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요청금지
오전에 운전을 하게 되면 주로 라디오를 듣지만 그날은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어떤 곡은 따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곡은 3초 만에 다음 곡으로 넘겨 버리기도 하면서 내부순환로를 달리고 있었다.
분명 내가 담아 놓은 곡들이 맞지만 전주만 듣고 3초 만에 다음 곡으로 넘겨버리기를 여러 번. 그렇게 의미 없는 다음 곡 넘기기를 반복하다 순간 멈칫하고 급하게 다시 이전 곡으로 돌렸다. 내 추억 소환 버튼 [브로콜리너마저]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면서 다시 담아두었던 것이 떠올랐다. 랜덤으로 설정되어 있던 재생 방법을 순서대로 재생될 수 있게 변경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필름 카메라가 유행이라지. 지금이야 '사진은 역시 아이폰이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도 필름 카메라를 꽤나 좋아했던 '요즘 젊은 친구들'인 시절이 있었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사진 찍는 것을 참 좋아했다. 뭐랄까. 좋았던 순간을 박제하듯 기록하는 것이 좋았고, 눈앞에 펼쳐진 놓치고 싶지 않은 광경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물론 눈보다 좋은 렌즈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니 어쩌면 사진 찍는 내가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2008년 가을에서 다음 해 봄이 되기 전까지. 나는 S와 함께 C의 차 안에 있었다. 우음도를 가는 길이었다. 아니, 포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안동 어디 사과밭을 지나는 길이었을까. 어쩌면 그 모든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출사를 나선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자연스레 여행의 비공식적인 목적이 사진이 되기도 했다. 그때 우리가 다니던 길 위에, 타고 있던 차 안에는 내내 브로콜리너마저가 가득했다. 아마도 당시 운전을 도맡아 하던 C의 선곡이었으리라.
담백함과 어설픔의 그 어디쯤. 노골적인 사랑의 언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사랑을 말하던 가사들. 누가 들어도 잘하는 노래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심한 듯 툭 건드리는 그 목소리. 다른 목소리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노래들. 여행이 좋았던 건지, 음악이 좋았던 건지. 브로콜리너마저는 이후 내내 그날의 분위기를 함께 가져다준다.
이제는 볼 빵빵 양 갈래머리를 한 꼬맹이가 표지로 있는 1집 앨범은 절판이 되었고, 음원 사이트 어디에서도 스트리밍이 되지 않고 있다. 새 버전으로 녹음이 되어 앨범으로 출시가 되었으나 더 이상 과거의 그 느낌이 아니다. 물론 싫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듣고는 있으나 어쩐지 내 추억이 저 뒤편으로 갇혀버린 듯한 아쉬움이 있달까. 그 추억을 더욱 빛나게 해 줄 BGM을 잃어버린 기분. 뭐 그런. 다시는 꺼내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기억을 되짚어가며 혼자만의 스트리밍을 하는 수밖에.
어느덧 앵콜요청금지가 흐른다. 문득, 새 버전의 앵콜요청금지는 브로콜리너마저가 1집을 그리워하는 청자에게 전하는 편지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다시 듣지 못할 거라는. 그러니 더 이상 기대하지 말라는.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 여기까지만.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바라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맘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 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이제는 더 이상 여행을 가더라도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는다. 얼마 전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남편이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왔으나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역시 사진은 아이폰이지'라고 말하며 처분하고 말았다. 아직 내 서랍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아마도 정리하지 못할 카메라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다시 꺼내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미련을 갖지는 말기로 하자.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