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있던 전날 밤, 상암까지 가는 방법을 수도 없이 확인했다. 버스를 한 번, 전철을 두 번, 그리고 마을버스를 또 한 번 타야 한다. 평일 오전의 버스 배차 간격이 어느 정도인지, 전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정류장은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보고 또 보았다. 물론 당일이 되어도 매 순간 확인하면서 갈 테지만, 그건 또 그거고.
녹음 당일,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께 인사하고 스마트 워치를 찍는데, 잔액이 부족하다는 안내음이 나온다. 응?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스마트 워치로 티머니를 사용한다. 처음 설정할 때 충전형에 금액을 10만 원으로 설정해 놓았으나 달에 사용하는 금액이 턱도 없이 부족해, 얼마 전 설정 금액을 변경한다는 게 아예 취소를 해놓았나 보다. 잔액 부족으로 버스 요금을 결제하지 못하고 있었고, 갖고 있는 카드 중에서 교통카드가 되는 카드는 없어 당황하던 차에 버스는 이미 출발을 하고 말았다.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앞자리에 앉아 급하게 앱에 접속해 충전을 했다. 분명 바람이 시원한 날이었는데 땀이 맺혔던 것도 같다.
고작 한 정거장 갈 정도의 짧은 거리였지만 뭔가 삐끗했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우짜지. 오늘 녹음 우짜지. 아이 난 몰라…'
그러다 문득 그동안 익히 들어왔던 쉽게 가면 마누스가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자 맺혔던 땀에 바람이 와닿은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공식적으로는 쉬어가는 중인(그러나 완벽하게 쉬지도 못하고 있는) 대표님이 매니저가 되어주기로 하셨다. 먼저 도착해 긴장을 가라앉히며 창밖을 보고 있자니 익숙한 모습이 횡단보도 앞에 와 선다. 대표님이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순전히 녹음에 동행해 주시기 위해 당일 치기로 오신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든든한 마음까지도. 멀리 서 있는 모습만 보고도 든든한 마음이 들다니, 1년 전 봄에는 출판사와 첫 약속 장소에 들어가며 침도 못 삼킬 정도로 긴장하던 나였는데. 시간의 흐름이란, 그리고 관계의 변화란 이렇게 참 재미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떻게 녹음을 마쳤는지 모르겠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주 조금은 덜 떨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많이 웃었으며,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었을 정도로 아쉬웠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국악방송 라디오 이번 주 초대손님에 내 얼굴이 올라왔다. 마치 꿈만 같던 날이 정말 꿈처럼 희미해져가고 있었는데 다시 긴장모드다.
어떻게 녹음을 마쳤는지는 토요일에 방송을 들으면 알 수 있겠지. 비록 숨고 싶은 순간일지라도 그만큼은 나아가는 거겠지.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출간 이후 지금까지 매 순간 용기가 필요했다. 그 어느 순간에도 후회는 없었고 덕분에 나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그리고 그 길에서 어떤 용기가 필요하고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될지 알 수는 없다. 좌절하는 날도, 숨고 싶은 날도 있을 테지만 돌아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