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가 바라보는 세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즐겨보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엄청난 몰입감과 서스펜스. 더불어 2시간 동안만은 설득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니까요.
그렇다면 10년도 넘은 이 영화가 왜 오랜 시간 빛을 내며, 많은 영화팬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지 연출적으로 깊게 파헤쳐보겠습니다.
다소 깁니다. 영화 감상 후 읽어주세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연출한 코엔형제의 작품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코엔 형제 감독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원리는 우리의 세상은 예측할 수 없다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 삶에 비췄을 때, 행운도 절망도 선택하거나 예상할 수 없으며, 그저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죠.
영화 <파고>, <블러드 심플>, <인사이드 르윈>, <시리어스맨>,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카우보이의 노래>까지. 코엔형제의 훌륭한 작품을 꿰뚫고 있는 하나의 관점은 우리의 세상은 예상하거나 해석할 수 없는 우연의 연속이며, 이러한 우연은 인간에겐 불행으로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코엔 형제의 영화 속 인물들은 당장 내일도 1시간 앞도 예상할 수 없는 불확실성만이 가득한 세계관을 그립니다. 그리고 이 법칙을 거스르려 하는 등장인물들은 어김없이 걷잡을 수 없는 불행으로 빠지게 되죠. 그렇다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 코엔형제의 세계관을 더 파헤쳐보겠습니다.
1-1. 안톤 시거의 폭력, 사슴사냥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는 예측불가한 인물입니다. 운전하다 보이는 새를 그냥 쏘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면 서슴없이 살인을 범하죠. 이 영화가 쉬거를 처음 제대로 보여주는 순간은 경찰을 살해하는 순간입니다. 처음에는 포커스 아웃되어 있다. 그에게 초점이 맞는 순간. 경찰은 그에게 변을 당하게 되죠. 그렇게 경찰서를 탈출한 쉬거는 길을 가던 행인을 잡아 죽입니다. 이유도 없이요.
이를 보는 관객은 혼동에 휩싸입니다. 그가 하는 행동에는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두 번째 살인을 합니다. 길 가던 차를 빼앗기 위해 행인을 살해하죠. 그 장면 이후 등장하는 장면은 르웰린 모스(조슈 브롤린)가 사슴을 사냥하는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쉬거의 살인장면과 모스의 사냥 장면의 연결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치밀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인간이 동물을 사냥을 하는 이유는 뭘까요? 고기를 얻기 위해서거나 단순한 오락이겠죠. 안톤 쉬거에게 살인은 사냥과 같습니다. 인간들을 동물로 보는 인물이죠. 그렇기에 쉬거에게 살인은 그저 돈과 오락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쉬거의 살인과 모스의 사냥 장면 배치는 사냥꾼과 사냥감이 된 두 인물의 관계를 암시하는 동시에 쉬거의 행동과 모스의 사냥행위를 등치 하는 장면배치(편집)입니다.
이 영화는 내내 안톤 쉬거는 모스를 따라다니고 모스는 상처 입은 사슴처럼 도망만 다니까요.
그리고 이 두 인물의 대립을 통해 세상의 원리는 약육상식과 같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코엔형제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핵심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2. 동전 던지기 그리고 교통사고
코엔형제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은 안톤 시거의 동전 던지기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목숨을 담보로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는 장면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러나 쉬거에게 삶과 죽음은 순전히 우연, 운에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입니다. 본인조차 말이죠. 그렇기에 삶을 결정하는 그 순간조차 쉬거에게는 큰 의미 없는 단순한 오락의 순간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쉬거의 세상에서 죽음이든 계속되는 삶이든 발생할 일은 이유 없이 일어날 뿐이니까요.
그렇기에 운에 의해 목숨을 정하는 게임 장면은 이 영화 속 세계를 관통하는 동시에 연출적으로도 뛰어난 장면입니다. 최소화된 음악, 서스펜스를 만드는 편집, OTS(over the shoulder shot)와 클로즈업의 활용, 배우의 열연으로 결합된 완벽한 장면이니까요. 그렇게 엄청난 서스펜스가 형성된 이 장면은 우리를 경직되게 만듭니다. 마치 스코프에 겨냥된 사냥감이 된 것처럼요.
1-3. 소와 인간, 쉬거의 무기,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이 영화에서 배테랑 경찰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는 자주 등장합니다
이 노인이 등장하는 장면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톰은 쉬거의 살인 이후에 매번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건현장을 보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톰을 보며 노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가 쉬거를 잡기를 바라죠. 그러나 에드 톰 벨은 단 한 번도 그를 잡지 못합니다. 왜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시원한 전개를 보여주지 않는 걸까요.
이를 이야기하기 전에 에드 톰 벨의 이야기 중 3가지 장면에 대해를 얘기해 봅시다.
첫 번째는 에드 톰 벨이 모스의 아내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모스의 아내와 얘기 중 소를 도살하는 이야기를 하죠. 과거에는 소를 도축하기 위해 소를 매달아 놓고 총을 쏘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총알이 튕겨나가 총을 쏜 이의 어깨에 맞았고 그는 평생 한 팔을 잘 쓰지 못했다는 일화를 이야기하죠. 소와 인간 사이에 일조차 맘대도 되지 않았었다고 그는 이야기하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소가 알지 못하게 공기총을 사용한다고 말을 덧붙입니다. 이 일화에서 등장한 도살자와 소와의 관계는 안톤 시거의 행동과 일치되는 묘사입니다. 쉬거가 행하는 살인은 소를 도살하는 이들의 행위와 같으니까요.
두 번째 장면은 톰이 더 나이 든 노인 엘리스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톰은 노인인이 잡은 범죄자 앙골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톰은 엘리스에게 잡았던 범죄자가 석방되면 어찌했을 것인지 묻습니다. 여기서 엘리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답합니다. 그리고 그의 석방 이후의 일어날 일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고 답하죠. 범죄저의 석방과 이후 닥칠 일은 엘리스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다음 나눈 대화는 강도에게 살해당한 맥 삼촌의 훈장 이야기입니다. 과거 맥 삼촌은 경찰로 집으로 들이닥친 강도들에게 살해당하게 되었죠. 엘리스는 그 일화를 통해 삶의 허망함을 나눕니다. 그러니 너도 예상할 수 없는 일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하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이에 방점을 찍는 세 번째 이야기. 보안관 은퇴 후, 아내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나온 꿈에 대해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꿈에서 아버지가 등불을 들고 나온 꿈을 생각하며 그는 두려워합니다. 언젠가 다가올 예기치 못할 죽음을 생각하면서요. 무섭지 않았다고 했던 오프닝 속 그와는 달라졌죠. 이제 그는 예상할 수 없는 세상에 깊은 무력감에 빠져며 살 테니까요.
이러한 이야기는 이 영화의 세계관과 제목과 연결됩니다. 이는 가장 마지막 6번에서 종합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쭉 읽다 보시면 촘촘하고 완벽하게 구축된 이 세계관에 대해 알게 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톰 벨의 목소리가 깔리며, 여명으로 밝아지는 광활한 초원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로 나오는 이야기는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 이어진 보완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14살짜리 소녀를 죽인 소년 사형수이야기를 합니다. 톰이 잡았던 그 소년은 살인죄로 인해 전기의자로 사망했죠. 톰 벨은 왜 소녀를 죽였는지 물었지만 소년에게는 동기가 없었습니다. 당혹스럽고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톰은 크게 두렵지 않다고 하죠. 세상사 다 그런 거라고 하면서요. 그의 자신만만한 내레이션 뒤 화면이 비추는 인물은 안톤쉬거죠.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 작품의 엔딩은 허망함과 공포에 떠는 그를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보안관으로서 자신감과 자긍심 그리고 노련함을 갖춘 그였지만, 예측할 수 없는 안톤 쉬거와의 일은 그를 점차 무력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자신만만하던 오프닝 속 그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쉬거의 살인과 모스의 죽음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본인의 무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구나 하면서요.
오프닝과 엔딩을 통해 에드 톰 벨은 변화합니다. 많은 소설과 이야기가 그렇듯 인물의 변화상을 그리는 것은 처음과 끝의 대조죠.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내적변화를 맞이하는 인물은 에드 톰 벨입니다.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던 그가 무력감과 공포에 휩싸이며 이 영화는 막을 내리니까요.
이 영화는 건조한 연출을 택하고 있습니다. 안톤 쉬거와 모스, 에드 톰 벨이 한 프레임에 나와 갈등을 고조한느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죠. 그렇기에 갈등의 중신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전혀 없습니다. 거기에 이 영화에서 겨우나 오는 음악도 매우 작습니다.
거의 음악을 거세한 것처럼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가득 메우는 것은 기초적인 사운드입니다. 조심스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마찰음이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우죠. 마치 사냥꾼에게 포착된 사냥감이 된 것만 같은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조명 또한 매우 클래식하며 절제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인물을 비추는 조명은 인물의 측면을 비추어 이미지의 입체감을 더하는 동시에 어두운 분위기로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조명연출을 사용하죠. 대표적으로 문 밑으로 비추는 쉬거의 그림자를 비추는 이 영화의 조명 설계와 촬영은 실제 숨통을 조이는듯한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대게 영화에서 음악과 조명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음악과 사운드는 영상에 리듬감과 입체감을 부여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니까요. 그러나 다른 영화와 달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절제된 음악과 조명으로 우리를 영화 속 세상에 빨려 들어가도록 만드는 마력을 전합니다.
4. 세밀하고 예리하다. 완벽한 호흡
이 영화에서 버릴 장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촘촘하고 세밀하게 장면이 배치되었으며, 리듬감 있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장면은 안톤 쉬거와 모스가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장면의 편집이며, 그 다음은 모스가 수영장에 있는 여성 대화를 나눈 다음의 장면이었습니다. 모스릍 유혹하던 그녀는 술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모스는 아내가 있다며 거절하죠. 그러자 그녀는 아무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마신 이후 취할 뿐이라는 대화를 나누죠. 이때 영화는 웃는 모스를 비추며 페이드 아웃(어두워집니다)됩니다. 모스와 수영장의 여자는 술 마신 이후의 미래는 바람피우거나 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 그들의 미래는 죽음이죠. 그들의 죽음은 우리를 허망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안톤 쉬거가 아닌 멕시코 갱에게 죽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허망한 죽음을 톰 벨의 시점으로 비추죠.
이 장면의 편집은 이 작품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사건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연히 나와야 할 장면을 제거하여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아이러니를 담은 편집으로 영화는 다시금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요.
이 영화의 캐릭터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대게 당혹스러움에 빠집니다. 몰입도는 높지만 이 영화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하면서요. 만약 이 영화가 모호하고 허망하다고 느꼈다면 제대로 보신 겁니다. 이 영화가 세 인물을 통해 그리는 것이 아무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삶의 불가해성이니까요.
그러나 간단하게 한 줄로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나 주제를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위에 장황하게 쓴 것처럼 그렇게 단순히 말할 수 있는 작품도 아니니까요.)
다만 해설을 위해 거칠게 표현하자면, 코엔 형제가 세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인간에게 세상은 원래 비극의 연속이고 우리가 상황을 바꾸려 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기력감을 관객과 등치시켜 이입시키는 인물이 주인공 보안관 에드 톰 벨이며, 톰을 통해 우리는 혼동과 무력감을 전달받죠.
다른 등장인물 모스는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안톤 시거 와의 싸움에서 도망치고 안도했을 때, 그는 멕시코 갱들에게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안톤 쉬거와 숨 막히는 추격전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는 쉬거와는 관계없이 장모가 실수로 한 멕시코 갱에게 한 몇 마디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작품은 모스를 통해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세상을 다시금 비추고 있으며, 이를 힘없이 그리고 무력하게 마주하는 인물이 보안관 에드 톰 벨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죠.
마지막으로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입니다. 그는 코엔 형제가 생각하는 삶의 불가해성이 캐릭터화된 것이며, 그는 곧 자연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코엔형제가 생각하는 세상의 섭리는 우리에게 세상은 혼돈 그 자체라는 것이며, 자연의 관점에서는 이 모든 일이 기본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의지나 경험이 아닌 그저 타인이나 거대한 흐름 그리고 작은 우연에 의해 결과가 정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말하죠. 그렇기에 그가 벌이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살인은 모두 그의 기분대로 또는 운에 따라 이뤄지게 됩니다. 야생의 포식자가 사냥감을 잡는 이유에서 확률이나 예측은 딱히 의미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그가 저지르는 폭력은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예측불가능)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거나 고양이가 재미로 쥐를 잡는 것만큼 그에게 폭력은 사냥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그가 폭력을 행하는 장면과 상처를 입는 장면들을 통해 드러내죠.
여기서 그가 상처 입는 장면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 번은 모스를 잡다가 역으로 당하게 되는 장면이며, 그다음은 모스의 아내를 살해한 후 교통사고 장면이죠. 여기서 안톤 쉬거의 반응들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 오는 상처와 사건에 대해 매우 의연하기 때문인데요. 불가해성을 세상의 원리로 살고 있는 그에게, 총상도 교통사고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일 테니까요.
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의미
이쯤 보셨다면 영화의 제목의 의미를 어렴풋이는 받아들이실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나이 든 보안관 에드 톰 벨로 보신다면 말이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은 지혜를 가진 노인들의 무용성을 의미합니다. 즉, 오래 살았으니 세상은 이렇다고 설명할 수 있는 노인 또는 현자들에게 과연 당신들 말대도 될까?라고 하는 이야기죠.
오프닝 속 '세상은 원래 이래' 라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졌던 에드 톰 벨은 영화 말미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등장한 꿈만으로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경험으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던 베테랑 보안관은 진정한 불가해한 혼돈을 마주했을 때 무력감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영화는 공포에 떠는 비참한 노인을 비추며 마무리됩니다.
세상은 원래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의 경험과 의지로 이겨나갈 수다고 생각하던 그가 원래 세상은 통제할 수 없었고, 예상할 수 없는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안톤 쉬 거와 모스의 죽음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 그의 세상은 너무나 불친절하고 설곳없는 곳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미 지긋이 나이가 든 그에게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삶은 너무나 무서운 공간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 이어진 그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던 것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의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생은 경험만으로 전부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그가 세상은 불가해한 비극의 연속이라는 깨달은 시점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늙은 그가 오롯이 할 수 있는 것은 다가올 비극에 힘 없이 벌벌 떠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10)
세상은 원래 불가해한 비극의 연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