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점이 아니라 선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얼마 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단어를 접했다. 보는 순간 ‘내 얘긴가?’ 하는 친밀감이 물씬 밀려왔다. 검색해서 자료를 좀 찾아보니 게으른 완벽주의자 테스트도 있었다. 결정하는 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음. 그렇지.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음. 맞아. 내가 좀 그런 편이지. 열 번 중 여덟 번은 내가 한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 음. 이거 딱 내 얘긴데?
그 일이 있고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참 기깔나게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완벽주의 성향을 조금이라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나? 나는 잘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대충하는 스타일이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있으려나? 이동귀 심리학 교수도 대한민국 사람의 절반이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주장하니 이런 추정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거기에 난 너무 부지런해서 탈이에요. 저는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하는 스타일이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그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솔직히 보지 못한 것 같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에 ‘나는 아니요’라고 외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회사 생활을 시작해 보고서를 보고 또 보며 수정하고 주말에 나와 월요일에 있을 회의를 준비하고 집에서도 일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내게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걸 알았다. 동시에 이 성향이 건강한 형태는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실수를 하고 나면 꽤나 오랫동안 자책에 빠져 있는 걸 경험하면서, 또 낯선 분야의 일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쉽사리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걸 경험하면서. 내가 가진 완벽주의에는 분명 꼼꼼함이나 성실함 같은 장점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자책, 두려움 같은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올해만 해도 그런 경험이 여러 번이다. 1분기에는 전용잔을 증정하는 기획팩을 하나 만들어 대형마트 채널에 판매했는데 패키지 쪽 디테일이 아쉬웠다. 종이팩 코팅을 무광이 아닌 유광으로 진행했더니 재질감이 반짝거렸고 영 고급스럽지 못한 마감 때문에 한동안 자책에 빠졌다. 얼마 전에는 커뮤니케이션 계획을 수립해 컨펌까지 다 받았는데, 막상 일을 추진하려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어쩌지? 별 효과도 없이 돈만 날리는 거 아니야?’ 그런 걱정 속에서 진행한 어느 유튜버와의 광고 콘텐츠의 결과가 신통치 않자 자괴감에 시달렸다. 크리에이터 선정에 실수가 있었구나. 내 판단이 틀렸어. 후보자 서치에 조금 더 공을 들였어야 했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에는 그런 감정적 동요의 여진이 제법 오래 이어졌지만, 요즘에는 그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문득 떠올라 메모장에 기록해 둔 이 문장 덕분인 것 같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점이 아니라 선이라는 걸 깨달을 때 완벽주의의 긴장감은 다소 해소될 수 있다.
내가 했던, 내가 하고 있는, 또 내가 할 어떤 일이 각각의 점이 아니라 어떤 선을 이룬다는 걸 이해할 때, 그저 일 하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마케터, 더 유능한 브랜드 매니저가 되기 위한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때, 실패와 도전 앞에 조금은 담대해질 수 있다. 기획팩의 만듦새가 조금 아쉽다면 이번에 배웠으니 다음에 더 꼼꼼하게 챙기자며 털고 일어나면 되고, 광고의 결과가 미흡하다면 다음 기획에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그간 해보지 않은 시도를 앞두고 있다면 이걸 통해 하나 더 배우고 성장할 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실패와 성취, 도전과 두려움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이다.
제목을 거창하게 게으른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법이라고 달았지만, 여전히 게으른 완벽주의자이고 두려움과 불안감 앞에 자주 머뭇거린다. 그래도 내가 하는 것이 점이 아니라 선을 이뤄나간다는 생각을 떠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렇게 글을 쓸 때도 통찰력 없는 글에 쑥스러우면서도 꾸준히 써야 글 솜씨가 나아지지 않겠어, 그래야 우상향하는 선을 그릴 수 있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