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탁 앞으로 나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내 화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 같다.
세 살 때 오빠를 씻기려고 물을 끓였는데 넘어져 물통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는 아빠는 방에서 나를 보고 있었고, 엄마는 방 옆에 딸려 있는 부엌에서 오빠를 씻기고 있었다. 방과 부엌이 연결된 문을 내가 열었는지 이미 열려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턱이 있었고, 그 턱 아래로 떨어졌던가 넘어졌던가 했겠지. 사실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기억이 아니다. 그저 어른들에게 그랬다더라 하고 들었던 이야기일 뿐.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기억은 스틸 사진처럼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 살던 동네, 놀이터,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나는 집 구조.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지만 사실 아무렇지 않지가 않았다. 교복을 입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부터는 한여름에도 주로 소매가 긴 옷을 찾았다. 반팔이나 민소매를 입더라도 꼭 얇은 카디건을 걸쳤고, 사진을 찍을 때도 가급적 화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왼손은 앵글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급 친구들 앞에 나가 내 화상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스스로 당당해지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실패했고, 울어버렸고, 위축되었다. 지금이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졌지만, 누구도 내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혐오 가득한 말을 한 것이 아닌데도 단단하지 못했던 마음으로 시작된 그 기억 속에 꽤 오랜 시간 나 스스로를 가둬버리게 된 채로 살았다.
어느 날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 친정 엄마에게 그날의 사고는 어떻게 난 거였는지, 얼마간의 치료를 받았었는지를 물었다. 말을 꺼내자 웃으며 이야기하던 엄마가 운다. 미안하다며, 정말 미안하다며 운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말도 못 하게 어린 나이였다. 스물서넛의 엄마. 그렇게 어린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말이 세 살이지 생일이 11월 말이라 두 돌도 되지 않은. 아니, 돌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였다. 두꺼운 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바로 찬물을 부었어야 하나 너무 놀라 옷을 벗기느라 상처가 더 커졌다고 한다. 추운 날 포대기에 들쳐업고 병원으로 가며 화상 입을 팔을 밖으로 내놨는데 올라오는 화기 때문에 찬 바람이 시원했는지 울지도 않고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를 흥얼거리더란다. 처음엔 큰 상처가 아니라 동네 병원에 다녔지만 통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서울대학 병원을 갔고 입원 병실이 없어 서울 시립병원으로 가 약 일주일간 입원을 했다. 손등에 작은 상처만 남은 상태에서 퇴원을 했지만 집에 돌아와 씻은 후 갑자기 살이 올라와 당황했다고. 다시 병원에 가 손목과 팔 안쪽으로 피부가 당겨질 부위에 피부 이식 수술을 하려 했으나 너무 어려서 수술을 할 수 없었고, 1년 후 서울대학 병원에서 허벅지 살을 떼어 피부 이식을 받고 보름 정도 입원을 했는데 이후에도 병원 근처만 가면 '내 병원이다!'라고 했다나. 병원에 있는 동안 삶은 달걀을 워낙 좋아해 하루에도 여러 개를 먹었는데 그 와중에 노른자는 먹지도 않아 엄마가 그 노른자를 다 먹느라 입에서 닭똥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그 시절에는 비쌌던 바나나를 좋아해 오빠는 못 사줘도 아픈 나는 사다 줬다고. 뭐 그런 얘기들을 들었다.
'왜 한 번도 사고에 대해 묻지 않았어?'
'싫었어. 그냥.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어.'
싫었다는 내 말은 엄마에게 상처가 됐을까. 엄마는 내가 사춘기 때도 성격이 좋아 아무렇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난 이미 더 어릴 적부터 위축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늘 바빴고, 그런 부모님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의 우리 부모님은 보이는 상처를 치료하기에만 급급했지 나나 당신들이나 마음을 치료하는 법을 몰랐으니. 사고 자체도, 이후의 조치도,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은 남지만 그 어떤 것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 모든 게 최선이었을 테니 말이다.
치료 기간이 꽤 길고, 과정도 힘들었을 텐데 다른 건 다 기억이 나지 않아도 바나나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편의점에서도 판매할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이지만 당시엔 비싸고 쉽게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알았다. 그 달콤함이 너무 좋아 아껴먹느라 아이스크림을 먹듯 핥아먹거나, 입안에 넣고 한참을 물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기억은 전혀 없다. 아프고 많이 울었을 텐데, 어려서였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작동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은 다행히 나에게 그저 부드럽고 달콤한 바나나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은 달콤하기만 한 바나나가 어쩐지 쌉싸름하다.
괜한 기억을 꺼낸 걸까. 그렇다면 바나나를 한 입씩 베어 물면서 꺼내진 기억도 야금야금 씹어 먹어야지. 그렇게 한 송이의 바나나를 다 먹고 나면 지금의 이 쌉싸름함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이전처럼 부드럽고 달콤함만 남아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