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바라나시
왜 인도를 가고 싶으냐
물었을 때, 내 대답은 갠지스였다. 그 강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난 그곳에서 내가 마주하기 힘들었던 죽음에 대해 고찰하고,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 기대 아닌 변명을 했다.
아빠가 떠나고, 죽음과의 대면을 회피해왔다. 마주하면 할수록, 버틸 수가 없어서 그냥 도망쳤다.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겠다고 휴학까지 해놓고, 막상 나는 끊임없이 도망치기만 했다. 아빠가 내 곁에 없단 사실은 아직 내게 와 닿는 사실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신이든, 부처든, 염라대왕이든, 뭐든 빌어먹을 누군가가 꾸며낸 허구다.
그렇게 도리질을 해야 했다. 그렇게 도리질을 하면서도, 그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 도리질을 멈춰줄 수 있는 건 갠지스 강일 거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죽음과의 대면을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치르고 싶은 것 마냥, 모든 정리는 갠지스가 해줄 것이라 믿으며 어린 마음으로 인도 땅을 밟았다.
그런 나를, 갠지스 강은 거대한 눈으로 간파하고는 어리석은 모든 번뇌를 잠식시켜버렸던 걸까. 그 강을 마주하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삶이니 죽음이니 멋들어진 깨달음을 얻고 가야지, 그리곤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지 란 생각에 수없이 애써보았지만, 그 강물만 바라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가 않았다. 심지어 버닝가트에서 화장하는 것을 직접 보아도, 죽은 이의 살이 타는 냄새를 맡아도,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곳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죽음에 대한 고찰을 위해 이곳을 찾았으나 막상 죽음을 마주해도 그 죽음을 다 품어버리는 갠지스 강을 마주하니, 삶과 죽음 따위의 모든 번뇌들이 강물 안으로 깊숙이 수장되었다.
나는 아빠가 떠나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얼마나 많이 하늘을 원망하며 소리를 질렀던가, 슬픔과 분노에 못 이겨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던가.
그런 나에게 성스러운 그 강은 신의 목소리를 빌려 이리 알려준 것은 아닐까. 그냥 아무 생각 말라고.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사실 삶이니 죽음이니 모두 대단한 것 없다고. 구태여 죽음과 마주할 필요도, 도망칠 필요도, 괜한 깨달음을 얻을 필요도 없다고.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러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그 강의 가르침을 받아서였을까,
그곳에서 가족의 마지막을 보내는 이들 모두 눈물도 울음도 내비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소리 없는 눈물이 모여 저 강물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 강물에 물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