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의 푸념
결혼하고 꽉 채운 12년. 처음 1년은 친정 옆에, 이후 6년은 시가 옆에 살았지만 그마저도 친정과 30분 거리였다. 지금 사는 곳도 막히지 않는다면 편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결혼 후 단 한 번도 친정에서 잠을 자고 온 적이 없었는데, 하필 그날은 처음으로 1박을 계획한 날이었다.
밤새 뒤척인 새벽. 밤 사이 옆에 있는 남편이 나를 때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몸이 너무 아팠고, 으슬으슬 몸살 기운도 있는 듯했다. 주말답게 늦잠 자는 남편을 기다리다 느지막이 일어난 그와 함께 똥강아지들 산책을 나가려다 열감이 있어 체온을 재보니 37.6℃. 전날 저녁에도 등이 시린 듯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며칠 전 눈이 참 예쁘게도 내린 날 긴 시간 산책을 했던 탓에 그저 감기 기운인가 싶었다. 일단 산책을 하고 들어와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한숨 더 자보려던 찰나,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바로 코로나. 다행히 사다 놓은 자가 검사 키트가 있어 목과 코를 연달아 찌르고 확인을 하니 대조선 옆으로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나타났다.
일단 병원으로 갔다. 확진이 맞다는 병원의 확인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럴 확률은 매우 낮지만 자가 검사 키트가 불량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분명 코를 찔렀는데 목이 찔린 것 같은 기묘한 통증을 경험하고 눈앞에 마주한 선명한 두 줄. 그렇게… 마침내… 기어코… 난 COVID-19 확진자가 되었다.
양성 확인서와 확진자 안내문을 들고 약국을 들러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남편은 내 방에 최적의 격리 환경을 만들어 두었다. 간이침대 위로 1인용 전기요와 포근한 구스 이불, 머리맡에 둘 베개와 다리를 올릴 수 있는 쿠션까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으며 책상 위 가습기는 이미 최대 분무 량으로 방 안의 습도를 한껏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위생장갑부터 끼고 체온계와 여분의 마스크와 장갑과 충전기를 챙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그의 다정한 배려가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야속한 마음이 든다. 이내 철없는 야속한 마음은 지우고 고마운 마음만 남기기로 했다.
그동안 밀접 접촉자이기는 했어도 한 번도 확진이 된 적은 없었다. 우리는 슈퍼항체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건방진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실 확진이 된다 하더라도 만나는 사람들이나 동선이 한정적인 나보다야 남편이 확률상 더 높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뻔한 동선 속에서 생활해 온 내가 확진이라니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뭐, 그렇다고 사람들을 아예 만나지 않고 살았던 것은 또 아니니 어쩔 수 없기는 하지. 이번에도 역시 검사 결과 남편은 음성이고, 아직까지는 의심을 해 볼 만한 어떠한 증상도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필이면 친정에 가기로 한 날 확진이라니. 자주 보는 사이지만 그래도 결혼 후 처음으로 자고 갈 딸을 기다리고 있을 내사랑 김여사에게 다른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결국, 전화를 걸어 나의 확진 소식을 최대한 가볍게 전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니, 가볍지 않으면 어쩔 거야. 확진되었던 날인 17일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3,536 명이, 전국에서는 무려 31,702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난 그저 31,702 명 중 하나일 뿐이다. 어디선가는 두 번 세 번 확진될 때 이제 겨우 처음 확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운이 좋다면 좋은 사람인 거고. 휴.
내사랑 김여사와 전화를 끊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기다렸다는 듯 콧물이 눈물처럼 흘렀고, 그런 콧물을 닦고 있자니 이번엔 정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열을 재보니 39.3℃. 열이 오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더 아픈 것 같다. 언젠가 소파수술 후 고열로 눈앞에 아지랑이가 필 때도 38.5℃ 였는데 39.3℃ 라니… 어쩐지 주르륵 흐른 내 눈물에 당위성을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딸이 온다고 이것저것 준비 많이 하셨다는 엄마에게 음식은 열심히 드시고 짐들은 다시 다 풀어놓으시라고 말을 했지만, 정작 나는 친정에 가져가려고 챙겨 놓은 것들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조금씩 증상은 있지만 처음 이틀보다 눈에 띄게 컨디션은 좋아지고 있다. 갇혀 있는 이 방에서 탈출하게 되면 처음 계획대로 하루 자고 오지는 않더라도 꼭 그 가방 그대로 들고 다녀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