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서재 Aug 31. 2024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 - 다섯번 째 이야기

앞서 나의 첫 이직에 대한 결심은, 분명 한권의 책으로 시작되어 점점 확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한 켠에서는 여전히 (당시로서는) 네이버와 같이 과연 앞날이 어찌될 지 모르는, 10년도 안된 IT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즉 내가 얘기했던 것처럼, “변화” 자체를 즐길 만큼 나 스스로가 당시에는 성숙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참 모순적인 행동을 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나를 흔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다행히 나는 그 두려움 때문에 이직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네이버에도 지원을 하고, 동시에 네이버와 성격이 전혀 반대인, 더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정부출연기관 연구원 자리에도 지원을 하게 된다. 즉, 정 반대의 선택지를 두어, 둘 중 하나만 합격한다면 그게 나의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인다는, 어찌보면 좀 무책임한 발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원한 두 곳 중 한군데는 합격하고 다른 한 곳은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둘다 합격할 수도, 둘다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일단 서로 다른 두 곳을 지원하고 나면, 내 마음이 좀 더 명확해질 줄 알았나 본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결국 나는, 지원한 두 곳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만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미 내 가슴은 네이버에 입사하는 걸 강하게 원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웹진화론을 읽고 이직 결심에 대한 불을 짚힌 것인 만큼, 네이버가 아닌 다른 기업의 경우 현재의 불만족한 환경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 외에는 굳이 이직할 아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가슴은 네이버를, 나의 왼쪽 뇌는 정부출연연구소를 강하게 원하는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두 선택지 모두에 대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내 와이프와 가족들은 당연히 정부출연연구소에 표를 던졌다. 나의 어머니는 네이버에 갈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 좋은 대기업을 놔두고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회사에 가려고 한다고 슬픈 표정을 지으셨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미 당시에도 네이버는 1등 IT기업으로 안착했고 매년 빠르게 성장하는 주목받는 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모르는 분들이 많으셨다. 내가 자라오면서, 우리 집안 누구도 내 선택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한적이 없었다. 항상 최종 선택은 내 스스로가 해왔고, 주변에서 반대해도 결국 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거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어을까. 마치 어머니는 내 얼굴에 결국 내가 네이버를 선택하리라고 씌어 있었던 것을 보시고는 슬픈 표정을 지으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로 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무엇을 선택해야할 지 몰랐다. 매일 그 고민이 나를 지배했고, 고민하면 할 수록 생각이 복잡해져 머리가 터질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여러 책들 어딘가에서 본듯한 방법들을 조합해 만든 나만의 툴을 사용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것을 진정으로 더 원하는 사람일 지 알아보기로 했다.


순간 기록 노트


약 3주동안, 나는 매일 그날 있었던 크고 작은 행복한 순간과 그 반대의 순간들을 적어 내려갔다. 

어떤 행복은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성취감과 같이 큰 의미도 있었지만, 단지 저녁에 동료들과 삼겸살과 술 한잔을 함께 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의미의 행복도 포함되었다. 즉 좋은 순간과 싫은 순간을 기록함에 있어서 그 의미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한 감정이 들 때의 스냅샷을 모두 기록해 나갔다.


참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 시작할 때는, 사실 매일매일 좋은 순간, 싫은 순간이 얼마나 자주 있을까, 노트에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여러번의 좋고 싫은 순간들이 매일매일 펼쳐진 것을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의 다채로움에 매우 놀랐다. 아니, 오히려 매일 나에게 크고 작은 의미를 주는 순간들이 이리도 많은데, 왜 그동안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지나보냈는 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이제 나의 순간 기록 노트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내가 네이버를 선택했을 때와, 정부출연연구소를 선택했을 때, 내가 기록해왔던 좋고 싫은 순간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높거나 낮은 지를 매핑하는 일만 남았다. 

결과는 아주 명확했다. 

네이버를 선택했을 때 좋은 순간들이 찾아올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싫은 순간들은 두 선택지에 따라 큰 차이는 없었다.


이로서 나의 고민은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네이버를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쩌면 이미 마음속에서 결정한 선택을, 내 안에서 다른 소리를 내는 나의 왼쪽 뇌에 '이제 그만 인정하고 미련을 버리라'고 확인시켜준 과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순간 기록 노트는, 단지 어떤 선택이 필요할 때 뿐 아니라, 내 자신을 알아가는 데 좋은 툴이라는 생각이다. 가끔씩 나도 나를 잘 모르겠을 때, 한 두달간 기록해보면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중에야 확인된 일이지만, 결국 정부출연연구소는 합격하지 못했다. 합격해도 네이버를 선택했을 것이라 아쉽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네이버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내 자신을 몰랐을 때 보다 더 아쉬움이 컸을텐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전 05화 평생 다닐 줄 알았던 첫 직장으로부터의 첫번째 이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