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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오일여행자 Jan 14. 2018

9년 동안 우리는

미얀마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9년이 지나고


하여간 비자받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방콕에 위치한 대사관에 몇 번이나 방문했고 완전히 비자가 나오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자라는 이유로 비자를 받지 못했던 한 미국인은 끝내 대사관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미얀마를 여행하기엔 여러모로 힘이 들고 무엇이든 소용없는 때였다. 무해해 보이는 학생 신분이었고 게다가 조금 순진해 보이는 나이였던 나는 운이 꽤 좋은 편이었다. 9년이 지난 2017년 여름, 우린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미얀마 비자를 발급받았다. 서류에 적힌 이름을 보다 문득 9년 전 미얀마를 여행하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꼭 다시 만나고 싶던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Nyaung Shwe, Myanmar _weekdaytraveler

9년 전 이맘때였다. 인레 호수가 있는 낭쉐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 건 새벽 세 시 무렵이었다. 본래 도착하기로 한 터미널이 아닌 영 낯선 곳에 버스가 멈춰 섰다. 한밤중도, 그렇다고 아침도 아닌 그 기묘한 시간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낡은 가로등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인 그 공간은 도저히 정류장이랄 수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장소랄 수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버스는 불안한 내 마음도 모른 채 무심히 떠나버렸고 나와 또 다른 여행자 한 명만이 어둠 속에 남았다. 버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오토바이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고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택시로 모는 기사들이 모여든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 남을 일이 두려워 냉큼 시내까지 가자며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렇게 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Nyaung Shwe, Myanmar _weekdaytraveler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시골길을 달려 나가는 오토바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따라오던 여행자의 오토바이와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거리만큼 나는 불안해졌다. '혹시나 이 사람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면 어쩌지?'라는 작은 의심은 결국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라는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당시 미얀마는 겉으론 평화로운 듯 보였지만 속으론 숱한 저항이 들끓던 때였다. 그래서 비자를 받기도 어려웠고 해외로 전화 한 통 걸기는커녕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없었다.

@Nyaung Shwe, Myanmar _weekdaytraveler

어디 한군데 연락할 구석도 없는 이 상황을 온갖 위험한 상상으로 발전시키던 냉혹한 15분이 지나고 오토바이는 시내의 한 숙소 앞에 멈췄다. 환한 불빛 아래에서 다시 본 오토바이 택시 기사님은 세상에 가장 착한 눈을 가진 기사님이었다. 기사님은 긴장한 나의 표정과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눈치채곤 숙소가 문을 열기까지 함께 기다려주셨다. 오해로 남을 뻔한 그 밤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 가장 따뜻한 밤으로 남아있다.


인레호수의 두 소년


바로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두 소년이 있었다. 여행자도 거의 없고 인터넷도 불통인 그곳에서 두 소년은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혼자 지내는 나에게 늘 먼저 말을 걸어주고 동네를 구경시켜주곤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해주며 먹고 잔다던 그 소년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인레 호수가 지척이지만 그곳에서 열리는 축제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삼총사가 되어 자주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수로 나갔고 축제 기간에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에게 사정해, 소년들과 함께 축제를 구경가기도 했다. 새 옷을 꺼내 입고 당당하게 배에 오르던 두 소년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Inle Lake, Myanmar _weekdaytraveler

두 소년을 만나기 위해 다시 돌아온 2017년의 낭쉐는 조금 변해있었다. 지난 추석보다 키가 훌쩍 자라서 알아보기가 영 힘들어진 사촌동생처럼 낯설었다. 커다란 호텔들이 땅 따먹듯 야금야금 좁은 흙길을 차지했고 전에 없던 커다란 자동차들도 부쩍 늘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좁은 골목에 빵빵- 클락션을 울리는 자동차를 보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 낯선 기분을 다잡고 9년 전 두 소년과 탔던 좁고 긴 보트를 타고 인레 호수로 향했다.

@Inle Lake, Myanmar _weekdaytraveler

인레 호 주변에는 이 호수의 어부이자 농부인 사람들이 여전히 물 위에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삶은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낡은 물 위의 집들과 나무로 만든 배와 노, 그리고 물 위에서 자라는 빨간 토마토 열매까지. 하지만 느릿느릿 흘러가는 보트 위에서 메일을 확인하라는 알람이 울리면 세상이 한꺼번에 달라진 기분도 들었다. 4주 동안 전화도, 인터넷도 없이 여행했던 9년 전과 달리 인레 호수 한가운데에서도 인스타그램에 접속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Inle Lake, Myanmar _weekdaytraveler

우리가 지금 미니멀 여행을 실천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이 세계에 일어난 9년 동안의 변화 덕분이다. 전화도 잘 터지지 않던 미얀마에서 이제는 어디서나 편리하게 해외로 전화를 걸 수 있다. 구하기 어려웠던 미얀마의 온갖 여행 정보들이 인터넷 콘텐츠로 무한 증식 중이고 악명 높던 오지에서도 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디지털카메라와 수만 장의 사진을 담을 외장하드, 낡은 일기장도 필요치 않다. 스마트폰과 구글 드라이브 하나면 이 모든 난제가 한꺼번에 풀리니까. 


우리에게 두꺼운 가이드북과 외장하드, 사진을 넣은 CD들이 필요 없어진 이유다. 우리가 불필요한 짐을 줄이고 가볍게 여행하기까지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진 것처럼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그 혜택이 우리 둘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느껴져 어리둥절 하기도 하다.  

@Inle Lake, Myanmar _weekdaytraveler

9년 전 두 소년을 만났던 게스트하우스는 5층짜리 새 건물을 올렸지만 그 게스트하우스 제일 끝방에 살고 있던 두 소년은 결국 찾지 못했다. 두 소년은 어디로 떠났을까? 더 큰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갔거나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난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들을 찾을 수 없는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우리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김삿갓처럼 방랑하며 4개월을 짐 없이 여행하는 것처럼 두 소년도 9년 전과는 다른 삶을 위해 이리저리 여행할지도 모른다 믿고 싶었다.


9년이 지나도


소년을 찾지 못하고 며칠 뒤 모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숙소를 나섰다. 이른 아침부터 이어지는 탁발 행렬을 보기 위해서였다. 매일 아침 붉은 옷의 승려들이 탁발을 들고 마을을 걷는다.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한 승려들의 수행방식이자, 생활방식이라고 한다. 아침 안개가 가시지 않은 새벽, 승려들의 발자국 소리가 사원 구석구석에서 작게 울리면 사람들은 길가에 자리를 잡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눈다. 스님들은 그 정성을 거리에서 밤을 지새운 누군가에게, 아직 아침을 먹지 못한 아이들에게 다시 나누어준다. 경건한 마음으로 제 것을 나누는 모습에 경외감이 들었다.

@Nyaung Shwe, Myanmar _weekdaytraveler

만달레이로 향하는 밤 버스를 타기 전까지 동네를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다 단골 꼬치구이 집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얼굴을 익힌 소년 한 명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우리가 자주 먹던 꼬치 몇 개를 먼저 골라 준다. 오늘 범버스를 타고 떠난다고 하니 잘 가라고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사진을 한 장 찍으려다 그만두고 씩씩하게 악수를 했다. ‘꼬치 많이 많이 팔고 이건 입맛에 잘 맞으니까 한국 사람들 오면 추천해주고, 가격은 좀 올려도 돼! 너무 싸잖아’ 녀석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그저 웃고만 있는다.

@Nyaung Shwe, Myanmar _weekdaytraveler

꼬치집을 나와 만달레이행 야간 버스에 올랐는데 아침 6시에 도착한다던 버스가 새벽 3시 반, 갑자기 곧 도착이라며 사람들을 깨웠다. 오밤 중에 물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터미널로 들어선 버스 주변은 이미 택시 기사들로 시끌벅적했다. 영어로, 일어로 어느 호텔을 가는지 좌석에서 엉덩이를 채 떼기도 전에 홍수처럼 흥정이 들이닥친다. 부스스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도 버스에서 내렸다. 도착 시간인 6시에 맞춰 픽업을 오기로 한 택시기사님이 계셨는데 이걸, 어쩌지?  

@Nyaung Shwe, Myanmar _weekdaytraveler

앞으로 여기서 2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싶었다. 같이 내린 사람들이 하나, 둘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고 손님을 태우지 못한 한 명의 기사 아저씨와 우리만 덩그러니 정류장에 남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여 일단은 호텔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간신히 연결은 되었는데 도통 영어로 소통이 되지를 않았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기사님이 우리 대신 숙소 직원과 통화해주셨다. 통화를 마친 기사 아저씨는 호텔에서 곧 택시가 올테니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아무도 없는 캄캄한 버스 정류장에서 함께 있었다.  

@Bagan, Myanmar _weekdaytraveler

택시 기사만 7년 째인 아저씨는 화려한 경력답게 출중한 영어 실력을 자랑하셨다. 처음 4년은 오토바이 택시로, 그 후 3년은 어엿한 공식 택시 기사로 근무 중이라고 하셨다. 외국인을 보면 척!하면 삼천리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갈건지 답이 딱! 나오는데 처음 우리를 보곤 긴가민가 하셨단다. 왜 그리 생각했냐고 물으니 대답이 재미있다. 일단 옷이 너무 구겨졌고 머리도 부스스하고 (돌려 말씀하셨지만 하여간 후져서) 그렇단다. 잠깐 잊고 있었다. 우리 행색이 TV 속 한국과는 너무 멀다는 사실을.

@Bagan, Myanmar _weekdaytraveler

_ 사실 저 미얀마에 두 번째예요. 9년 전에도 왔었거든요.

_ 그랬구나! 그땐 여행하기가 편하지 않았지. 참, 살기도 힘들었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 이것 봐. 내 새로 산 아이폰! (나의 아이폰보다 신형이었다) 그래도 미얀마 사람들은 여전해.

 

사실 새벽 3시 반에 이런 낯선 곳에 내려서 택시 기사들이 몰려들면 대부분 경계하고 우릴 나쁜 사람 취급해. 뭐, 일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 해, 미얀마 사람들은. 길거리에 혼자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 다들 말을 걸고 그래.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마음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매일 탁발하는 승려들을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돕고 싶어 하니까. 너도 9년 동안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을 걸?  

@Bagan, Myanmar _weekdaytraveler

아저씨 말씀이 맞다. 배낭에 넣은 무거운 짐들을 줄여 가방 하나 들고 여행하기까지, 나는 어떤 면에선 변태를 하는 곤충처럼 완전히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잠이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긴장하는 소심함은 그대로다. 


그래, 아저씨 말이 맞다. 숱한 것들이 변했지만 9년이 지나도, 19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사람들의 마음도 있다. 어두침침한 정류장에 우릴 두고 갈 수 없어 한 시간을 허탕 쳤어도 싫은 내색 없이 우리를 위해 남아준 만달레이의 택시기사 아저씨, 두려움에 떨던 나를 안전하게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준 9년 전의 젊은 오토바이 기사님까지.

@Bagan, Myanmar _weekdaytraveler

'변함없다'는 말이 숨 막히게 답답한 때가 있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무슨 일이라도 제발 일어나기를 바라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영원히 그대로였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황인찬의 시, 무화과 숲의 한 구절이나 첫사랑의 목소리, 그리고 바간의 고독과 만달레이 사람들의 구원 같은 것 말이다. 


곧 출발한다던 숙소의 택시는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우리는 컴컴한 만달레이 정류장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저씨와 아침을 맞았다. 우리는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하며 말했다. '아저씨! 9년 뒤에 꼭 다시 만나요, 여전한 모습으로요. 변하고 또 변하지 않은 어떤 모양으로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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