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로 보는 영화 <괴물>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새로운 역작 <괴물> 톺아보기

by 영화돋보기
괴물은 누구게~?
0-1. 시놉시스

“우리 동네에는 괴물이 산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다. 용기를 내 찾아간 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한 날 이후 선생님과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하고. “괴물은 누구인가?” 한편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는 아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데…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0-2. 시작하기 전에

제게 영화 괴물은 무척이나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관념 및 통념, 우리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가 등 많은 꼭짓점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영화의 플롯은 관객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오도에 굴레를 체험하도록 짜여 있습니다.


즉, 영화의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관객이 자조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각본의 우수함과 별개로 이를 극으로 표현하는 감독의 역량 또한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몇 가지 연출포인트를 개인적인 견해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3개의 시선 = 3개의 플롯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는 3부 구성을 통해 각 부의 시선은 엄마, 선생님,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개됩니다.


앞서 언급드렸듯이 영화 괴물은 같은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으로 3번 반복합니다.


마치 영화 <라쇼몽>과 같이 동일한 사건이 입장에 따라 사실관계가 뒤틀리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1부와 2부는 제한된 정보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오도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플롯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의 연출이 섬세하여 전혀 작위적이지 않고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습니다.


3부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보고 나서야 비로소 왜 이 작품이 3개의 플롯(3명의 시점)으로 짜인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진실의 진위를 밝히는 스토리 상 이유도 있겠지만,


3개 플롯의 주요 역할은 1부의 어머니, 2부의 선생님처럼 사건을 판단하려는 관객 또한 가해자의 입장으로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이 작품의 플롯이 함의하고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단편적인 정보로만 진위를 판별하려는 우리가 하나의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말합니다.

고로 우리는 마지막 아이들의 시선으로 따라가 보면, "아 내가 잘못 보고 있었구나" 하며 깨닫게 되죠.


'아이들이 하던 괴물 찾기 게임을 내가 하고 있었구나.' 하고요.


어떤 관객분들에게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경험일 수 있겠으나, 사회적 잣대나 편견, 주관적 입장이 얼마나 상대에게 파괴적이고 문제가 부풀려질 수 있는지 인지시켜주는 탁월한 각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공격과 비난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알아보려고 기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며, 이러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를 통과하는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2. 불로 시작해서, 물로 끝나다
이 영화에서 재난이 함의하는 바가 뭘까?

3부 구성으로 된 이 영화의 1부와 3부는 재난으로 시작해 재난으로 끝이 납니다. <괴물>의 시작은 방화로 인한 인재(人災), 마지막은 태풍으로 인한 자연재해로 극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는 사람 간의 견해 차이사회적 통념이 만드는 관계의 재난을 다루는 이 영화의 맥과 닿아 있는 주요 설정입니다.


또한 불은 파괴, 물은 탄생이라는 통용되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갈등의 서두는 화재로 시작하며, 각 부의 마지막은 태풍으로 마무리되죠.


이를 바탕으로 보면 3부 마지막 장면은 좁은 굴속에서 물에 흠뻑 젖어서 나와 세상을 뛰어다는 모습은 마치 그들이 새롭게 태어난 것과도 같은 이미지로 보이게 됩니다. 세상의 굴레를 벗어버린 해방감을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극초반 선생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들여보았을 때, 사건의 실마리를 유일하게 붙잡는 인물이다.

극초반 선생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들여보았을 때, 사건의 실마리를 유일하게 붙잡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유사한 연출이자 설정으로도 보입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도 불로 인해 어머니를 잃었던 주인공이 성이 무너지며 마치 잉태되듯 물과 함께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주는 상징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이 작품에서 물과 불의 사용은 불가항력(不可抗力), 죽음 그리고 탄생의 이미지를 통해 이 작품 속 관계의 재난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태풍과 화재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기에 진위를 통제할 수 없는 이 영화 속 관계의 재난극에 아주 적절한 설정이자 은유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아름다운 음향 연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영화 속 가장 눈에 띄는 음향 연출은 트럼펫입니다. 그리고 이 음향은 갈등의 전조를 전하는 알람이자, 관계의 추락이 내는 비명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극의 중 역할로는 감정 격양되는 악센트를 표기하는 역할로 활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다듬어지지 않은 트럼펫 소리 그 자체 만으로 앞으로 닥치게 될 사건을 암시하고 불안감을 고조시킵니다. 또한 교장 선생님이 미나토와 음악실에서 악기를 불며 나누는 보편성에 관한 이야기로 더욱이 극의 비극과 불안감을 증폭하는 역할을 해줍니다.



트럼펫을 배우며 아이게 건넨 교장의 말은 네가 하는 사랑은 행복할 수 없어라는 말처럼 저는 들렸습니다.

매우 서정적이며 오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음악입니다. 동시에 아름답고 애잔한 느낌이 들죠.


영화의 미학적이고 감성적인 일면을 더욱 가득 매워주는 좋은 너무나 음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4. 사회적 통념이란 잣대
요리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주는 상처를 오롯이 견디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시점이 없는 인물이다.


요리는 외모와 행동이 여자아이와 같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는 인물입니다. 또한 하나뿐인 아버지에게 "너는 돼지 뇌를 가졌어"라는 멸시의 가득 찬 말을 듣기도 합니다.

아이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입니다. (게다가 가정폭력의 흔적도 엿볼 수 있죠)


아이들의 동성애를 어느 정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미뤄보면 더욱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죠.


"너는 우리와 달라"라는 말이니까요.


이 영화 속 사회적 통념을 더 언급해보겠습니다.


1부 엄마 사오리의 경우, 바람피운 남편이 세상을 등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나토에게는 가정이라는 행복을 되뇌는 사람이죠.


다른 사소한 행동으로는 흰 페인트를 밟으면 지옥을 간다고 한다던가 말이죠.


그리고 사오리는 1부에서 주차신을 반복하다가 실수를 범합니다.

한정된 시야 밖에 볼 수 없는 후면 주차처럼 사건의 한정된 부분만 볼 수 있는 개인적 시선 또한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장면은 저는 이 영화가 전달하는 사회적 통념과 무관심으로 인한 오도의 굴레와 일맥상통하는 장면으로 보았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미스터리인 인물인 교장선생님은 진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태도 보이고 있으며 조직을 위한다는 말로 호리 선생을 보호하기보단 가해자로 내몰기까지 합니다.


호리 선생의 경우에는 편모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본인 생각하는 잣대를 통해 상대를 재단하고 평가하며 실수를 반복합니다.


미나토와 요리도 크게 여기서 다르지 않죠. 거짓말을 하고 하면 안 되는 실수를 서로에게 반복하죠


이를 단순히 나쁘다고만 말해야 할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더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결말 시퀀스 해석 : 아이들은 죽은 것일까? 다시 태어난 것일까?
무엇으로 보아도 애잔하고 아팠다.


영화의 마지막 씬은 마치 아이들의 마지막이 환상인 것처럼 연출됩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언급해야 할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인데요. 무심히 지나치기 좋은 장면입니다.


하지만 우주에 대한 이야기 이후, 아이들은 버려진 전차 안을 본인들만의 우주로 꾸밉니다. 때문에 영화 속 전차를 보면, 반짝이는 작은 조명들과 우주 속 행성 장난감들을 전차 안에서 확인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우주가 두 아이들의 세계이자, 새로 태어날 공간이죠.


아래 대화를 봅시다.


<영화 속 우주에 관한 대화>


요리 : 결국 우주가 차오르면 빵 하고 터질 거야!


미나토 : 우주가 부서진다고?


요리 : 응 시간이 되돌아가는 거야


요리 : 시계도 사람도 열차도 고양이도 거꾸로 돌아가고, 소고기 덮밥은 소로 응가는 엉덩이로 돌아가

~중략~


미나토 : 다시 태어나는구나


요리 : 맞아


미나토 : 준비해 둘까?


위 대사를 보고 다시금 이야기를 보면, 태풍으로 인해 팽창하여 무너진 우주(버려진 전차)에서 나와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영화 속 이미지들을 보면, 마치 아이들을 보면 새롭게 태어났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결말부 장면을 보면 편견 없는 시선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죠. 다시 태어난 세상에서는 행복하길 바라면서요.


때문에 결말을 이렇게 본다면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행복을 빌어주게 되는 결말이 되기도 합니다.


편견 없는 그곳에서 서로 사랑하며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하지만 저는 환상이 아닌 아이들이 살아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죽었다면 너무나도 비극적이라고 생각이 우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역시 아이들의 대화에서 찾았습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다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아이들의 대화 후 "다행이다"라는 대답이었는데요.


이 대사가 제게는 '아, 아이들은 계속 삶을 살아가겠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았다고 해서 이들을 행복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편견과 통념이라는 편견의 잣대로 아이들을 바라볼 것이고, 아이들은 이에 지속적으로 상처 입고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선생님이 행하고 당했던 것처럼요.


그래서 아이들이 천국에 갔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이 살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참혹한 것은 마찬가지죠.


때문에 이 마지막 장면의 해석에 확실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해석은 관객분들의 저마다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셨나요?




6. 마치며..


영화 괴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통념이란 시선에 물음표를 던져주는 좋은 영화입니다.


또한 영화의 결말은 비극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바라볼 때 혐오나 비판이라는 편향된 시선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타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마칩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10)

교차하는 시선 속에 선연히 빛나는 무관심이란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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