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에서 다시 삶으로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가 무척 힘들었다. 다시 빈소로 돌아온 후 어떻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조문객을 맞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현실이 아닌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입관에 들어가기 전 장례지도사를 만나 장지와 유골함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여서일까. 아직 하루에 가까운 시간이 남았음에도 장례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짙게 들었다.
아버지의 임종 직후 우리는 장지로 인천가족공원을 떠올렸다. 오빠와 나 모두 인천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제 더는 운전하지 않는 엄마가 대중교통으로 오가기 어렵지 않은 곳이니. 그러나 그곳은 사망자 기준 인천시민을 위한 곳이었다. 오빠와 내가 인천에 살고 있지만 둘 다 십 년이 채 되지 않았고, 우리가 십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을 살았어도 사망자인 아버지의 거주 여부가 우선 조건이니 해당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경기도 포천이 고향이며 그곳을 떠나서는 내내 서울에 거주하셨다. 서울에는 마땅한 곳이 없고, 그렇다고 왕래가 거의 없는 포천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지로 정해놓은 곳이 없다는 우리의 말에 장례지도사는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 인천경기권의 몇 군데 추모공원의 안내 책자였다. 그 가운데 자차와 대중교통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해야 했다. 이어 유골함의 모양, 겉에 새겨지는 무늬까지 선택하다 보니 상주에게 장례란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본격적으로 빈소가 차려지기 전부터 시작됐다. 제단의 규모부터 어떻게 꾸밀 것인지 세부적인 부분까지 선택해야 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떡 추가를 반 말과 한 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고, 그 와중에 송편과 절편 사이에서 골라야 했다. 살아있음이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듯, 결국 죽은 자를 추모하는 장례식도 남겨진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연장선이었다.
수많은 선택을 반복하며, 장례는 빈소를 떠나 화장장으로 이어졌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어머니가 무너졌던 순간은 다름 아닌 화장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당시에는 화장이 시작된다는 안내와 함께 관을 향해 양옆에서 불길이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 여과 없이 보였다. 임종 직후에도, 장례를 치르는 중에도, 심지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인 입관 때에도 잘 견디시던 분이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엄청난 화력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 앞에서는 끝내 오열하셨다. 불길이 잦아들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이 받아 든 유골함은 열기가 그대로 남아 뜨거웠다. 눈으로 보았던 불길의 충격과 손끝에 닿았던 낯선 열기는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아버지의 화장을 앞두고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당시의 충격과 감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두려웠다. 화장 자체보다도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될 엄마를 보는 일이. 그러나 다행히도 불길이 뿜어져 나오기 전 문이 닫혔고, 화장이 끝난 이후엔 냉각 처리가 되어 유골함은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화장 이후 열기보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나무 상자만큼이나 아버지가 한 줌의 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차가운 비현실로 다가왔다. 엄마는 물론 가족들 모두 끝내 슬픔을 누르지는 못했지만, 그 슬픔의 결은 거대한 스펀지를 대기만 해도 순식간에 젖어버릴 것만 같던 입관실의 그 눅진한 습도와는 미세하게 달랐다. 온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서둘러 아버지를 안치할 마지막 장소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아버지가, 그러니까 남편이 미워 죽겠을 때 엄마는 죽어서는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죽어서까지 이 집안에 같이 묻히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다 또 어느 날엔 마치 당신의 운명인 양, 그래도 같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엄마는 '당연히' 아버지와 함께인 미래를 생각한다. 고마운 순간은 있어도 고운 순간은 없었다지만, 미우나 고우나 평생을 함께한 부부이니까. 모든 미움을 덮고 앉아 결국 함께이기를 결정하는 것은 엄마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결국 언젠가는 오게 될 그날을 위해 두 분의 자리를 마련했다. 유골함이 안치되는 순간, 봉안당의 서늘했던 공기가 조금은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추위를 싫어하는 아버지의 자리가 양지바른 곳이라 다행이라며 겨우 안심했다. 유골함 앞에서 한참을 울먹이던 엄마는 마지막 발걸음을 떼며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인사했다. "혼자 외로워도 잘 있어. 또 올게."
이제 우리 앞에 또 어떤 선택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선택을 향해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장례가, 이로써 모두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