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유예기간
삼일장을 치르고 바로 아버지의 동굴 같던 안방의 가구와 짐들, 아버지의 옷가지들을 남김없이 정리했다. 집안에 남은 흔적은 빠르게 비워냈으나 세상에서 지워내는 공적인 정리, 사망신고 앞에선 어쩐지 망설여졌다. 이미 장례까지 치르고 물리적인 흔적까지 다 비워냈음에도, 사망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그 무게는 또 달랐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던 슬픔을 세상에 공표해 버리는 것 같았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자꾸만 뒤로 미뤄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미루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언제까지고 미루고만 싶었다.
이따금 뉴스를 통해 사망신고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그러나 사망신고는 이후의 행정적인 일을 해나가기에 가장 먼저 마쳐야 하는 일이었다. 제일 뒤로 미루고 싶어도 별수 없이 가장 앞에 두어야 했다.
사망신고서 앞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채워야 하는 빈칸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항목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슬며시 밀려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를 적으면서 한 번, 나와 아버지의 이름을 나란히 적으면서 또 한 번…….
우리는 생일이 재미있는 가족이다. 아버지와 나의 양력 생일이 갖고, 엄마의 음력 생일과 오빠의 양력 생일이 판박이처럼 같다. 아쉽게도 부모님은 음력으로, 오빠와 나는 양력으로 생일을 챙기다 보니 생일이 겹친 날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 없었지만. 주민등록번호에 아버지는 음력 생일을 사용하셨꼬 엄마는 숫자 하나나 다르게 기입되어 실제 생일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어린 내게는 비슷해 보였다. 어릴 적엔 가족끼리 이만큼이나 닮은 숫자를 갖고 있는 걸 당연히 여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당연한 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만큼이나 단단한 연결고리는 내 이름에도 남아있다.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는 성격이 극과 극으로 다르지만, 신고 서류에 가장 처음으로 이름을 적고 나니 말로만 들었던 나의 출생신고 이야기가 생각났다. 원래 지어둔 내 이름은 [이하나] 였다고 한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하며 나중에 혹시라도 이름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이가 하나야?' 같은 유치한 놀림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나 보다. 엄마와 상의도 없이 그 순간 떠오르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들었다. 이름이라는 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자식에게 주는 부모의 첫 번째 선물이다. 내 이름에는 혹시 모를 '만약'까지 걱정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덧입혀져 있었다. 덕분에 성은 물론 이름까지 흔해진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엔 한 반에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A와 B로 나뉘기도 했다. 그게 아니어도 앞뒤 글자만 다른 비슷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늘 곁에 있었다. 삶이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이하나]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름은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사랑의 첫 번째 흔적이라는 것을.
나를 위해 펜을 들었을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리자, 내가 쥐고 있는 펜이 한없이 무겁게 다가왔다. 지난 시간들이 마음속의 감정들을 밀어 올려 눈물이 차올랐다. 그때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출생신고를 하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막을 틈도 없이 밀려 올라오는 감정에 무거운 추가 달린 듯 글자 하나를 적어 내려가기에도 버거운 나와는 달리, 아이의 출생을 세상에 알리려는 그의 펜 끝에는 기분 좋은 가속도가 붙었을까. 출생신고가 세상으로 온 나를 반기며 존재를 알리는 첫 번째 환영 인사였다면, 사망신고는 내가 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예우처럼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들자 무거워진 손끝에 온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사망신고서를 제출하며 재산조회 통합 처리 신청을 함께 했다. 조회 완료 시 각 금융 협회에서 문자메시지 등으로 통보된다고 한다. 길게는 3주까지 소요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뿐이다. 이제 서류상으로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 허무한 공백이 내게는 이별의 유예기간 같다. 어쩐지 모든 행정적인 업무까지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슬퍼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