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베이글과 아메리카노
하루 만에 봄에서 겨울로 날씨의 얼굴이 바뀌었다. 털모자에 털장갑까지 챙겼지만 똥강아지들과 함께 하는 아침 산책은 만만치가 않다. 거실에서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나른하게 앉아 있다 문득 건이 생각이 나 다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 앞 스타벅스로 나왔다.
건이. 나의 조카 건이. 어느덧 덩치 큰 고모를 감쪽같이 가려줄 만큼 건장한 청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아직 마냥 아가 같은 나의 첫 조카.
생각지도 못한 축하를 참 많이도 받은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점심밥에 커피에 저녁에 먹을 야식까지 챙겨 하루를 꽉 채워 준 친구부터 시작해 적당히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쿠폰을 보내 준 지인들이 있었다. 한마디의 말뿐이어도 따뜻함이 가득 담긴 인사 덕에 평범한 하루가 특별하게 바뀌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빛이 아주 고운 고등어 회를 앞에 두고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특별한 하루의 정점을 찍어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모, 생신 축하드려요!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나 취했나?' 싶어 눈을 비비고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스타벅스 5만 원 상품권과 함께 보내진 메시지는 다시 확인해 봐도 분명 10월에 입대한 조카 건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뉴스를 통해 군대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너무 자연스럽게 축하 메시지를 받게 될 줄이야!
오빠의 신혼집은 본가와 같은 아파트였고 맞벌이하는 오빠 부부가 회사에 있는 동안 건이는 할머니인 내사랑 김여사가 돌보았다. 그렇게 건이의 자라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안 그래도 아이를 이뻐하는 나는 자연스레 조카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지. 그 시절 찍었던 사진과 영상들은 아직도 내 하드 디스크에 가득 차 있다. 비록 이제는 어릴 적 며칠 만에 만난 고모가 보고 싶었다며 볼에 뽀뽀하며 찍은 사진을 보며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녀석이 되어버렸지만, 서로를 향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애틋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 곧 월급을 받으니 고모에게 이 정도 생일 선물은 해줄 수 있다는 녀석의 말에 꼬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울컥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녀석인지라 추운 날 고생하는 건이 생각에 커피 마시다 울 것 같다는 진심이 섞인 농담을 하며 코끝이 찡해졌다가,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얼마든지 울어도 된다는 녀석의 농담에 금세 웃음이 나와버렸다. 솜털이 뽀송하던 아기가 이제 고모의 커피까지 챙겨주는 어른이 되었다는 게 낯설고 어색하지만 한편 대견하기까지도 한 순간이었다.
어제의 그 짧은 대화를 떠올리며 스타벅스로 나와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블루베리 베이글을 주문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베이글에 부드러운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입에 넣고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야지. 농담처럼 얘기했던 눈물은 없이, 베이글을 꼭꼭 씹고 커피 한 모금 목으로 넘기며 고모 생일을 챙겨 준 건이의 마음까지 함께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