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E 무제한과 세탁기는 필요 없다는 안내판
우연인지, 운명인지
_ 올라가는 길이긴 한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좀 쉬었다 가려고요. 어디서 오셨어요?
_ 그래, 좀 쉬었다 가도 괜찮겠어. 오늘 엄청 덥네. 우린 다윈에서 왔어. 호주지만 발리나 동티모르랑 더 가까운 동네지. 하하.
두브로브니크는 정말 더웠다. 나와 친구들은 헉헉대며 땀을 흘리다 정상에서 먹기로 한 도시락을 길 중턱에서 까먹던 참이었다. 체력이 꽤 괜찮았던 10년 전이라면 단숨에 올랐을 거리고, ‘열정’과 ‘정복’이라는 단어에 설레던 몇 년 전이라면 악으로 깡으로 질주해 마지않았을 시간이고, 돈이 더 많았더라면 케이블카로 편히 올랐을 정도였지만, 우린 햇볕 아래 늘어져서 ‘아무렴 어때?’라며 펑크 난 자동차처럼 퍼져 버렸다. 그래도 꽤 괜찮았다. 정상에 오르지 못해도 하찮지 않았다. 이 악물고 애쓰는 건 정신건강과 치아건강에 모두 좋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아쉬울 것 없는 오후 2시였다. 그때 우리를 뒤따라 언덕을 오르던 노부부가 물었던 것이다. 올라가는 길인지, 내려가는 길인지.
스쳐 지나던 할아버지의 농담에 함께 웃었으면서도 우리가 다윈에 가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정확히 8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윈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디서? 발리에서. 할이버지의 말씀대로 다윈은 발리에서 지척인 동네였다. 이걸 우연이라고 불러야 할지, 운명이라고 말해야 할지.
캠핑카가 하루에 1달러라고?
발리에서의 한 달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스카이스캐너를 통해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있었다. 수하물이 없는 맨 몸이니 저렴한 티켓만 있다면 어디든 날아갈 참이었다. 도착지를 'Everywhere'로 설정하고 여기저기 경로를 살펴보던 우리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다윈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다윈 할아버지가 떠오르자 온갖 증거들이 앞다투어 우리의 호주행을 운명이라 응원하는 듯했다.
_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할아버지 기억나? 동티모르랑 더 가까운 동네가 다윈이라고 했잖아. 7만 원이면 호주의 다윈에 갈 수 있다니, 이건 운명이야.
_ 이럴 수가. 다윈 여행정보를 좀 찾아보다 우연히 캠핑카 렌트를 보게 되었는데, 하루 1달러로 캠핑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찾은 하루 1달러의 캠핑카 대여는 리로케이션 시스템을 이용한 방식이다. 렌터카 회사가 원하는 위치까지 캠핑카를 운전해주는 대신 저렴한 가격에 정해진 기간 동안 캠핑카를 이용할 수 있다. 운반 기간이 촉박할수록 회사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어떤 경우에는 유류비까지 모두 지원해준다. 렌터카 반납 일정과 경로가 본인의 여정과 맞는 경우라면 짧은 시간이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호주 캠핑카 여행을 경험해볼 수 있는 셈이다.
우리에겐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요, 품절되지 않는 것이 자유인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당장 다윈행 티켓을 결제하고 호주 렌터카 경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렌터카 회사가 제시한 기간에 이틀을 더 연장해 호주의 다윈에서 퍼스까지 캠핑카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발리에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여행 경로가 내비게이션처럼 우리 앞에 펼쳐졌다. '자 이제, 호주까지 직진입니다!'
고요와의 1차전
호주의 머리 끝에 붙은 다윈은 마른풀과 붉은 흙이 날리는 지역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와 그 위를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드문드문 짧게 자란 마른 풀잎과 커다란 지구의 손목시계 같은 바오밥 나무 몇 그루들만이 빈 땅을 지배한다. 바오밥 나무는 어린 왕자의 말대로 그 뿌리가 별을 관통할 만큼 거대했다.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과 눈을 맞추며 쉼 없이 달렸다. 게으름 피우지 않아야 다윈에서 퍼스까지 4000km를 완주할 수 있었다.
사실 로드트립을 시작하기 전엔 호주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씩 달리고 꼬박 하루 만에 작은 마을을 만나며 그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을이 없는 지역에선 인터넷은커녕 전화도 사용할 수가 없다. 'SOS only'라고 쓰인 휴대폰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루 8시간씩 운전을 해야 하는 차 안에서 인터넷도 할 수도 없고 메신저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 수도 없고 라디오에선 알아듣기 힘든 영어만 나온다. 그러다 로드킬 당한 캥거루처럼 죽은 동물의 시체를 만나기라도 하면 여기는 과연 어떤 이름의 지옥인가 싶다.
지나는 차도 자주 만나기 힘든 도로다 보니 앞차든 뒤차든 함께 달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저 반갑다. 윌슨을 떠나보내며 울부짖던 톰 행크스의 심경이 이해가 될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길 위의 여행자들은 서로의 차가 스쳐가는 그 짧은 찰나에 손짓과 눈빛으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손가락 두 개로 수신호처럼 주고받는 안부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찰나처럼 우리 옆구리를 스쳐가는 이들 후엔 또다시 고독이 찾아온다. 호주에서 경험하는 오지라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뭐라도 만나면 반가울 지경이다. 고독과의 전쟁이다.
며칠 동안 같은 풍경을, 하루에도 수백 킬로미터씩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을 달린다는 건 생각보다 아주 무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고독함과 무료함 때문에 로드트립은 여행보다 명상에 가깝다. 새로운 풍경과 자극에 몸을 활짝 여는 게 여행이라면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내 안으로 침잠하는 게 길 위의 시간이다.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다. 처음에는 지난 과거의 사소한 잘못들을 떠올려보고 인생에서 제일 지우고 싶은 세 장면을 골라보고 가장 초라했을 때의 나를 위로한다.
시간이 많은 데도 즐거웠던 일들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빨래 바구니를 뒤집듯 아주 치사한 일들까지 죄다 널어놓지만, 남는 건 먼지투성이인 외투뿐이다. 그래도 남은 시간에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1년 뒤 오늘 호주의 길 위에 다시 서고 3년 뒤에는 쌓아놓은 메모들을 긴 글로 엮어보고 5년 뒤에는 마흔을 걱정하느라 또 허송세월을 보내고. 그 상상은 지구의 종말이나 미지의 화성에까지 닿아야 끝난다. 그래서 진짜 끝이냐고? 아니. 그래도 시간은 남는다. 이제부터는 명상의 단계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의 색깔과 각종 식물들의 채도를 탐색하며 조금 더 고요하게, 내 숨소리에만 집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 한 그루를 보며 떠올리는 상념들이 무한해졌고 그에 대해 서로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에게 이런 사소한 대화가 얼마나 필요했을까? 이런 지루함, 이런 심심함, 이런 고요와 고독이, 그래서 나에 대해,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말이다.
길 위의 여행이 끝나갈 때쯤 우리는 하루 종일 인터넷을 하지 않아도 심심하거나 무료하지 않았다. 어디든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도심에서도 왜 그리 LTE 무제한 요금제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며 두 시간 동안 또 쉬지 않고 습관처럼 떠들었다. 그리고 로드 트립이 완전히 끝났을 때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공간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잠깐씩 찾아보는 것으로도 충분해졌다.
빨래와의 2차전
해가 뜨는 순간부터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다 해질 무렵 캠핑장에 자리를 잡는다. 작은 텐트와 캠핑 의자 2개를 차에 싣고 호주를 일주한다는 젊은 커플을 만났다. 중고로 샀다는 그들의 낡은 자동차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서 있는 그 차가 노쇠한 말처럼 보였다. 노숙하다 바람에 날아갈 뻔한 이야기, 어느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밤을 새우다가 거지로 오해를 받은 일들을 나누며 우리는 젊은 커플과 시간을 보냈다.
밤새도록 수다를 떨고 싶지만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많다. 저녁을 지어먹고 설거지를 하고 내일 운전할 경로와 캠핑장을 알아보고 차가 괜찮은지도 잘 살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는 바로 빨래다.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니는 우리의 여행은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만, 매일 밤 빨래를 할 때면 정말이지 절망스럽다.
입고 다니는 옷이 한 벌이니 잘 빨고 잘 말려야 하는데 매일 밤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물도 부족한 경우가 많은 캠프 사이트에선 그게 참 쉽지 않다. 사이트에 도착하자마자 빨래를 하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졸린 눈으로 동쪽을 향해 빨래를 다시 넌다. 그럼에도 옷이 잘 마르지 않은 날에는 축축한 바지를 입고 하루를 지낸다. 옷에서 덜 마른 빨래의 찝찝한 냄새가 나면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서 더러워진 건지, 원래 더러워서 미니멀리즘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지경이 된다.
_ 킁킁. 옷은 하루 더 입을 수 있겠어. 그런데 제발 이 티셔츠는 좀 빨아주면 안 될까? 나 정말 힘이 없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 표정)
_ 소용없어. 지난번에 내 양말 안 빨아줬잖아. 나도 힘들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매일 스스로 빨래를 하는 일에 (혹은 더러운 걸 견디는 일에) 익숙해져 갔다. 샤워를 하며 간단한 빨래를 해내는 일이 자연스레 몸에 익었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계산으로 빨래를 널고 버려진 비닐봉지를 활용하여 적절히 세탁 효과를 주는 데도 도가 텄다. 그러고 보면 집집마다 꼭 세탁기가 필요한 물건인가 싶다.
베를린에서 머물던 오래된 아파트 지하에 공동 세탁실이 있었다.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고 여기던 그때는 매번 무거운 빨래통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게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는데 가벼운 여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때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멋진 세탁기가 아니야. 모든 집에 꼭 세탁기가 필요한 건 아니야.' 최면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너희 집은 어디니?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끓인다. 캠핑장 곳곳에서 부지런히 출발하는 무리들도 보인다. 어제 우리와 인사를 나눴던 젊은 커플이 우리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캠핑장을 떠나며 오늘 우리 집이 어디인지 묻는다. 어느 캠핑장에 묵을 예정인지 묻는 것이다. 혹시 비슷한 속도로 가게 된다면 오늘 그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약속했다.
차를 세우는 곳이 곧 우리의 집이 되는 신비한 경험은 호주에서 얻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빚내서 집을 사지 않고 어디든 머무는 공간이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붉은 먼지 앞에 세운 이 작은 차가, 아니면 어느 숲 속에 엉성하게 친 빨간 텐트 하나가, 어쩌면 여행자 10명이 함께 사는 작은 공간 하나가 우리의 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제 우리 집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끝도 없이 펼쳐지는 대지가 수평을 이루는 절벽 앞이었다. 모래 바람이 날리는 우리 집 문 앞에 노을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의 풍경이 그 어떤 TV 프로그램보다 흥미로웠다. 낮이 간 자리에 내린 밤은 더욱 완벽했다. 불빛 하나 없는 집 안에 내린 완벽히 검은 밤은 그 어떤 밤하늘보다 화려했다. 거대한 돔 안에 들어와 있는 듯, 둥글게 빛나는 밤하늘. 별들은 천장부터 땅끝까지 빼곡하게 들어찼다. 문득 낮에 본 이정표가 생각난다.
[이봐, 조금 쉬어가지 그래?]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인생길에도 표지판이 군데군데 서 있으면 싶다. 어느 길목에선 조금 쉬어가라는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흔까지 앞으로 10년, 조금 쉬어가세요>라고. <LTE 무제한과 세탁기는 필요 없어요> 라거나 <언제나 캥거루를 사랑하세요> 라거나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은 조금 놀아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