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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서재 Aug 25. 2024

박사 진학과 취업 사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 - 세번째 이야기

이공계를 졸업하는 이들 중에는 바로 취업의 길을 선택하는 분들 외에도,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2년 간의 석사 과정은 박사 과정에 비해 기간이 짧은 만큼 공부에 대한 흥미가 있다면 너무 많은 고민 없이 지원해 볼 수 있다. 가끔 미디어 등을 통해,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좀더 시간을 벌고자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박사과정까지 고려하여 학문의 길을 갈지, 바로 취업의 길을 갈지 확신이 없는 경우, 일단 석사 과정을 통해 좀 더 경험해 보고 결정하고자 지원하는 케이스들이 더 많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박사 진학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석사 4학기가 되더라도, 아직 어느 방향이 옳을 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이다. 석사와는 달리 박사과정은 평균 5년이 걸린다. 주위 사람들은 이미 취업 해서 대리 직급 달고 과장까지 진급하는 동안,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그제서야 사회에 첫 발을 들이는 것이 옳은 길일지 뚜렷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학업을 위한 긴 시간의 투자는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이로 인한 두려움도 클 수 밖에 없다.


물론, 박사학위를 마치고 나면 일반적으로 기업에 입사할 때 그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하여 과장/선임급으로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해당 기업에서 5~7년 필드경험으로 과장/선임이 된 직원과, 갓 입사한 박사학위의 신입 과장/선임은 엄연히 다를 것이다. 물론 분야와 업무에 따라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직군은 고민할 필요 없이 박사학위를 마치고 과장/선임으로 입사해야하는 케이스도 있다. 주로 통계, 제약, 화학 분야가 그러한 경우가 많으며, 최근에는 AI의 붐을 등에 없고 박사학위 소지자의 AI 전공자를 채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오히려 가능한 빨리 취업 후 같은 기간동안 현장 실무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컴퓨터 공학을 예를 들어보자. 사실 자본이 풍부해서 장기 연구개발에도 투자가 가능한 Top Tier 기업이 아니라면, 전체 컴퓨터 관련 분야 직원 중 대부분은 프로그래머이거나 데이터 엔지니어와 같은, 소위 개발자이다. 그렇다보니 연구소같은 특수 목적을 가진 조직/기관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기업 내 사업 조직은 물론 R&D 조직들 조차도, 구성원 대부분은 학부 졸업 혹은 석사 졸업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우, 보통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특정 세부 영역에서의 학문적 깊이가 있는 박사 학위자를 요구하기 보다는, 같은 기간 기업에서 넓은 범위의 현장 실무 경험을 가진 경력자를 더 선호한다. 박사 학위 과정에서 배운 지식 보다는 입사하자 마자 기여할 수 있는 실무 스킬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 안에서도 웹개발, 서버개발, 플랫폼 개발, 앱개발, Data Engineer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현장에서 실무 스킬을 선호한다는 특성은 세부 분야와 무관하게 공통적이다. 심지어는 왠지 박사 학위자는 좀 더 고급스러운 업무를 기대하고, 팀에서 필요한 다양한 수준들의 업무를 편하게 할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채용 책임자들도 적지 않다.


보통 박사학위가 필요한 직군은 우대사항에 석박사 우대라고 명시되어 있다. 반면에 이러한 우대 사항 명시 없이 진행되는 경력 채용의 경우 대부분은 입사 후 바로 실무 투입이 가능한 숙련자를 기대하며 채용한다고 보면 된다.


과거 한 때는, 부장 직급까지는 학위가 중요하지 않지만, 그 이상의 임원 레벨로 가려면 박사학위가 유리하다고 얘기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실력과 성과로 증명하고 승진하는 시대이다. 즉 일반적인 기업 취업을 목표로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박사 학위 취득은 그 과정에서 배운 지식과 스킬이 그 기업에서 본인의 실력을 입증하고 성과를 내는 데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와는 달리, 중장기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기업 연구소나 국가 출연 기관의 경우에는 석박사 학위와 함께 그 과정에서 학습한 깊이있는 학문 직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본인이 이러한 길을 걷고자 한다면 박사학위를 지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교수직을 목표로 한다면 당연히 박사과정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과 선택을 해야할 나이에 있는 대부분은 아직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반 기업과 연구소 등의 삶을 미리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내가 일반 기업 생활을 원하는 지, 각종 연구기관의 연구직을 원하는 지 조차 선택이 어렵기 때문에 박사학위 진학 자체에 대한 결정을 쉽게 할 수 없다. 


이럴 땐 다음과 같이 내 자신에 대해 질문해보자. 


혹시 지금 배우는 여러 지식을 이용해 세상 사람들이 곧 사용하게 될 거 같은 많은 “응용”들을 상상하면서 개발한 결과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해당 전공 분야에서 다른 학자들이 풀고자 하는 공통 난제에 대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데 기여하는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끼는가?.  


만일 전자라면, 기왕이면 석사 이후에 바로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고 박사 과정을 밟을 기간동안 차라리 기업에서 실무적인 일과 기술을 배우는 게, 더 만족감도 높고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 개발에도 좋을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후자라면, 뭔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찜찜함과 보다 깊은 학문을 갈구하는 마음을 박사과정을 통해 후회없이 파고 드는 게, 만족감도 높고 유사한 성격의 직업을 구하는 데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의 경우, 세상에 기여하지 못하는 기술은 진짜 기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내 논문이 SCI( 미국 과학정보연구소가 과학기술분야 학술지 중 엄격한 선정 기준에 의하여 선별한 저명 학술지 리스트. 보통 이공계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SCI 논문 개제 조건이 포함된다)와 같은 검증된 저널에 실리더라도 그 기술이 실제로 상품으로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기여하기 전 까지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꼭 당장 상품에 적용되어야만 세상에 기여하는 기술은 아나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어 왔던 큰 기술들은 오랜 동안 시도에 시도를 반복하면서 학계의 검증을 통해 세상에 출현된 경우가 많다. 단지 내 개인의 성향이 그러한 인고의 시간을 들이기 보다는 바로바로 세상에 기여하는 성격의 기술을 더 선호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석사 과정 1학년 때에 이미, 석사 학위 이후에는 취업의 길을 가기로 마음 먹은 터였다.


이와 같이, 현재 석사 과정에 있는 분들이라면, 사 과정을 선택해야 할 시기를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기 보다는, 석사 과정 동안 자신을 잘 관찰하면서, 본인이 위에서 얘기한 두가지 성향 중 어디에 속하는 지 잘 파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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