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앵버박사 Sep 05. 2018

백수 8개월 - 외전

아내로부터 받은 선물


도입


이왕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김에 최근 8개월 간 얻은 몇 가지 성찰들을 써 내려가 보고자 한다. 사람에 따라 주제가 조금 무거울 수도 있고, 개인적인 견해가 강하니 불편하다면 더 이상 읽지 않아도 괜찮다. 아래 내용들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로부터 얻은 성찰과 배움들이다.



컨텍스트의 이해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기반이 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다. 컨텍스트는 어떤 시점의 맥락을 이야기한다. 어떤 주장이나 생각은 이런 컨텍스트에 따라 상대적으로 해야 옳다.


예를 들면, '꾸준한 운동은 건강에 이롭다.'라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해 당장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하자, 과연 이때도 꾸준히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는 것이 이로울까? 당연히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 운동을 서서히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황에 맞게 운동량 0에서 100%까지 조절해야 올바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싱가포르는 껌을 판매하거나 씹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다. 만약 이를 모르고 껌을 챙겨가 씹다가는 큰 벌금을 물거나 감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 껌을 씹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싱가포르라는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당연하지만 컨텍스트는 중요하다. 지금까지 컨텍스트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컨텍스트 중 하나는 역사다. 지금의 나는 인류가 살아온 수많은 시간 동안 지극히 일부에 속해 살고 있기 때문에, 비록 현시점에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도 옳지 않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기저에 깔고 이야기를 더 진행하려고 한다.



올바른 출산


올바른 출산이란 무엇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에 대한 관심이 생길 무렵 나는 유투브를 통해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연주의 출산은 요즘 흔한 자연 분만이나 제왕 절개 등과는 다른 출산법이다. 바로 아이가 나오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이의 힘으로 스스로 출산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산모를 위해 조산사, 둘라, 의사 등이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도와줄 수 있지만, 어떠한 의료적 개입이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언제부터 우리가 현대적 의학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됐을까?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1~2세대 전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시점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컨텍스트를 읽지 못하고 잘못된 출산 문화를 올바르다고 인식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잘 모르고, 지레 겁먹어 위험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카미노에서 느낀 바와 같이 우리 몸은 생존에 최적화되도록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방법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현대 의학은 우리 몸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오히려 인위적으로 건드려진 한 부분 때문에 나중에 굉장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인위적인 현대의 출산을 하는 바람에 엄마와 아이에게 얼마나 큰 불이익이 돌아가는지 자연주의 출산을 깊이 있게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의 아내는 둘라라는 자연주의 출산을 도와주는 직업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있으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 영향으로 나는 출산의 역사적 컨텍스트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었고, 우리 부부 모두 출산이라는 것이 겁을 낼 만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 극의의 활홀함을 느낄 수 있는 축복임을 알게 됐다. 또한 매우 그 경험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남자도 직접 출산에 참여한다. 옆에서 아내를 도와주고 함께 호흡하며 함께 힘을 준다. 아이가 나올 때 직접 받기도 한다. 어떤 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남자들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깬다고 하는데 어떡하냐고 한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잘 나오지 못하는 자세로 여성을 눕혀 억지로 아이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닌, 적나라한 자연주의 출산의 동영상을 본 내가 느낀 감정은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경험이라면 얼마나 행복할지 가슴이 벅찼다.


아직은 직접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글은 설득력이 없을 수 있어 이만 쓰도록 하겠다. 경험 이후에 더 자세히 쓰도록 해야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비단 나만의 주장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며, 직접 경험한 분들의 이야기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찾아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물론 이 밖에도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여성의 권위를 지키는 길


여성들이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일이 된다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길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게 되면 아이가 나오는 순간 호르몬 분비로 인해 산모는 인생 최고의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해냈다는 커다란 자신감을 얻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된다. 또한 굴욕 3종 세트라고 하는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 아이가 스스로 나온다. 그리고 산모는 바로 걸어나갈 정도로 육체적 부담이 없다. 이런 스토리가 꼭 서양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진화해 왔다. 만약 자연적으로 출산하는 과정이 위험하거나 어려웠다면 진작에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다. 또한 위험성에 대한 인지는 사전 검사에서 대부분 발견된다.


이렇게 자연주의 출산은 여성의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너무나도 좋은 선물이고, 게다가 현대적 출산 방법의 역사는 남성 우월주의가 녹아있는 것이기 때문에(이것도 스스로 찾아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나는 진정으로 여성의 권위를 지키는 길은 올바른 출산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올바른 출산을 통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인 출산에 대해 본인들이 가져야 할 권리를 지키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알게 되고, 또한 그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믿고 올바르게 사용하게 되는 이런 과정이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가는 곳이고, 산모는 환자가 아니다. 엄마와 아이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추천 도서

출산, 그 놀라운 역사(티나 캐시 저)

폭력없는 탄생(프레드릭 르봐이예 저)



음식


먹는 대로 산다


앞서 자연주의 출산의 안전함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현대 사회의 또 다른 인위적 작용에 의해 그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다. 우리가 먹는 현대의 음식들은 예전과 다르게 급격하게 변화 해왔다. 또한 이에 대한 영향으로 수많은 현대의 질병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처럼 음식이 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마음 즉,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있으니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이루고, 내가 된다.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정의될지도 모른다.



무얼 먹을 것인가: 선택의 어려움


나의 아내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마크로비오틱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며 전부 포기하고 살던 대로 살고 싶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마지막으로 미루겠다.



다름에 대한 이해


나쁜 사람은 없다


최근 들어 점차 혐오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녀 간, 고부 간, 세대 간, 정치성향 간 너무 많이 서로를 미워한다. 단순히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미워하고 혐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그것을 당당히 들어내서 소위 말하는 참교육이라는 형태로 자랑스럽게 글을 게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잘난 척할 만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됐다는 것을 떠들어봤자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모두가 결국 원하는 것은 차별받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정당한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서로를 험담하며 배척한다고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단순히 이기적인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럼 왜 이렇게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사람은 각자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다른 점들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언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기보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방향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인가 보다.


또 한 가지는 '난 이렇게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을 들어내어 자신의 위상을 드 높이는데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지만 타인을 발판으로 삼아 올린 자존감은 다시 금세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 스스로를 통해 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이전 글에서 쓴 삶의 종속 제거를 통한 본성의 회복을 참고 하자)


결국 이렇게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나는 동성애도 인정해!', '인종차별도 안 해!' 등의 자기 위로를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깊이 있게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자신이 인정한다고 하는 것들을 주장하면서,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혐오할 것이다.


나는 연애 초기에 내 아내를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행동 할리 없는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의 모습들 하나하나에서 신뢰가 쌓이고 그 신뢰가 사랑으로 바뀔 즈음, 나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드디어 아내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이 왜 그랬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자 정말로 미안해졌다. 이해라는 포인트의 앞뒤로 사람은 이렇게나 큰 행동의 차이를 보인다. 이런 경험을 한 뒤로, 무언가 내가 모르는 사연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상대방을 대한다. 그러면 당장은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결코 그 사람이 내 마음속에서 만화에 나오는 무지막지한 악당이 되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가끔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너무 냉정할 때가 많은데(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그것은 바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해하지 못할 때다. 잘 생각해보면 누구나 별생각 없이 친구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냥 속으로 미안하다는 정도로 넘어간다. 나는 그런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면, 어느새 내 마음속에 그 친구는 정말 악한 사상을 가진 최악의 생명체가 되어버린다. '원래 걔는 그런 애야!'라고 말이다.


나쁜 사람은 없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든, 모두의 마음속 세상이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실제 세상이 변화한다.



동물의 감정: 현 도축 시스템에 대한 견해


연애와 결혼으로 사랑을 경험하며 사람에 대한 다름을 이해하게 됐다면, 우리 집 시바 덕구와 함께 살게 된 경험은 더 나아가 다른 동물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함께 살아보니 개도 사람과 같이 많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복하면 웃고, 괴로우면 울며 소리도 지르고, 미안하면 눈치도 보고, 사랑한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해하고 나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기도 하고, 깔끔한 성격이라 자기 집에서는 결코 볼일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모두를 개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고기를 먹는 것을 지양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위에서 설명했던 올바른 음식을 먹기 위한 과정이고(오늘날 같은 지나친 육류 섭취는 우리 몸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마크로비오틱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다른 동물들을 나와 같은 생명으로서 인지했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현 도축 시스템과 우리의 음식 소비 행태에 대한 이야기다.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를 취함으로써 살아간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단순히 살기 위해서만 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돼지는 개보다도 지능이 좋다. 당연히 사람과 같은 감정을 전부 느낀다. 이런 동물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거의 가축들의 종 전체를 붙잡아 우리의 먹이로써만 관리하고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인간의 먹이로써만 생명의 가치가 제한되었다. 인간은 스스로가 왜 태어났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 그것에 대해 온갖 이유를 붙이지만, 가축으로서의 동물들은 강제적으로 태어난 이유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한 것으로 정해져 버린 것이다.


'태어나서 평생을 좁은 곳에 갇혀있었다. 너무 답답해서 나가고 싶다. 나가서 볼일도 봐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 볼일을 봐야 한다. 맛있는 것 좀 먹고 싶은데, 매일 이상한 것만 준다. 차라리 죽고 싶은데 자살할 방법도 모르겠고, 죽는 것이 너무 무섭다. 내 새끼가 태어났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다. 나와 같은 삶을 살게 뻔하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사람과는 다르니까 어쩔 수 없다며 묵인한다면, 어떤 공직자가 '민중은 개.돼지나 마찬가지니까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 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공직자의 눈에는 우리와 동물의 차이만큼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사육 시스템은 먼 나라 영국에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잘 사는 귀족들이 지방이 많은 부드러운 고기가 맛있으니 마블링을 늘리려고 소들을 모아다가 살찌는 것만 먹였다. 다른 나라들도 살만해지자 더 편한 것을 찾고, 더 맛있는 것을 찾으며 비슷한 형태로 따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비단 이런 일들이 인간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계에는 아직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먹을 소를 키우려면, 그 소에게 먹일 인위적인 사료를 재배해야 한다. 소와 사료를 위한 땅이 전 세계 토지의 24% 이상을 차지하며, 수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의 곡식을 소가 먹고 있다. 또한 그것을 먹은 소들의 배출물이 지구를 오염시킨다.


결국 일부 사람들이 살아갈 땅과 먹을 것이 없어 죽어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소를 포함한 고기를 맛있고 편하게 먹기 위해 땅과 식량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들조차도 특권 계층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하지만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같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특권층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촛불을 들고나가서 싸운다.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도 아픈지 알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한다. 그것이 도덕이고, 윤리다. 촛불을 들고나가 싸워서 이겼다고 해서 아직 좋아하긴 이르다. 내 삶이 내가 화를 냈던 그들과 다르지 않다면 나 역시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같은 결과를 맞이할지 모른다.


추천 도서

육식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저)



결혼과 출산: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한 성장의 키포인트


여담으로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스로 성장해가며 인생의 어려움 들을 대처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살아가다 보면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성장시킬 중요한 시기가 찾아온다. 나는 그 시기 중 하나로 결혼과 출산을 꼽는다. 그것들로부터 파생되는 이득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다 설명했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결혼도 선택이고, 출산도 선택이지만 삶이라는 게임 안에서 엄청난 보상을 주는 이런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결국 누구도 아닌 자기 손해다.



복잡성을 정복하는 방법: 자연스러운 삶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머리가 아주 복잡하고 무거워졌을 것 같다. 도대체 이렇게 복잡한데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또 매번 다른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를 해야 할지 골치가 아파온다. 이렇듯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커질 수밖에 없다. 너무 복잡하고 알아야 하는 것도 많고, 선택지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설명한 경험들을 추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세상의 복잡성을 정복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자연스러운 삶이다.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의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 진화해온 대로,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것은 딱히 공부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냥 원래 잘 살 수 있게 태어났으니 믿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지금 같은 사회에서 그런 의식의 틀을 바꾸고 행동하는 것이 쉽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더 자신을 믿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춰 살아가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수 8개월 - 3편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