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테러 구제 작전 (3)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불신자들의 땅에 발을 들이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다.


“딱 봐도 이상하잖아. 물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거나 하는 내용이 성경에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노아의 방주 얘기하다가 갑자기 ‘불신자들의 땅’ 운운하는 게. 애초에 대홍수가 난 시점에 땅이 어디 있어?”


우리는 효신의 말에 따라 성경을 펴고 창세기의 구절을 뒤져 보았다. 정말 창세기 6장에는 23절 따위는 없었다. 불신자 운운하는 구절 따위 역시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굴려 그 여자의 행방을 좇았다.


독서를 마친 그 여자는 맨 뒷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대놓고 뒤를 돌아보며 힐끔거리면 의심을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다현은 조용히 옷에 부착되어 있던 소형 기록 장치를 끌렀다. 그런 뒤 뒤편으로 렌즈를 돌려 여자의 모습이 장치에 담기게 했다.


그때 사제와 신자들이 동시에 읊조렸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그러더니 모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와 다현은 다소 당황한 채 주위를 올려다보았다.


다현이 속삭였다. “효신아. 지금은 뭐 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돼?”


중앙 제단을 힐끗 본 효신이 답했다. “그냥 따라 나가서 남들 하는 대로 성체 받으면 돼. 그런데…….”


티나지 않게 뒤편을 돌아본 효신이 덧붙였다. “우린 조금만 기다렸다가 나가자. 저 여자 나가는 거 보고 뒤따라가고 싶어.”


효신의 말대로 우린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좌우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앉은 우리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사람들의 행렬이 거의 모두 앞으로 빠졌을 때쯤이었다.


뒤편에서 걸어온 누군가 우리 쪽으로 몸을 숙이며 다정히 물었다.


“바르바라 자매님. 영성체 안 가세요?”


효신을 콕 집어 말을 건넨 그 사람은, 아까 독서를 진행했던 바로 그 여자였다.


나와 다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효신은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 보이며 답했다.


“가야죠.”


-


효신은 그녀가 앞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중앙 통로를 걸었다. 나와 다현은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나는 앞에 있는 신자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성체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서 잘 보이지 않게 가린 채 입 안에 넣으면 되는 듯했다.


예의 그 여자가 먼저 사제의 앞으로 나아가 성체를 받아들었다. 그 뒤를 따라 올라간 효신이 마찬가지로 두 손으로 성체를 받아들었다.


나는 효신의 행동을 잘 봐 두었다가 그대로 따라했다. 두 손으로 성체를 받아들었고, 옆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그러나 내가 작게 입을 벌리던 그 순간, 서늘한 목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자매님. 왜 가지고만 계세요?”


효신이었다. 효신이 성큼 걸어 그 여자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여자가 자애로운 낯에 당황한 기색을 드리우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왜 가지고만 계시나고요, 성체. 성체를 이 자리에서 모시지 않고 따로 빼돌리는 건 금지되어 있어요. 아시죠?”


효신이 여자의 팔을 잡아챘다. 거침없는 행동에 주변 사람들 서넛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효신에게 붙들린 채 위로 올라온 여자의 손에는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고, 모두가 그 흰 물체를 알아보았다.


여자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제 자리로 돌아가서 모시려고 했어요, 자매님. 대체 왜 이러세요? 신성한 미사에서 이렇게 난동을 부려도 되나요?”


효신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입에 넣어 보세요.”


어느덧 파이프 오르간 반주도, 성체를 받아드는 신자들의 인삿말도 모두 뚝 멎어 있었다. 드넓은 본당 안으로 기이한 적막이 흘렀다.


“입에 넣어 보세요, 얼른.”


여자의 얼굴빛이 변했다. 노기를 숨기지 않으며 여자가 버럭 일갈했다.


“입에 넣으라니 어찌 그렇게 불경한 말을! 성체는 신성하게 모시는 거예요!”


효신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뇨, 제 말은 불경하지 않아요. 당연히 입에 못 넣겠죠, 그건 성체가 아니니까.”


눈을 크게 치켜뜬 여자가 말을 잃은 채 효신을 올려다보았다.


“성체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사제가 입을 열자 찬물을 끼얹은 듯 장내는 고요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한순간에 효신에게로 쏟아졌다.


효신은 움츠러드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여기 계신 이 자매님은 사실 우리 자매님이 아니세요.”


살짝 낮은 톤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다. 효신이 여자를 가리키며 내뱉었다.


“신자를 지적하는 꼴이 될까 봐 굳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뿐, 사실 이분이 독서를 하실 때 신부님도 이상함을 느끼셨겠죠. 이분은 천주교 신자가 아닙니다.

창세기 6장에는 분명 22절까지밖에 없는데 듣도 보도 못한 23절을 가지고 오지 않나, ‘바르바토스’라는 미심쩍은 세례명을 불렀는데도 이상하게 느끼기는커녕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질 않나.”


효신이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 연극적인 동작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바르바토스라는 세례명, 그딴 건 없어요. 바르바토스는 성서에 나오지도 않는 악마의 이름이니까.”


여자를 힐긋 내려다본 효신이 덧붙였다. “정말 결백하신 천주교 신자라면, 들고 계신 성체를 모셔 보세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요.”


효신이 다그쳤으나 여자는 주먹을 꽉 쥐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사제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입에 넣질 못하시네요. 보셨죠? 분명 여기다 장난질을 쳐 놓은 거예요. 먹으면 잠시 후 졸음이 몰려온다거나, 환각을 보게 한다거나 뭐 그런 성분이겠죠.”


그건 언뜻 비약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었으나,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딱딱하게 굳어 불규칙한 호흡을 내뱉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효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효신이 그렇게 일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성체를 입 안에 넣지 않는 여자를 본 신자들은 하나둘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분위기를 등에 업은 효신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싸늘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효신이 내뱉었다.


“그래서, 성체에 무슨 짓을 했어요? 당신의 바르바토스가 시키던가요?”


하얗게 질린 여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갈급함에 찬 그녀의 시선이 찰나간 향하는 곳을 효신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복사가 들고 있는, 아니 들고 있었던 향로가 있었다. 소리 없이 쓰러져 있는 어린 복사의 곁에 은빛 향로가 나뒹굴고 있었다.


효신이 냅다 고개를 돌려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저 향로야! 확보해야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당혹에 차 이리저리 흔들리던 동공을 삽시간에 희번득이며, 그녀가 우렁차게 내질렀다.


“아아아아! 이미 늦었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괴성에 효신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여자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나와 다현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나는 향로 쪽으로 몸을 날려 손을 뻗었고, 다현은 효신에게 달려드는 여자를 막아세웠다.


나는 재빨리 제단 위를 덮은 천을 끌어당겨 향로를 빈틈없이 감쌌다. 이걸 당장 바깥으로 들고 나가야 했다.


다현과 효신에게 양쪽 팔을 붙들린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늦었어! 이미 늦었다고! 어디 바깥으로 내던져 봐라, 할 수 있다면 말이야!”


핏줄이 도드라진 두 눈이 나를 담아내며 비웃었다. 아까의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악에 받친 모습이었다.


“이미 늦었어, 하하하하! 이미 너희가 폐로 다 들이마셨거든! 사람들은 들이마시는 줄도 모르게 되니까 무색무취의 독이 가장 무섭다고들 하지. 멍청하게도. 가장 무서운 건 들이마시는 줄도 모르는 독이 아니라, 자꾸만 들이마시고 싶게 만드는 독인데 말이야.”


붙잡힌 팔을 빼내려 발악하며 여자가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아, 좋은 향이 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래, 이 안에 밝혀진 초만 해도 몇 개인지 세어 볼 수나 있겠느냐? 우리가 준비한 장미 향은 어떻게 마음에 들더냐?”


장미 향. 그 말을 듣자 공기는 차가운 물을 뿌린 듯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게 느껴졌던 그 장미 향이 실은-.


본당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중앙 제단 위, 입구, 신자들이 기도를 드리며 함께 밝히곤 하는 뒤편의 수많은 작은 초들까지.


“세민아! 그거 들고 뒤쪽 출입구로 나가!”


다현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에 벼락을 맞은 듯 퍼뜩 정신이 들었다. 천으로 감싼, 여전히 연기가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향로를 끌어안은 채 나는 뒤편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다현이 미리 열어 놓았다는 후면 출입구에 다다른 나는 있는 힘껏 문을 밀어젖혔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덜걱, 덜걱.


온 힘을 다해 문을 밀어 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뿐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압도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를 가로막은 거대한 문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미 늦었다고!”


하하하, 하하하하…….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날아와 귓가를 파고들었다.


-


“언니. 창문이 안 깨져.”


효신이 방독 마스크 너머로 거친 숨을 고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다현과 나는 참담한 표정으로 효신을 돌아보았다. 창문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효신이 가까이 있는 창문을 퉁 두드리며 말했다. “보니까 전부 이중, 삼중 창이야. 게다가 그냥 이중창인 것도 아니고 이중접합유리 같아. 이 작아빠진 망치로는 어림도 없어.”


나는 탈출용 망치를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도 두드려서 이제는 손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아까 그 여자는?”


“일단 기절시켰어. 뒷목 내리쳐서.”


험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며 효신이 방독 마스크를 고쳐 썼다.


“119에는? 신고했지?” 다현이 효신을 향해 물었다.


“진작에 했지. 그런데 관할 소방서랑 멀기도 하고, 여기가 굽이굽이 언덕길 위에 있어서 차량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울 거야. 그때도 신자 몇 명이 신고는 했었는데 진입하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렸었대.”


다현의 표정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 이상해. 왜 작전 지침서에는 그런 경고가 없었지?”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엄숙하기 짝이 없던 본당 내부는 흡사 지옥도처럼 변해 있었다.

체구가 작은 신자들부터 하나둘 기침을 하며 의식을 잃었고, 남은 사람들은 미사보와 옷 등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문 근처로 몰려들었다.


방독 마스크를 나누어 주며 사람들을 애써 진정시켰지만 한 번 일어난 소요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신자들은 자신의 마스크를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붙잡은 채 연신 문을 두드렸다. 몇몇은 문을 발로 차고 몸으로 거칠게 밀어 보기도 했지만 전부 소용없는 짓이었다.


모든 통로는 잠겨 있었다. 다현이 미리 확보해 둔 문과 창문들을 포함해서 말 그대로 모든 통로가.

우리가 유일하게 열 수 있었던 창문은 환기 용도로 천장 가까이에 난 아주 작은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사람은커녕 고양이 한 마리나 드나들까 말까 한 크기의 창.


그 창 하나로는 대피도 불가능했고, 완전히 환기를 시키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방독 마스크도 만능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언제 우수수 쓰러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가려 아우성치는 신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다현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단 쓸만한 걸 되는 대로 찾아보자. 문 잠금장치를 부수든, 창문을 깨든 뭐라도 해 봐야지. 여의치 않으면 정말 촛대라도 휘둘러서......”


그때 뒤편에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아실! 유아실에 아이가 있는데!”


우리는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물 범벅이 된 한 여자가 울면서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 애가, 우리 애가 유아실에 있어요!”


인파의 바깥쪽에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재빨리 답했다. “자매님, 기다리세요! 제가 꺼내올 테니까!”


남자는 중앙 통로로 빠져나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효신과 다현이 덩달아 남자를 따라 유아실을 향해 달렸다. 나는 그 뒤를 이어 빠른 걸음을 옮기며 유아실 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여자아이가 훌쩍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같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한 줄기 생각이 별안간 머리를 스쳤다.


잠깐만, 유아실 안에 향초가 있을 리 없잖아.

애들이 노는 곳인데 그런 걸 갖다 뒀을 리 없다고.


어린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안에 촛불을 밝혀 둘 리가 없었다. 그러니, 유아실은 가스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유아실이 안전지대였다. 문을 열어선 안 됐다. 구하겠답시고 문을 여는 게 오히려 아이를 유독 가스에 노출시키는 꼴이었다.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젊은 남자가 유아실의 문을 향해 달려들기 일보직전이었다.


저 아래서부터 끌어모은 목소리로 내가 있는 힘껏 외쳤다.


“효신아! 막아! 문 열면 안 돼!”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효신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남자와 문 사이로 간신히 끼어들기에 성공한 효신이 남자의 팔목을 움켜쥐며 저지했다.


그러나 젊은 남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하는 겁니까! 나와요!”


완력의 차이 때문에 효신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효신은 남자를 놓아 주지 않았다.


“비키라니까!” 마음이 급한지 남자가 팔을 들어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때 효신이 자신이 붙잡고 있는 남자의 팔목에 시선을 주었다.


몇 초간 남자의 팔목을 응시하던 효신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


남자를 온몸으로 틀어막은 효신이, 나와 다현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언니, 오빠, 이 XX 잡아! 이 XX ‘만물의 눈’이야!”


그러자 그 남자가 돌연 강한 힘으로 효신을 밀쳐냈다. 효신의 몸이 퉁 소리를 내며 유아실 문에 부딪혔다.


기다렸다는 듯 덤벼든 남자가 팔로 효신의 목을 강하게 짓눌렀다. 효신이 남자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던 그 순간이었다.


쾅.


흡, 하는 단말마와 함께 순식간에 남자가 쓰러졌다. 쓰러지며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모양인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남자의 뒤편에는 다현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전기충격기를 든 채였다.


풀려난 효신이 콜록대며 기침을 했다. “아, 미친놈 아니야 이거. 죽는 줄 알았네.”


“네가 잡으라니까 일단 잡긴 했는데. 정말 만물의 눈 맞아?”


다현의 물음에 효신이 남자의 손목, 정확히는 거기 걸린 묵주를 가리켰다.


“저 묵주 봐봐.”


남자의 손목 위로 끊어지기 일보직전인 묵주가 보였다. 진홍색 구슬이 여섯 개씩 묶여서 달려 있고 끝에는 십자가가 달려 있는 팔찌 모양이었다.


나는 묵주를 유심히 살폈다.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묵주와 다른가? 십자가가 뒤집혀 있나?


효신의 목소리가 답을 짚었다.


“이상하지 않아? 묵주는 보통 구슬 열 개씩 묶어서 한 덩어리가 된단 말이야. 근데 저건 구슬이 여섯 개야. 여섯 개 묶음이 여섯 번 반복된다고! 이딴 숫자로 된 묵주가 어디 있어 대체? 천주교에서 6이 좋은 소리 들을 숫자가 절대 아닌데. 악마의 숫자도 666이라고 하는 마당에.”


6. 666. 과연 그의 손목에 달린 묵주는 구슬이 여섯 개뿐이었다.


효신의 말을 듣고 남자의 묵주를 살피던 다현이 문득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 구하려던 게 아니었겠구나.”


“응?”


다현이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구하려던 게 아니라, 유아실 안에 가스를 들여보내려고 했던 거야.”


남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는 와중에도 그는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웃음을 날렸다.


효신은 웃음일지 신음일지 모를 소리를 흘리며 누워 있는 남자의 뒤로 천천히 다가갔다. 뭘 하려나 하고 봤더니, 효신은 남자의 상반신을 조심스레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다시 남자의 머리를 바닥에 거칠게 때려박았다.


쾅.


아까 들었던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났다. 앓는 소리를 뱉던 남자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효신이 그의 마스크를 자비 없는 손길로 벗겨냈다. “이딴 새끼한테 마스크 줘서 뭐 해, 아깝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효신이와는 절대 척을 지지 말아야겠다고.


그런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효신이 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빠!”


나는 놀라 흠칫했다. 그러나 효신이 보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었다.


“뒤에!”


그 짧은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편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뒤에서 내려치는 무언가를 피했다.


깡-. 단단한 돌로 된 바닥에 금빛으로 빛나는 촛대가 요란하게 굴렀다.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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