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 나지 않는 이별의 시작
우리가 병원을 나선 시간은 새벽 5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한 시간 사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슬퍼하고, 사망 진단서를 받고, 수납까지 마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들어가서 흰 천으로 덮여 나오는 시간 못지않게 짧았다.
곧 임종하실 것 같으니 빨리 와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엄마는, 집에서 몸만 나온 상태였다. 며칠간 집을 떠나 있어야 하니 뭐라도 챙겨야 했다. 하다못해 속옷과 스킨로션이라도. 서둘러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서던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안방을 시작으로 집안의 모든 등에 환하게 불을 밝혔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어두우면 무서울 것 같다면서. 집안을 밝게 비추는 불빛들만이 텅 빈집을 대신해 줄 유일한 온기였다. 더불어 이제 다시는 아버지가 불 꺼진 집을 지키고 계시지 않을 거라는 슬픈 인정의 시작이었다.
엄마를 모시고 인천 내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나누었던가. 포천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삼촌의 이야기를 하거나, 새벽에 나간 우리를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을 강아지들의 이야기를 했던가. 그 새벽,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버지의 이야기만은 피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에서조차, 아버지의 죽음은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기에.
머릿속에선 하루 전 새벽 응급실 내과 담당의와 통화했던 내용만 복기되고 있었다. 간경화가 심하고 그 때문에 폐에 물이 차 있다는 얘기. 간성혼수가 있어 의식이 처진다는 얘기. 지금은 약물로 의식을 잡고 있으나 간성혼수가 왔다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예후라는 얘기. 이 상태가 반복되면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 혈압이 매우 낮아 당장이라도 심정지가 올 수 있다는 얘기. 그리고 그 끝엔 연명치료에 대한 설명과 그 선택 앞에서 가족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희망 같은 게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가기 싫어하시던 분이 드디어 병원에 가셨으니까. 병원은 아픈 곳을 치료하고 낫게 하는 곳이니까. 그러니 이제는 치료받으시고 응급실에서 나와 요양병원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오빠와 나는 집에서 멀지 않으면서 시설 및 평가가 괜찮은 병원을 찾아보고 있었다. 몇 시간 사이에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거나, 연명치료에 대해 듣게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서.
아버지는 같은 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평소 병원을 '절대' 가지 않으시는 분이라 당신 스스로 백내장 수술을 받겠다고 하셨을 때,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눈 이외에도 전반적으로 아버지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을 테니까. 덕분에 비뇨기과와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받았으나, 간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평생 술을 놓지 못했는데도 간은 괜찮은가 보다 하며 우리 가족 모두 다 놀랐었다. 아버지는 그때, 모르긴 몰라도 당신에게 술은 독이 아니라 약이라며 웃으셨던가. 그 웃음이 불과 1년 반 전이다.
연명치료를 하게 되면 배우자와 1촌 이내 가족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중단할 수 있다고 했다. 연명치료란 회복이 아닌 유지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유지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버는 것 이외 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겨지게 될 가족을 위한 욕심이라는 걸 안다. 결국 우리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결정을 아버지 당신이 하실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만약 직접 선택하실 수 있다고 해도 아버지는 역시 같은 선택을 하실 거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