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미리 녹음을 하고 온 국악방송 라디오가 어제 방송되었다. 분명 긴장하고 입이 바싹 마르는 듯했는데, 방송을 통해 들었을 땐 잘 느껴지지 않았다. 방송 너머의 나는 신기하게도 긴장은 찾아볼 수도 없이 많이 웃고 있었다. 평생을 들어온 내 목소리지만 이렇게 방송을 통해 들으니 어쩜 그렇게도 낯설던지.
남편과 거실에 나란히 앉아 들으며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따금 나와 진행자분의 추임새를 따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쓰는 글을 그가 보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이 책은 다르다. 이 책만큼은 그가 꼭꼭 씹어 읽기를 바란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시간을 꺼내와 외면하던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미루던 그가 얼마 전 아직 그 시간 속 본인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아직은 책을 못 읽겠다고 말이다.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의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그의 마음 역시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니. 때문에 보다 자연스러운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리뷰를 옆에서 낭독처럼 읽어주곤 한다. 방송 중 책의 일부를 낭독하는 시간이 두 번 있었고, 차마 눈으로 읽지 못한 책을 짧게나마 귀로 듣게 된 그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잘했네" 딱 이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일요일 아침, 오늘 남편이 늦잠을 자는 동안 녹음해 둔 방송을 혼자서 조용히 다시 들어보았다.
진행자분은 방송 말미에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진솔하다는 단어가 생각났다"라고 했다.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들려주는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것, 참 기분 좋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멘트도 함께. 나의 이야기를 진실하고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더불어 마찬가지로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했다고.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날들>의 키워드는 난임, 상처, 치유 그리고 용기라고 나는 말한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나는 그 용기가 필요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첫 번째는 마주 보는 일이다. 그리고 상처를 마주 보는 데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자기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언젠가 불현듯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려는 마음이 들 때, 그렇게 용기가 필요한 순간 나의 '날들이'가 미약하게나마 용기의 연료로 쓰이기를 기대한다. 당장 내 곁에 남편의 용기에 연료가 되어야 할 테지만 성급히 넣었다간 연기만 나다 불도 붙지 않을 수 있으니 일단 기다리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