랑 김여사와 전화를 끊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기다렸다는 듯 콧물이 눈물처럼 흘렀고, 그런 콧물을 닦고 있자니 이번엔 정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열을 재보니 39.3. 열이 오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더 아픈 것 같다. 언젠가 소파수술 후 고열로 눈앞에 아지랑이가 필 때도 38.5 였는데 39.3 라니  어쩐지 주르륵 흐른 내 눈물에 당위성을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딸이 온다고 이것저것 준비 많이 하셨다는 엄마에게 음식은 열심히 드시고 짐들은 다시 다 풀어놓으시라고 말을 했지만, 정작 나는 친정에 가져가려고 챙겨 놓은 것들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조금씩 증상은 있지만 처음 이틀보다 눈에 띄게 컨디션은 좋아지고 있다. 갇혀 있는 이 방에서 탈출하게 되면 처음 계획대로 하루 자고 오지는 않더라도 꼭 그 가방 그대로 들고 다녀와야지.



일단 너희와 부비부비부터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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