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곁을 지킨 아이들의 시간
장례를 다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 원이와 통화를 할 때였다.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레 그날의 이야기가 나왔다. 장례식장 입구에 앉아 슬프고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의 이야기.
나와 대화를 나눈 후 원이 역시 오빠 건이의 속내가 궁금해졌나 보다. 본인처럼 울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 건지. 가만히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기에 건이에게 물었다고 했다.
"오빠는 왜 안 울어?"
"우리가 울면 어른들이 안 좋아해."
전화기 너머로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내가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어지는 원이의 말이 건이의 짧은 한마디를 설명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실제로 빈소에 계신 건 아니지만, 영정사진 속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는 모습을 보이면 그곳에 있는 어른들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단다. 슬프지만 잘 참고 있으면, '우리 손주들이 이렇게 강하게 잘 컸구나'하고 안심하고 가시지 않겠냐고. 물론 울지 않는다고 해서 속마음까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할아버지도 모르시지 않겠지만, 그 모습을 보시면 그래도 대견히 여기시며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믿고 마음 편히 떠나시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건이와 원이. 두 아이가 표현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들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주위를 살폈다. 오가는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고 나가기 편하게 신발을 돌려놓았으며, 혹여 빠뜨리진 않았나 주차권을 챙겨드렸다. 슬퍼하는 할머니에게 수시로 따뜻한 물을 가져다드리고, 바삐 움직이는 엄마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용히 넘겨주었고, 뭐라도 챙겨 먹을 틈이 없는 고모부 입에 남몰래 젤리 하나를 밀어 넣어주었다. 손님들에게 계속해서 술잔을 받는 아빠에게 아무도 몰래 숙취해소 음료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이따금 멍해져 있는 고모에게 다가와 말없이 어깨를 감싸안아주던 그 손은 생각보다 크고 든든했다. 아이들의 말처럼, 그 모든 건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이었겠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 건이와 원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수시로 혼자 계신 할머니를 챙긴다. 잠은 잘 주무셨는지, 식사는 하셨는지, 오늘의 컨디션은 어떠신지. 사회적으로는 이미 둘 다 어엿한 성인이지만 내 마음속에선 언제나 솜털 보송한 아기 같기만 하던 아이들이다. 언제 이렇게 커서 주위를 살필 줄 아는 따뜻한 어른이 된 걸까.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또 고맙기도 하다.
모두가 똑같은 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유난히 상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표현에는 인색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사랑한다'라는 말을 주저 없이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게 만들었던 존재들. 건이와 원이 말처럼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상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셨더라면 가슴 아파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으니, 가시는 길에 걱정은 내려두고 안심하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