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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서재 Sep 01. 2024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오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 - 여섯번 째 이야기

IT분야에서는, 10년간 한 가지 분야만 전문적으로 파고든 경력자와, 매년 다른 과제를 수행해서 10가지의 다양한 업무를 해본 경력자 중 누가 더 채용에 유리할까?


아마도, 마침 그 한 가지 분야가 채용하려는 분야와 매우 일치한다면 전자가 더 유리할 것이고, 대신 후자는 10가지의 다양한 업무를 해본 만큼 다양한 채용 모집에 하나라도 일치할 경우 지원해 볼 수 있는 잇점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채용 분야가 일치하는 경우라고 해서, 항상 채용 부서에서는 일치하는 한 가지 분야의 업무만 10년간 파고든 경력자를 더 원할까?


먼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자.

10년간 한 가지 분야만 전문적으로 파고든 경력자는 적어도 그 분야에 대해서는 10년간 10가지의 다양한 업무를 해 온 경력자보다 훨씬 기술 역량이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미리 이야기 하지만, 위의 질문 자체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우문일 수 있다. 한 가지 분야라는 의미가 얼마나 좁은 범위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 들었다는 뜻인지, 그리고, 10가지 다양한 업무라는 것이 얼마나 이질적인 다른 업무를 일컫는 것인지에 따라 해석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 부분은 이후에 이야기를 하면서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나는 SW/AI등 IT 분야에서의 경험을 주로 가지고 있으므로, 금융, 인사, 재무 등 타 업종이나 직군에 대해서는 는 상황을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전반적인 IT업계, 특히 소위 SW나 AI, Data 개발 직군 등 컴퓨터 분야에 있어서는, 나의 경험상 10년간 한가지 분야의 업무를 해온 경력자라고 해서,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해온 경력자 대비 항상 해당 분야의 기술 수준이 더 높다고 볼 수는 없다. 


20여년 넘게 수백명의 지원자를 인터뷰해 본 경험을 돌이켜보면, 10년간 10가지 업무를 한 사용자 중에는 두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매년 다른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지원자와, 10가지 업무를 모두 해봤기 때문에 10가지 업무 영역 모두 준 전문가 이상의 실력을 보유한 지원자이다. 

후자의 경우가 정말 흔히 있는 일이냐고 의심하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단지 경험을 했다는 것 만으로 모든 사람이 그 경험 과정에서 충분한 역량을 학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1년이라는 기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사실 역량 개발과 학습 측면에서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대학에서 특정 세부 전공과목을 수강하는 시간과 비교해보자. 보통 대학 학부 졸업생의 졸업 이수학점과 전공필수 이수학점은 학교 및 학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총 이수학점은 130~150, 전공필수는 60~70학점 정도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력에 따라 매학기 1점의 이수학점은 15시간 이상의 이수시간을 요구하므로, 70학점을 이수한다 함은 최소 1,050시간을 이수한다는 뜻이다. 다만 학부 전공에서는 매우 넓은 범위의 전공 필수 과목을 이수한다. 컴퓨터공학과의 예를 들어, 전공필수 중에서도 프로그래밍 언어나 데이터 분석 등 특정 분야로만 좁힌다면 해당 분야와 관련된 총 이수시간은 훨씬 적다. 물론, 단순히 학교 수업만으로 수강하는 과목들을 본인 실력으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기에,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하는 등의 추가 시간을 할당한다. 그렇더라도 기업에서는, 학부 과정에서 학습에 투자한 1,000여 시간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할 기본 준비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채용 시에 전공학과를 중요한 채용 조건 중 하나로 본다.

 

기업에서 1년간 업무를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야근 등의 추가 근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략 대한민국 평균 연간 근무일수와 하루 8시간 근무, 휴가 기간등을 가정하면 1,800~1,900시간에 이른다. 아무리 업무의 질에 따라 학습의 기회가 적거나 많아진다 하더라도, 2,000 시간에 육박하는 기간을 특정 분야에서 본인 실력으로 만들기에 부족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위의 말이 사실이라 치고, 10년간 10가지 업무를 해왔기에 10가지 영역에서 모두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유한 지원자가 존재하더라도, 10년간 한 가지 업무를 해 온 경력자는 적어도 그 분야에서 10배의 실력을 보유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산업 분야에 따라서 이 논리가 맞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기업의 IT 개발 직군에서는, 10년간 한 가지 업무만 했다고 해서, 1년간의 경험자 대비 10배의 실력이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업무 영역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영역도 있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그 이상의 발전이 제한적인 영역도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매년 다른 업무나 프로젝트를 했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직무 분야로 변경한 것이 아니라면 일정 부분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유사 기술 영역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매년 다른 업무를 했다고 해서 이전에 활용한 기술의 지속성이 단절된다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은, 기업에서 그 때마다 요구하는 최적의 기술을 현존하는 여러 최신 기술 중에서 빠르게 찾아 적용할 수 있는 민첩성과, 오랜 시간이 지냐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술 영역을 교집합으로 함께 발전시킴으로써, Generalist이자 Specialist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혹시라도, SW업계에서 업무를 해오다가 완전히 다른 직군, 예를 들어 기획이나 영업 등으로 업을 변경한 경우를 상상한다면, 이는 다른 업무를 했다기 보다는 완전히 직군 전환을 한 경우이므로 여기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즉 SW 직군을 예를 들자면, 10년간 Front-End 개발만 해 온 경력자와, Front-End 개발, 서버 개발, DB 설계, Data 분석 업무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해온 경력자의 경우가 적절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IT분야에서의 채용면접관에게 10년간 한가지만 파고든 경력자와 10가지 업무를 해온 경력자 중 누구를 더 선호할까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다.

그 보다는, 채용면접관은 그 동안의 경력 분야가 채용 분야와 일치하면서, 해당 기간동안 주어진 경험과 학습의 기회를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것으로 만들어 성장해 왔는 가를 중점적으로 본다. 이를 위해, 본인이 맡은 업무 내용과 함께, 해당 업무 영역에서 기여했던 기술 역량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인터뷰를 주로 한다. 이는 채용과 동시에 기업에 바로 기여할 수 있는 현재의 역량을 확인함과 동시에, 향후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살피기 위함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직장인 입장에서 10년간 한가지 업무를 할 지, 매년 다른 업무를 할 지 본인이 선택할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본인에게 있다. 매 순간 주어진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어떻게든 적은 노력으로 기업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성과만 만족시키고 월급을 받겠다고 마음먹는다면, 10년간 한가지 업무를 해도 10년만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고, 10년간 10가지 업무를 했다 하더라도 매년 다른 업무를 했기에 아무것도 제대로 아는게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필드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요소들, 예를 들어 SW분야에서는 각종 장애의 대응, 사전 방지, 유관부서와의 협업 등 수많은 배움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업무가 어떤 업무이던, 몰입하고 진심을 다해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매사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10년간 10가지 업무를 한 사람은 10가지 영역을 모두 잘 해내면서 넓은 분야에서의 통찰력을 갖춘 전문가로, 10년간 한두가지 일만 한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최고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만일 지금과는 다른 꿈이 있기에,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성장하길 바라지 않고, 단지 현재의 회사를 돈을 벌기 위한 임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번 글은 넘어가도 좋겠다. 다만, 어떤 꿈을 쫓든, 현재의 나를 아끼고 현재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꿈도 쉽게 다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현재의 직장과 업무 내용이 비록 자신이 기대하는 궁극적인 꿈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더라도, 그런 환경에서조차 인정받는 인재가 된다면 과연 앞으로 못할게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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