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하지 못한 말

잠든 아버지와 삼키지 못한 상처들

by 이은

1월 11일 오후 1시.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인사를 하는 시간. 입관이었다. 빈소를 아예 비워둘 수가 없어 걱정하던 차, 마침 막내 이모와 사촌 동생들이 와주었다. 사촌 동생에게 빈소 입구자리를 지켜달라 부탁했다. 우리 가족 모두와 아버지의 형제인 고모와 작은아버지, 엄마의 형제인 이모가 마지막 인사를 함께 했다.


삼베옷을 곱게 입은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옷을 여러 겹 입은 걸까. 비쩍 마른 생전의 아버지와는 달리, 풍채가 좋아 보였다. 임종 직후에는 끝끝내 다 감지 못했던 왼쪽 눈이, 지금은 마치 편히 잠든 것처럼 잘 감겨 있었다. 다가가 손을 잡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두 손은 갓난아기에게 손싸개를 해놓은 것 마냥 천으로 감싸져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엄마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엄마까지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버지를 부여안고 말 그대로 목 놓아 통곡을 하는 엄마를 내가 부축했고, 그런 내가 주저앉지 않게 남편이 날 잡아 주었다.


아버지의 왼쪽으로는 내내 눈물을 감춰오던 오빠가 있는 대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오빠의 우는 얼굴을 보니 중환자실에서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심하게 떨고 있던 손이 떠올랐다. 그때는 미처 오빠의 얼굴까지 살피지는 못했는데, 지금 같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입관실 안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누구 하나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하나 아버지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은 마치 거대한 스펀지를 가져다 대면 순식간에 묵직하게 다 젖어버릴 것만 같은, 슬픔의 습도로 가득 차 있었다.


고모는 빈소에서도 입관실에서도 내내 같은 말을 했다.

"착한 내 동생 불쌍해서 어쩌나. 세상에 너희 아버지처럼 착한 사람이 없었다. 극락왕생 하거라. 아이고 내 동생. 아이고 착한 내 동생…"

듣기 싫다. 난 고모의 그 말이 왜 그리도 진저리 나게 듣기 싫었을까.


아버지는 고모의 말처럼 착한 사람이었다. 특히 당신의 원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하디 착한 사람이었다. 가정을 버리고 밖으로만 나돈 큰아버지를 대신했다. 술만 마시면 개차반이 되는 동생에게도 참다 참다 한 마디 겨우 할 뿐이었다. 당신의 부모는 물론 남편이 사라져 혼자 남은 형수, 그리고 조카들을 어린 아내에게 맡겼다. 그렇게 돈을 벌러 나가 열흘에 한 번, 보름에 한 번 집으로 돌아왔다. 임신한 배가 불러와도 돈이 없어 임부복을 사 입지 못하는 아내에게 같은 시기에 임신한 제수씨의 임부복을 사주라고 돈을 쥐여주는 사람이었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부유했으면서도 그 모든 고단한 일에는 등을 돌리고 살아온 고모였다. 사정이 어려워 손을 내밀었을 때조차 매정하게 외면했던 방관자. 그런 고모가 내뱉은 '착하다'는 말은, 모든 짐을 남에게 떠넘긴 자가 누리는 얄미운 감탄사처럼 들려 더 진저리가 났다.


이후 분가를 했다고 사정이 크게 달라졌을까. 나눌 수 있는 마음과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그 마음의 우선순위에서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나는 항상 뒷전이었다. 마치 한 달 열심히 일해 월급을 가져다주는 것만으로 당신의 몫은 다 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마음의 방향키는 언제나 고향 집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고모의 그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언제나 아버지의 등을 보고 살아온 우리 가족의 시간을 증명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와는 달리 고모는 늘 아버지의 앞모습만 보고 살았던 것 같아서, 슬픔 와중에도 화가 치밀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이 떨어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녹록지 않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감사해요. 잘 가요, 아빠."


끝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뒤이어 아버지의 얼굴 위로 삼베 천이 덮였다. 정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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