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김현철의 새 앨범을 듣기 위해서. 그렇다. 김현철이 새 앨범을 냈다. 총 네 곡 중 완전 새로운 곡은 한 곡 뿐이고 기존 곡들을 새롭게 편곡해서 불렀지만 어찌 되었건 12-1이라는 이름으로 새 앨범을 냈다. 온통 비가 가득한. 정말 비를 위한 앨범이랄까. 네 곡을 전부 플레이 리스트에 담아두고는 비 오는 날 제대로 들어주겠다고 다짐하면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동안 틈만 나면 듣고 있다.
김현철의 음악을 좋아한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의 음악은 감각적이다. 예전 곡들을 지금 들어도 좋지만, 이렇게 새롭게 나온 곡도 역시나 좋구나. 윤상과 김현철. 늙지 않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 나도 늙지 않는 감성을 갖고 싶다. 어렵겠지.
어느덧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한다. 저 아래 제주는 비가 많이 온 것 같은데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은 오다 만 기분이다. 어젯밤에도 밤사이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안전 문자가 반복해서 왔지만 바람만 불었고 비가 왔나 보다 할 뿐이지 장마라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우기임을 알 수 있는 건 내리는 비보다는 종일 습한 공기이며, 이것은 마치 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고 굵은 지렁이들이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엔 공원 산책이 유난히 즐겁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피부에 착 달라붙는 기분이 싫지 않다. 예전의 나는 그 느낌이 싫어서 여름이 별로였는데, 지금의 나는 그런 여름이 별로가 아니다. 별로가 아닌 게 아니라 꽤 좋다. 더우면 더운 대로, 습하면 습한 대로. 계절을 계절에 맞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게으름을 피우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산책을 나간 공원에는 개구리 왕눈이는 물론이거니와 아로미의 아빠 투투가 올라가도 거뜬할 정도로 연잎이 크게 자라있었다. 연잎 사이를 살펴보니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기, 연꽃의 계절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