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이 있는 한 회사에 몇 년 전에 보낸 오지랖 메일을 익명화하여 옮긴 글입니다. 목표 설정과 성과 측정에 KPI를 이용하던 회사였는데, 요즘 많이 채택되는 OKR을 포함하여 어떤 방식에서도 핵심 메시지는 동일하게 적용될 거 같습니다.
제가 조직 운영 쪽은 경험도 생각도 미천하니 재미로 봐주세요. ^^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회사의 한 단면을 귀사에 맞춰 간략히 제언해봅니다.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거나,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거나,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넘지만, 고려할 만한 점이 혹시 있다면 귀사에서 응용/발전시켜보시면 어떨까 해서요. ^^
다음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배경
귀사의 직원 양성 노력
귀사 맞춤 행복 키움 3단계
1단계 - 현 상황에서 새로 포장하기
2단계 - 기존 일을 조금 달리 해보기
3단계 - 조직에 변화 주기
마치며
우선 외부에서 비슷한 흐름을 실천하는 곳이 있습니다.
[2019. 1. 14] 최태원, SK그룹 직원 '행복'에서 '근본적 변화' 힘 찾다
[2019. 5. 1] "직원행복 우선"… 최태원의 '업그레이드'
[2019. 6. 26] 최태원 파격경영 2탄…“행복 기여도로 임직원 평가”
[2019. 7. 29] SK그룹 직원이 생각하는 행복 - 매일경제
[2019. 8. 23] 직원 행복과 사회적 가치, 그리고 서든데스... 최태원 딥체인지 경영
물론 언론에 비친 것과 현실에 괴리는 있겠으나, 좋은 시도고, 사회에 좋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행복 = 편안한 직장생활’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위 4번 기사에도 나와 있듯 직원이 회사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요소 중에는 ‘성장과 성취가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이 글 제목도 ‘직원 성장과 행복 KPI’입니다.
경영자의 최우선 과제는 회사의 성장일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 위치에 계신 분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실무자 개개인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쉽습니다. 회사만 강조하는 경영진 밑에서는 직원들은 자칫 자신을 회사를 위한 단순 일꾼 혹은 소모품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귀사에는 여러 가지 보완 장치가 갖춰져 있습니다. 연례 직무 교육, 진급자 교육, 신입 교육, OJT, 자기계발 포인트 등 많죠. KPI의 전략 목표와 개인 목표도 어느 정도 직원 성장을 고려해 잡기도 합니다. 이처럼 귀사는 직원 성장에 신경 쓰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메일을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
아쉬운 점은 ‘회사가 직원 개인의 성장과 행복에 신경 쓴다’라는 메시지가 실무단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만 잘 전달돼도, 회사가 실질적으로 해주는 일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직원 애사심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회사 안에서 내 미래를 그릴 수 있고 그 길로 가는 데 회사가 뒷받침해준다고 생각되면 직원들이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물 것입니다.
총 3단계의 간단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3단계까지 갈 필요 없이 1단계만 해도 효과가 있을 겁니다.
1. ‘임직원 역량 개발 및 회사 생활 만족도 개선’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취합합니다.
2. 문서 하나에 다 담고, 각 활동에 한두 줄 정도 적당한 설명을 달아줍니다.
3. <우리 회사가 제공하는 직원 ‘행복’과 ‘성장’ 활동/서비스> 정도의 적당한 이름으로 전사 직원에게 공유합니다.
4. 차차 ‘행복과 성장’ 정도로 줄여 부르며, 이 키워드가 통용되게 만듭니다.
‘새로 포장하기’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뭔가 특별히 더 해주는 건 아닙니다. 그저 회사가 여러분의 행복과 성장을 중요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개개 직원에게 인식시킬 수 있다면 성공입니다.
부수적으로, 각자의 이름으로 흩어져 진행되는 개별 활동들에 통일된 큰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참여자들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하나라도 더 얻을 기회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다른 활동까지는 생각을 못 해봤고, KPI 항목 선정 방식을 살짝 달리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KPI는 하향식top-down으로 정하는 게 기본이라 알고 있습니다. 가장 위에서 가장 아래까지, 회사 전체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달려가기 위해서죠.
귀사의 KPI 항목 중에는 '전략 목표'와 '개인 목표'가 있습니다. 이중 개인 목표가 ‘행복과 성장’에 접목하기 아주 좋은 항목입니다. 그리고 회사가 우선인 전략 목표와 달리 최대한 상향식bottom-up으로 가보려 시도하는 것이죠.
이제부터 제가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전략 vs. 개인’ 목표 운영 방식을 말씀 드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이름 붙인 ‘행복 KPI’의 핵심입니다.
행복 KPI
개인 목표는 회사의 그 해 목표보다는 각 직원의 역량 강화(성장과 행복)라는 시각을 크게 반영해 정합니다. 그래도 회사의 방향과 완전히 따로 놀 수는 없으니 비중을 조절해야 합니다. 예컨대 아래 그림처럼 말이죠.
[표] 직책/직급과 ‘개인 목표’ 운영 비중 (예시)
보다시피 사원이 개인 역량 강화 비중이 가장 높고,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듭니다. 아래부터 대략 의미를 설명해보겠습니다.
- 사원/대리(주니어) - 빠르게 실무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개인별 장점과 개선할 점 등을 파악하여 장점은 더 살리고, 개선할 점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야 윗 직급으로 올라갔을 때 회사에 필요한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 과장 - 사원/대리 때 실무 역량을 키웠다면, 과장은 그 노하우를 주변 동료에게 전수해야 하고, 추후 팀장급으로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원/대리 때와는 다른 역량을 키워야 하는 단계라 여전히 개인 역량 강화 비중이 제법 높습니다.
- 팀장/차장 - 이제 회사와 거의 한 몸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팀원들을 한 덩어리로 뭉치고, 더 넓은 시야로 전략을 짜야합니다. 사람과 소통하는 법, 팀원 역량을 끌어내는 법, 경쟁사에 이기는 전략적 사고 등 많은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부서장/부장 & 임원 - 이쯤 되면 회사와 일심동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특정 부서장/임원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 부족하다면, 그 역량을 키우는 건 회사의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개인’ 역량 강화라고 해서 회사에 필요 없는 일을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한 해 한 해의 단기 목표가 아닌, 회사에 항시 필요한 체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지금 행하는 KPI 운영 방식에서 표현만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어떻게 표현하느냐도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요 ^^).
차이는 성장과 행복 목표를 정하는 접근 방식에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A. 각 개인이 다음 관점에서 자신을 정리합니다.
- 다음 직급, 혹은 2~3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
- 그 자리에 서기까지
-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 더 키워야 할 역량은 무엇인가?
-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일들은 어떤 게 있나? (구체적으로)
- 그중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나?
→ 추려진 일들에 우선순위 부여
B. 동료, 리더와 논의하여 올해 KPI에 넣을 목표 확정
이로써 개인 목표를 정하는 데 ‘나를 성장시킨다’라는 확실한 방향성이 생기고,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계기도 만들어지고, 회사에도 역시 도움이 되는 활동으로 이어질 거라 봅니다.
또한, 몇 년 잘 운영하여 어느 직급에서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데이터가 쌓이면, 그다음 사람들이 목표를 정하는 데 훌륭한 레퍼런스가 되겠지요. 그러면 점점 매끄럽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겁니다.
개인 목표가 보통 한두 가지인데 비중은 어떻게 조절하느냐? 칼로 자르듯 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보완할 방법이 있습니다. 복합적으로 활용하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목표를 구체적이고 작게 나눈다. → 개수가 늘어남
부서, 팀 차원에서 회사에 꼭 필요한 전략 목표를 추려 몇몇 사람에게 할당 후
남은 사람은 ‘성장과 행복’에 쓸 수 있게 배려한다.
전략 목표 수행을 마일리지처럼 쌓아서
많이 쌓인 사람은 원할 시 ‘성장과 행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대략 이 정도입니다. 별 것 아니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깐요.. ^^
다음으로는 회사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려면 구체적인 방식은 다방면에서 고심한 후 정해야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모습 하나를 그려보겠습니다.
그림에서 보듯 부서명을 바꾸고 역할을 다시 정의합니다. 실무자로 구성된 자문단도 두고요.
부서 이름까지 이렇게 바꾼다는 건 회사 차원에서 직원의 성장과 행복을 핵심 관심사로 두겠다는 천명인 셈이죠.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편집 스쿨, 진급자 교육 등의 활동 외에도, 실제 인사팀에서 수행하는 많은 활동이 ‘직원 행복’과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가령 각종 행사, 직원 사기 관리, 필요한 인재 채용, 직급별 면담, 공평한 평가 시스템 등등..
또 다른 기대 효과로, 인사팀이 직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인사’라는 이름은 회사 입장에서 직원을 감시/평가하고 관리한다는 느낌으로 많이 고착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사팀에서 호출하면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싶고, 혹시라도 밉보일까봐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됩니다. 이름도 바꾸고 역할 정의도 바꾸면 벽이 조금은 허물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자문단을 두는 이유는 성장 활동이 탁상공론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각 직군에서 실력 있고 현장 경험이 많은 실무자들로 구성하여 실효성 있는 교육 활동이 이뤄지도록 합니다. 자문 역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전담시킬 수도 있고, 돌아가면서 할 수도 있고, 사우회에 위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에 쫓기는 실무자들에게 자문이라는 ‘기존에 없던’ 일을 새로 만들어 할당하는 건 부담되니, 행복 KPI의 전략 목표로 할당해주면 부담이 덜할 겁니다.
★ '마치며' 부분은 현시점에서 다시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단계별로 진행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3단계(부서명 변경 + 자문단 구성)만 실천한다면 훨씬 나은 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직원 행복팀'과 시니어 실무자 중심의 '직원 성장 자문단'이 구성되면, 어떤 조직에서든 자신들에게 최선인 방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인사, 즉 사람 관리는 수단입니다. 목적, 즉 사람을 '왜' 관리해야 하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직원의 성장과 행복'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부여해보는 걸로 조직 변화의 첫 발을 내디뎌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