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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Nov 18. 2022

위층 이웃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고구마

지금 사는 곳에 이사 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바로 위층 이웃이 마침 돌잔치를 했다며 답례품으로 준비했을 떡과 수건을 들고 내려와 '아이가 돌이라 이제 걷고 뛰기 시작할 거다, 조심하겠지만 혹 시끄러우면 언제든지 얘기해달라'며 한껏 미안한 얼굴을 하고 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옆집은 그 위층이 시끄럽다고 여러 번 올라가고 인터폰도 했던 모양이다. 그걸 보고 걱정되는 마음에 미리 내려왔던 거였나 보다.


우려했던 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발소리는 커졌고, 그런 아이를 따라다니는 어른들의 발소리도 함께 커졌다. '꼬맹이 일어났구나, 주방으로 뛰어갔구나, 엄마랑 욕실에서 노는구나, 신났구나, 우는구나'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그나마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조용해져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생활 소음이 비교적 적고, 가구도 많지 않으니 아마 더 잘 들려서일 테고. 그전에 살던 아파트는 공사가 잘못되었던 건지 깊은 밤 옆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가 아주 잘 들려 때로는 마치 내 곁에 남편과 벽 너머의 아저씨까지 두 남자와 함께 자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정말 심할 때는 새벽에 안방 화장실에서 일 보는 소리까지 들리기도 했으니, 해지기 전까지 간간이 들리는 아이의 소리 정도는 충분히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 내려와 인사를 한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빵과 과일 등을 갖고 내려왔다.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위층 이웃의 볼록 나온 배를 보고 '어머, 임신하셨나 봐요!'라고 인사를 건네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대답은 "죄송해요"였다. 어라, 난 분명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죄송하다니. 축하받아야 할 일이고 기쁜 일인데 축하를 축하로 받지 못하고 죄송하다 말을 하는 위층의 그이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아래층의 나의 상황이 여러모로 참 불편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대화가 생생할 정도로 내게는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순간이다. 혹시 위층 이웃은 아직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부디 잊었기를.


시간은 흘러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이따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면 언젠가부터 큰 아이에게 "네가 뛰어도 이해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야, '죄송합니다~' 그래"라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야 본인들의 마음을 아이를 통해 전하려는 건 알겠으나 난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듣기보다는 웃으며 인사하는 게 더 좋은데. 제발 그러지 마시라는 내 말은 그저 인사치레로만 전해질 뿐인가 보다. 아이 역시 워낙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들어서인지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만나면 이내 엄마 뒤로 숨곤 한다. 괜스레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19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가 되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던 어느 . '밖에 나가지 못하니  녀석이 같이 뛰는구나'하던   앞에 고구마 박스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종일 집에 있으면서 소음도 더해졌을 텐데 죄송하다,  마주치면 괜찮다고 웃어 주시고 아이들을 이해로 함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힘든 시기에 건강 조심하시라' 손편지와 함께. 그즈음의 위층 이웃은 마주칠 때마다 웃고 있었지만 지쳐 보였고,  와중에 아래층까지 신경 써야 하니 힘들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후 고구마를 구워 먹다 보면 이따금  시절  위층의 이웃이 떠오른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다. 여러 이웃과 함께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한 소음은 얼마든지 발생될 수 있으며 이웃의 소음보다 우리 집의 소음이 작다고 장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한참 뛰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아래층에는 죄인같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위층에게는 우리 같은 아이 없이 사는 부부보다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있는 집이 마음 편했을지 모르겠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나도 마당 있는 주택으로 이사하고 싶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가끔씩 루피와 보아가 짖는 소음 때문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한참 뛰어 놀 나이의 꼬맹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할까.  


바쁜 오전을 보내고 고구마를 구워 한 입 먹으려다 오늘도 어김없이 위층 이웃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 루피와 보아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 1층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들어오는 이웃을 만났다. 오늘은 큰 아이가 동생 없이 엄마와 둘이서 종일 집에 있는 날이라고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잘 구워진 고구마를 입에 넣으며, 위층 이웃의 오늘을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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