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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Oct 16. 2023

후회는 이미 늦었다

그저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을 뿐이었다.


"5층 아줌마다! 어, 근데 루피랑 보아는 어디 있어요?"


라고 묻는 4층 보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오는데 문득 걸어서 올라가고 싶어졌다. 3층쯤 지나고 있을 무렵 이왕 걷는 거 운동 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리수거 가방은 5층 우리집 현관 앞에 내려놓은 후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갔다.


10층쯤 지날 때 이거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20층쯤 지날 때 왜 계단 오르기를 하게 된 건지 떠올랐다. 새벽 글방 친구인 해봄님이 어제 18층을 무려 열 번이나 올랐다는 이야기를 보았던 것이 내 무의식중에서 계단 오르기를 하게끔 이끌었던 것이라는 걸! 후회는 이미 늦었다.


25층까지 올라가서 엘리베이터 옆에 "25" 숫자를 사진으로 찍었다. 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나름의 인증이었겠지. 지하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25층까지 끌어올려 몸을 욱여넣고 잠깐 고민하다 지하 1층을 눌렀다. 그렇게 다시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가 한 번 더 25층을 사진 찍고 내려왔다.


5층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만 벗고 그대로 누웠다.


고작 15분 동안 계단을 올랐을 뿐인데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분명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최고 심박수는 고작 129... 코로나가 훑고 지나간 건 남편이었는데 내 체력이 왜 이 모양이 된 거지.


하...

뭔가 억울하다.

억울하긴. 운동부족의 결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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