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등에 업고

각자의 자리로 한 발

by 이은

장례식 내내 입관할 때를 제외하고는 조카 건이와 원이가 빈소 입구를 지켰다. 아이들은 장례식장에 손님으로조차 가 본적이 없었다. 공기부터 낯설었을 그곳에서 배달되는 화환을 접수하고, 영수증을 챙기고, 조문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발을 정리했다. 고작 사흘만에 그 모든 일에 능숙해져 있었다.


첫째 날 아침이었다. 본격적으로 조문객이 오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버틸 수 있다며 도우미 여사님들은 우리의 식사를 챙겨주셨다. 어른들이 마치 급하게 에너지를 충전하듯 밥을 먹는 동안 아이들은 조용히 일어났다. 건이는 빈소 입구 자리를 지키고 앉았고, 원이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가 섰다.


모두가 각자 자신이 맡은 일, 지금 해야 하는 일로 분주히 빈소를 오갔다. 나는 조용히 원이 뒤로 가 앉았다. 등 뒤로 누가 오가든 상관없이 원이는 계속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 순간엔 마치 아버지와 원이만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본격적인 조문이 시작되기 전의 분주함이 원이의 등 뒤에서는 자연스레 소멸되는 것만 같았다. 이따금 눈물을 닦는 움직임이 있을 뿐 별다른 미동도 없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씩 커지더니 어느 순간 어깨가 흔들렸다. 소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오직 아이의 슬픔만이 진동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또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선 아이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내 무표정이었던 건이는 홀로 앉아 울고 있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등을 쓸어드렸다. 그리고 애써 꾹꾹 누르고 있던 감정을 그 곁에서 쏟아내기도 했다. 그 순간은 길지 않았지만, 찰나같이 짧은 순간이라도 그렇게나마 터뜨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조문객이 잠시 뜸해진 틈을 타 아이들 곁으로 갔다. 빈 껍데기 같은 농담에 웃기도 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건이의 표정은 어딘가 붕 떠 있고 힘들어 보였다. 문득 유난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건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장례식장이 처음인데, 더구나 손님이 아니라 상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건데 어떤 마음이 들어?"


건이는 말을 먼저 뱉는 성격이 아니다. 언제나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적당한 말을 골라 밖으로 꺼낸다고 해야 할까. 역시나 그 순간도 말을 고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음… 좀 복잡해요.”


"그렇지. 지금 당장 한 가지로 정리하기는 아무래도 힘들 거야. 여러 생각들을 굳이 애써 정리해서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해봐. 정리되지 않아 복잡한 마음도 겉으로 꺼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하나씩 정리가 되더라."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구나. 그건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구나. 할아버지가 정말 든든하시겠다. 그렇다면, 그냥 너의 마음은 어때?"


"……"


"음… 고모는 슬퍼. 많이, 슬퍼. 너무 갑자기 돌아가셨잖아. 그래서 허무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네, 맞아요. 너무 갑자기라…."


"고모는 며칠 전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왔어도 이렇게 바로 돌아가실 줄은 몰랐어. 그래도 건이 제대까지는 기다려주실 줄 알았거든. 지금은 마음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될 거야. 그게 당연한 거 같아.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픈 마음 안으로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들이 있을 거야. 고모는 그런 거 같아. 건이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 지금은 그냥 이렇게 복잡한 마음 안에 머물러 있자. 그리고 나중에라도 외면하지 말고 꼭 들여다보자."


건이와 그 옆에서 침묵으로 대화에 함께 하던 원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이도 원이도 애써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슬픔은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도 아니다. 상을 치르는 내내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는 엄마에게 했던 말은 슬픔은 당연한 거니 울어도 괜찮다는 거였다. 그러니 참지 말라고 말이다. 참는 그 순간에는 모른다. 꾹꾹 눌러두었던 슬픔은 분명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건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는 걸. 그 폭탄이 엄마 혼자 있을 때, 혹은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홀로 남겨졌을 때 터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굳이 복잡한 마음을 꺼내어 물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애써 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누르고만 있기보다는 그 감정을 들여다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발인을 마친 다음 날 건이는 부대로 복귀했고, 원이는 운전면허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제 몫의 슬픔을 등에 업고 다시 세상으로 한발씩 내딛고 있다. 때때로 슬픔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너희들의 일상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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