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집을 알아보려 다녔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집을 살 형편은 아니어서 둘러보는 건 전셋집이었고 이왕 옮기는 거 조그맣고 오래됐더라도 아파트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네이버 부동산, 다방, 호갱노노 같은 어플을 하루에도 수차례 들락날락하며 괜찮은 매물이 있는지 찾아봤고 개중에 조건이 맞아 보이는 물건은 중개사와 약속을 잡고 둘러보았다. 그렇게 열 군데 가까이 집을 비교한 다음 가장 마음에 드는 곳으로 며칠 전 계약을 했다.
집에 별 관심 없이 살다가 ‘집’이란 것에 꽂히고 나니 이제는 집만 보인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괜찮은 집이 있으면 얼른 어플을 열어 여기는 매매가가 얼마이고 전세 보증금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한다. 보통 (수십) 억 소리 나는 금액이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자주 한다. 앞으로 매년 얼마를 모으면 4년 후에는 어느 정도 모이겠지. 그 돈으로 경기도에 있는 조그만 아파트라도 살 수 있으려나? 회사랑 거리가 먼 편인데 출퇴근하는 게 많이 힘들려나? 요즘은 온통 집 생각뿐이고 삶의 목적 또한 ‘내 집 마련’이 되어 버린 듯하다.
집 계약을 하고 나니 이제 가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집’ 어플에는 왜 이렇게 예쁜 공간이 많은지, 매일 같이 접속해 내 공간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공간을 서치한다. 집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는 어떻게 설정할지, 거실에 둘 소파와 TV장은 어떤 스타일로 구매할지, 안방은 어떤 가구로 꾸밀지, 옷방의 옷장은 어떤 모양으로 고르고 서재는 어떤 레이아웃으로 배치할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그런 상상을 구체화하려고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가구점들을 둘러보았다. 과연 백화점에 디스플레이된 가구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고 탐나는 물건들이기 마련이라 안 그래도 넘쳐나던 물욕은 한층 더 솟구치게 되어 버렸다. 직접 만지고 앉아보고 누워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돈을 열심히 벌고 모아야겠다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고, 과연 견물생심이란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구나, 하는 게 두 번째였다. 매일 가구를 떠올리다 보니 이제는 카페에 가도 카페에서 판매하는 물건이나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아닌 카페의 가구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파는 옅은 그레이톤의 소파를 썼구나, 지금 앉아 있는 나무 의자는 이런 점이 불편하네, 하면서.
물욕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한 요즘, 내 마음을 다독여 보려고 집을 사고 가구를 들이는 건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즐거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스스로 말을 건네 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소유는 꽤나 오랜 만족감을 남긴다고.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의 과정 같긴 하지만, 지난 경험에 비춰보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는 미혼 남성의 다수는 자취집을 결혼 이전의 임시 숙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좀처럼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도 이전 세입자가 쓰던 냉장고, 세탁기를 물려받아 쓰기도 하고 고향 집에서 쓰던 책상이나 침대를 가져와 쓰기도 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목돈을 들여 가구다운 가구를 산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였다.
지방에서 진행되는 교육의 지원 스태프로 출장을 갔던 날이었다. 그때 교육이 진행된 곳은 제법 규모가 큰 컨벤션 센터였는데 교육장 옆 홀에서는 웨딩박람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교육이 시작되고 짬이 좀 생기길래 그 틈을 타 행사장을 슬쩍 둘러보았고 거기서 1인용 리클라이너를 만나게 되었다. 판촉행사 중이던 분의 권유에 따라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고 뒤로 젖혔더니 내 집에 누운 듯 평온했다. 외부의 스위치가 모두 꺼지고 고요한 방에 홀로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휴양지에 온 기분이랄까. 삶을 관조하고 즐기는 기분이랄까. 그날 그곳에서 바로 소파를 계약하진 않았지만, 며칠 뒤 아현동 가구거리에 가서 제법 쓸만한 놈을 골라 결제했다.
문제는 그 소파의 부피가 제법 커서 안 그래도 좁은 집을 쓰리룸으로 잘게 쪼개 놓은 이상한 구조로 된 당시의 전셋집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방에 있던 장롱을 버리고 그 안에 있던 옷들을 다른 방으로 이주를 시킨 후에야 겨우 소파를 둘 수 있었다. 이제 그 방은 소파의, 소파에 의한, 소파를 위한 소파 방이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난 그곳에서의 시간을 무척 즐겼다. 반쯤 누워 책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멍을 때리며 사색하는 게 참 좋았다. 리클라이너를 산 지 십 년쯤 되었건만 여전히 만족감이 있다.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다 보면 낯선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개운하게 깨기도 한다.
이 가구가 내게 오랫동안 만족감을 준 이유는 소파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과 걸맞은 물건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 중에는 사색하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그걸 글로 옮기는 모습이 있고 소파는 그런 삶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물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만족감을 준 것 같다. 누군가는 소유의 행복은 잠깐이고 또 다른 물건을 사야 그 갈증이 해소된다고 하지만, 가끔은 소유의 기쁨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소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하지만 그런 소유를 ‘존재와 어울리는 소유’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새로 입주할 집과 그곳에 들일 가구를 정하는 기준이 생긴다.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고 그것과 어울리는 물건에는 힘을 좀 줘도 괜찮겠구나, 관여도가 낮은 것들은 구매를 하지 않거나 사더라도 저렴하고 가성비 있는 거로 고르면 되겠고.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에서 울트라 같은 말로 수식되는 빼어난 화질의 텔레비전이 필요하지 않고, 형형색색의 세탁기나 안이 보이는 냉장고 역시 필수품이 아니다. 대신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작업을 할 책상과 의자는 괜찮은 물건이면 좋겠다. 아무래도 그곳에 앉아 퇴근 이후의 시간과 주말의 여유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 입주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을 하며 무엇이 내게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높은지 골라내다 보면 제법 만족스럽고 나의 생활과도 잘 어울리는 공간이 생길 것 같다.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