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로 보는 영화 <아노라>

션 베이커가 보는 자본주의의 자화상

by 영화돋보기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5년 97회 아카데미에서 5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 <아노라>입니다.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한 작품의 대중적인 재미, 모든 이들이 공감할 절대적인 작품성을 지녔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제는 마케팅의 목적을 둔 축제니까요. 그러나 많은 자본과 관심이 쏠리는 영화팬들의 축제이기도 한 만큼 우리가 몰랐던 또는 이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아카데미 작품상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아노라>는 영화제 수상을 통해 많은 영화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작품입니다. 또한 영화제라면 떠올리는 수상작의 난해함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예술 영화보다는 독립영화이며, 독립영화 중에서도 대중적인 화법을 택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현 사회를 사는 분들이라면 많은 공감대와 웃픈 미소를 짖게하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쯤 보시면 좋으실 영화 아노라 연출로 깊게 톺아보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사와 연출의 결이 비슷한 작품 : <귀여운 여인>, <대부>, <비열한 거리>, <로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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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에서 액션, 로드뮤비, 블랙코미디, 노동영화까지

영화 <아노라>를 보셨다면 정말 많은 작품이 연상됩니다. 영화 초반부는 익히 아는 러브 코미디 장르이자 신데렐라 서사를 지닌 <귀여운 여인>이 연상됩니다. 가난한 주인공 애니가 재벌을 만나 행복한 삶을 꿈꾸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재벌 남편 이반의 집안 사람들이 들이닥치려는 순간부터 러브코미디 장르에서 갑작스레 서스펜스가 생깁니다 여기서 나오는 교차편집은 영화 <대부>의 세례식 장면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토로스(카렌 카라 굴리안)의 세례식과 아노라의 싸우는 장면이 번갈아 등장하기에 더욱 그렇죠.


그외에도 영화 곳곳에 유머가 스며있어서 웃픈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품 전반적으로 블랙유머가 스며있거든요 노동자끼리 치고 받는 웃픈 유머와 로드뮤비 장르의 차용으로 극 후반부까지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만들고 싶었던 장면들이라 생각되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는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가 떠올랐습니다. 일자리를 위해 발버둥 치는 로제타의 힘겨움이 겹쳐보입니다. 여기서 새어나오는 감정은 너무나도 가련하고 처연하죠.


이렇게 영화 <아노라>는 다양한 장르 변주 또는 차용을 통해 여러 영화가 연상되는 재미 뿐만 아니라 곳곳에 악섹트로도 기능해서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지난 칸 영화제 수상작 중에서 많은 분들이 재밌게 보실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현 주소 : 노동자 vs 노동자
common.jpg?type=w773 협력과 이해는 사라졌다, 오직 생존만이 남은 부박한 사회

션 베이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님입니다. 극 중 유머를 잘 다루는 점도 그렇지만, 인물을 대변하기 보다는 관찰하고, 상황에 대한 은유 보다는 직관적인 연출을 선호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미국 자본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라고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죠.


이 영화의 시놉시스만 본다면 성노동자를 위한 영화이거나, 신데렐라 스토리를 비튼 이야기로 보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직종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들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그려내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이 작품의 주인공은 성노동자인 아노라(미키 매디슨), 심부름꾼 이고르(유리 보리소프), 집사 겸 잡부 토로스(카렌 카라 굴리안) 뿐만이 아닌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견인자 운전수, 사탕가게 직원, 아노라의 동료 등 모든 노동자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 속 갈등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는 등장인물들이 전혀 싸우지 않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장면을 온 종일 웃프게 담고있기 때문입니다. 정작 나쁜 것은 무책임하게 결혼했지만 뒷책임은 지지 않는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피를 보는 것은 이반 아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며 이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아이러니함을 코미디 장르로 담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예로 이반의 결혼 무효를 위해 아노라는 감금, 납치되며, 심부름꾼 이고르와 가닉은 여기저기 얻어맞고 다니고, 토로스는 회장님에게 밉보일까 안절부절하며 주변이들을 못살게 닥달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견인차 운전수는 직업을 잃고, 사탕가게는 엉망진창이 됩니다. 아노라가 일했던 가게 또한 난장판이 되버리죠.


이러한 장면들은 자본주의의 미성숙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노동자들이 가장 부박해지는 순간은 같은 노동자를 만났을 때이며, 종국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보다는 개인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들끼리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만이 영화 내내 등장하기에, 션 베이커 감독이 이번에도 자본주의의 단면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위치. 이고르와 아노라를 담는 샷
common.jpg?type=w773 '난 위, 넌 아래야' 권력 관계를 보이는 카메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영화 <아노라>는 관찰하는 카메라 스탠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명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색채가 줄어들죠. 물론 변주하는 장르에 따라, 극 중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화법(픽스 카메라, 헨드헬드, 싱글샷, 타이트한 OTS 등)이 변주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자 이반을 로우앵글, 노동자들은 하이앵글로 잡고 있으며, 함께 담길 때는 위 이미지처럼 위와 아래로 높이 차를 두어 프레임에 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 <아노라>를 재관람하신다면 속 카메라가 인물들의 갈등상황, 대화를 어떻게 담고 있는가 집중하여 보는 재미도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이고르와 아노라의 거리감을 다루는 샷입니다. 이들의 대화장면은 대부분 마스터 쇼트이거나, 싱글쇼트로 인물을 분리하여 담습니다. 그리고 아노라의 엉망진창 이혼 사건 이후, 아노라와 이고르의 대화장면을 OTS(Over The shoulder Shot)로 프레임 안에 가득 담아 찍고 있죠. 화면을 매우는 OTS은 두 인물의 대화에 심미적인 거리감소를 연출하고 있죠. 그리고 이 영화 마지막. 카메라는 두 인물을 나누어 담는 싱글샷이나 어렴풋이 담는 ots가 아닌 표정에 집중한 클로즈업과 프레임 안에 두 인물을 함께 잡는 투 샷으로 담겨있습니다. 갈등으로 인해 매번 나눠어 담기던 그들이 함께 담기던 그 장면은 화해의 장면이자,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슬픈 연대의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이처럼 두 인물의 감정적 변화를 두 인물을 카메라를 기준으로 보아도 흥미로운 영화 관람이 되시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파랑색과 빨간색 그리고 하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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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은 자본의 폭력성을 담는다. 그러나 붉은 자본은 따뜻해질 수 있는 아이러니함도 함께 담고있다. 사실 그게 돈이라는거니까


여느 좋은 영화가 그렇듯 <아노라>에서도 주목해볼만한 색채가 있습니다. 오프닝과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파란색 조명, 빨간색의 침대보와 스카프 등이 있으며, 이 색들과 대비되는 하얀색이 주목해볼 색채들입니다.


우선 파란색은 차가운 이성과 음울함을 다룹니다. 성노동을 하는 오프닝 속 아노라는 붉은 라인 조명, 붉은 자막 그리고 푸른 조명 아래서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 나오는 클럽이나 유희를 즐기는 많은 장면에서 파란 조명이 붉은색과 함께 등장하죠.


영화는 이미지가 언어입니다. 색은 모든 감독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이미지 매체죠.


<아노라>에서는 쾌락과 유희의 상태, 자본을 뜻하는 붉은 조명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음울함을 담는 파란 조명을 함께 사용합니다. 때문에 아노라가 성노동을 하는 장면, 파티장면들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은 함께 등장합니다. 즉, 이 영화에서 파랑은 자본(빨강)을 위해 필요한 노동의 감정을 색채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죠. 때문에 영화에서 푸른색은 항상 빨간색과 함께 등장하니 이를 알고 보신다면 더 재밌는 감상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 다음은 빨강입니다. 빨간색은 자본의 속성을 다룹니다. 작 중에서 빨강은 색의 강렬함 만큼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노라의 성관계 장면, 이반의 이불, 아노라의 의상, 쾌락만이 있는 클럽 장면 등에서 붉은 색 또는 동일 계열의 조명이 지속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 중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붉은 스카프입니다.


영화 속 붉은 스카프는 추위에 떠는 아노라를 따뜻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아노라의 입을 막았기도 했던 물건으로 등장하니까요. 이는 우리를 따뜻하고 쾌락을 누릴 수도 있게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들의 입(표현)을 막기도 하는 자본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색채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란게 원래 그런거니까요.


흰색은 아래에 함께 적도록 하겠습니다.


엔딩: 위로를 모르는 자의 슬픈 위로법
image.png?type=w773 빗발치는 눈 속에서 전하는 애수 섞인 위로. 무너지는 마음.

흰색은 대게 순수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얗고 순수한 마음은 곧 진심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무채색 계열 중 하나인 흰색은 다른 색채처럼 강렬함은 없지만, 배경색으로서 차분하고 진중함을 담아내기 좋은 색채죠.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아노라의 위 엔딩장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엔딩 장면을 위해서는 오프닝 장면을 다시 이야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붉고 푸른색이 흘러넘치는 휘황찬란한 조명 속에서 성노동을 하는 애니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엔딩은 이고르와 성관계 도중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우선 오프닝과 엔딩의 공통점은 성노동에 있습니다. 그리고 대조적인 것은 색채와 감정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프닝과 대조되는 엔딩 시퀀스 안에 담긴 것은 <귀여운 여인> 속 신데렐라를 꿈꿨으나 현실은 여기저기서 무시당하고 짓밟힌 아노라와 이고르만이 프레임 안에 남아있죠. 한바탕 소동 이후, 무시와 혐오로 인한 비애가 더욱 극적으로 엿보이는 연출장면입니다.


아노라는 한 순간에 타의에 의해 결혼이 무효가 되었고, 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시종일관 폭력과 무시를 받습니다. 안타까운 인물이죠. 그렇기에 함께 동행하던 노동자 이고르가 말없이 안아주는 그 장면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아노라는 성(性)으로 밖에 남성을 대할 줄 모르는 여성입니다. 그렇기에 유일하게 연민과 화해를 건낸 남자 '이고르'에게 오프닝에서 보여준 성노동 말고는 남자에게 진심과 위로를 할 줄 모르는 어찌보면 가여운 사람이죠. 그렇기에 영화 속 카메라는 진심을 진중히 담아내는 약간의 거리감과 회백색의 색채, 어색한 자동차 소음만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빗발치는 눈 아래 말없이 아노라를 안아주는 이고르의 모습을 조용히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여기서 차갑지만 따스한 감정이 프레임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의 큰 좌절감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습니다. 노동 말고는 상대를 위할 줄 모르는 아노라에게 안타까움이 온전히 느껴졌으며, 화려했던 오프닝과는 매우 대조되는 엔딩이기에 더욱 여운이 컸습니다.


물론 단순히 영화 하나, 주인공 아노라를 보고 맹목적인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이들을 돈을 위해 일만 하다 함께하는 삶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바꿔보았을 때 깊은 연민과 애수가 스미는건 어쩔 수가 없네요.


★★★★☆(9)

노동과 생존 끝에선 모든 이에게 아노라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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