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지
우리가 3일간 사용하게 될 빈소는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사용이 가능하니 아직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사이 난 내 강아지들, 루피와 보아의 거취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언젠가 우연히 발견하고 메모해 두었던 곳이 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이다. 그건 루피의 실외 배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일반적인 반려견 호텔은 실외 배변견을 위한 배변 산책은 하지 않는다). 마침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신 날 통화를 한 번 했었다. 당시엔 일이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그저 연습 삼아 한 주 뒤에 1박으로 예약만 해둔 것이었다.
아침 8시.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씀드렸다. 아직 맡길 곳을 찾지 못한 오빠네 11kg 중형견인 설이도 함께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데리고 오라고 해주셨다. 보통 소형견과 중형견을 함께 예약받지는 않지만 다행히 이번 주엔 우리 말고는 다른 예약이 없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평소 특별히 별원에 갈 일이 없던 루피가 하필 바로 전날 왼쪽 눈에 상처가 나 병원에 다녀왔다. 하루에 두 번 약을 먹어야 하고, 최소 세 번 두 가지 안약을 넣어야 했다. 복용과 투약 관련 메모를 적고 약을 따로 지퍼백에 담았다. 3일 동안 먹을 사료와 간식, 배변패드를 넉넉하게 담을 짐가방을 들고, 영문도 모르는 내 강아지들과 오빠네로 갔다.
남편과 엄마는 오빠와 함께 병원으로, 나와 올케언니와 조카 원이는 강아지들을 맡기기 위해 시터 주택으로 향했다. 식이 알레르기와 아토피가 있는 보아, 겁이 많은 루피의 성향을 설명하고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그곳을 떠나올 수 있었다. 그 사이 병원에서는 장례에 필요한 구체적인 절차들이 진행 중이었다. 영정사진부터 빈소 제단에 올릴 꽃과 음식의 종류, 도움 주실 여사님들의 인원수, 아버지를 운구할 때 리무진을 할 건지 버스로 할 건지까지. 장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필요한 모든 것들을 결정해야 했다.
빈소에 도착하니 부대에서 새벽에 연락받고 급하게 휴가 나온 오빠의 아들, 조카 건이가 와있었다. 아이가 있는 부대가 멀지 않아 어찌나 다행인지. 말년 병장인 건이는 봄에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며칠 전 아버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빠와 통화하며, 건이가 제대할 때까지는 버텨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걸 못 기다려 주셨네. 한 달 전, 아버지 생신에 휴가를 맞춰 나와 만났던 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때는 한 달 뒤인 지금 이렇게 장례식장에 있을 거라는 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겠지만 아버지에게 건이와 원이는 정말 남달랐다. 언제나 무표정이던 아버지를 웃게 했고,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랑한다는 말도 아이들에게는 아끼지 않았으니. 그 낯선 다정함에 질투 나기보다 다행이라고 여겨졌던 건, 당신의 감정은 꾹꾹 눌러 담고만 살던 분이 비로소 꺼낸 마음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상조회사에서 준비해 준 상복(양말과 속에 입을 티까지 준비되어 있다)으로 갈아입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루피와 보아를 맡긴 시터 주택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루피의 약이 없다는 거다. 아무래도 약을 담은 지퍼백을 따로 챙겨두고 짐가방에 넣지 않았는가 보다. 아침부터 조문객이 오진 않을 테니 집에 가서 약을 챙겨 다시 전해주고 올까를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서둘러 루피와 보아가 다니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약을 다시 처방받고, 퀵을 섭외해 병원에서 다시 약을 보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일은 해결되어 갔다.
슬픔은 늘 그래왔던 것 같다. 마냥 무너져 있지만은 않게,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는 작은 사탕을 함께 쥐여준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까지 여유가 있었던 것, 루피와 보아 그리고 설이까지 함께 마당이 있는 주택에 맡길 수 있었던 것, 건이의 부대가 멀지 않았던 것과 빠뜨린 약을 빠르게 다시 보낼 수 있었던 것까지. 모든 상황이 참 운이 좋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딱 그 하나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