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뒤를 돌아보자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아까 효신에게 맞고 기절해 있던 그 여자였다. 등 뒤로 섬찟한 무언가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힘을 주어 여자를 밀쳐냈다.
뒤로 힘없이 밀려난 여자가 산발이 된 머리칼을 쓸어넘기는가 싶더니,
옆에 세워져 있던, 장미꽃이 다발로 꽂혀 있는 길다란 화분 안으로 손을 넣었다.
여자가 큰 궤적을 그리며 화분 바깥으로 손을 잡아빼자 장미꽃 줄기 사이로 번뜩이는 쇠붙이가 보였다.
식칼이라고 해야 할지, 단도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확실한 건 여자의 손에 칼날이 쥐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쳤다. 어디까지 준비해 둔 거야, 대체?
그러나 나에게 달려들 줄 알았던 여자는 갑작스레 방향을 바꾸어 유아실 쪽으로 돌진했다.
다현이 몸을 날려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자가 칼을 쥔 손을 휘둘렀고, 다현은 간신히 여자의 팔을 잡아챘다.
“방해하지 마라. 이 땅을 영광되게 하려면 저분의 희생이 필요하단 말이다.”
여자가 벌게진 눈으로 다현에게 들이댄 칼날에 힘을 주었다. 다현이 떨어뜨린 전기충격기를 주운 효신이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가 고개를 돌리며 악을 썼다.
“다가오지 마! 가까이 오면 바로 목 그어 버릴 테니까.”
여자가 힘을 주었고, 뒤로 밀려난 다현이 등을 벽장에 부딪혔다.
유아실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먹이는 소리가 짙어졌다.
“거기 너! 유아실 문 열어.”
여자가 내 쪽을 보며 턱짓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치열한 고민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지금 달려들어서 다현의 손을 잡을까? 다현이 다른 시간대로 도망칠 수 있게끔.
아니,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정말로 다현의 목을 찔러 버릴 기세였다. 다현의 트리거가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발동될지 나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다현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얼른 문 열라니까!”
여자가 다현을 다시 한번 짓눌렀다.
방법이 없을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도 제압할 방법이-.
그 순간 저만치 뒤에 놓인 화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화분을 보자 복잡했던 머리는 일순간 정리되었다.
여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체하며 내가 효신에게 눈짓했다.
나는 천천히 유아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여자의 시선이 내게 고정된 사이, 효신이 소리 없이 여자의 사각지대에 놓인 화분으로 손을 뻗었다.
내가 유아실 문 손잡이에 손을 얹었고,
거의 동시에 효신이 화분을 여자의 머리에 집어던졌다.
카앙-.
둔탁한 소리가 한 차례 났고,
붉은 장미 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휘날리는 꽃잎 사이로, 여자의 머리에 맞고 나가떨어진 화분이 산산조각나는 광경이 보였다.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날이 선 파편과 장미 꽃잎이 한데 섞여 바닥에 내려앉았다.
다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상황을 살피던 다현은 여자의 몸이 균형을 잃자 부서진 화분 조각 중 큰 것을 쥐어들었다.
둘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여자 위로 올라탄 다현이 그녀의 멱살을 잡은 채 목에 날카로운 조각을 들이밀었다. 여자가 켈록, 하며 숨이 막힌 소리를 냈다.
다현이 힘주어 말했다. “‘저분의 희생’이라고 했지. 저분이 누구야? 유아실 안에 누가 있는 거야?”
“어리석은 것.”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여자는 드문드문 말을 뱉었다.
“지금이라도 유아실 문을 열어……. 너희가 속죄할 길은 그것뿐이다. 모든 과업은 순수한 피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단 말이다.”
효신이 언제 챙겼는지 전기충격기를 들고 와서는 옆에 섰다. “언니, 더 들을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확 그어 버리고 우리는 얼른 나가자. 한시가 급해.”
다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캐 보자. 만물의 눈 놈들을 이렇게 코앞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아.”
사람을 코앞에 두고 태평히 정보원 취급을 하는 그 태도에 분노한 모양인지, 여자가 다현의 손길을 뿌리치려 몸부림을 치며 내뱉었다.
“어리석은 것, 어리석은 것! 우리가 이곳에만 있는 줄 아느냐? 여기서 우리를 모조리 죽인다 한들 내 뒤를 이어 나의 형제들이, 또 나의 자매들이 성전을 이룰 것이다.”
효신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일단 죽여 보자. 진짜인지 보게.”
여자의 눈에 핏발이 도드라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발악하던 여자가 삽시간에 차분해졌다. 그 변화에 여자를 짓누르고 있던 다현도, 코웃음을 치던 효신도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우리를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여자는 쉰 목소리로 짓씹듯이 한 글자 한 글자를 힘주어 내뱉었다.
“건방진 아이야, 너희가 뱀의 머리를 밟은 모습으로 성모상을 백날 만든다 하여 정녕 성모가 뱀의 머리를 밟게 되리라 생각하느냐? 아니다. 뱀은 밟히는 쪽이 아니라 기어올라 목을 조르는 쪽이다. 기어코 뱀이 세상을 집어삼킬 것이다. 석 씨는 초파일이 되어도 세상에 오지 못하고 인왕산 끝자락에 코를 박은 채 엎어질 것이다.”
그 목소리는 기이한 확신에 차 있었다. 여자를 당장 죽여 버리자고 말하던 효신도 할 말을 잃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언뜻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를 지으며, 여자가 말했다.
“가장 먼저 하늘이 불타고, 바다가 불타고, 산이 불타고, 마지막에는 죄 많은 인간들이 불타 없어질 것이다. 저 잘나신 성인들이 모두 산산조각나서 너희의 머리 위로 부서져 내릴 것이다.”
그 말을 하며 여자는 우리의 뒤편에 있는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여자가 가리킨 곳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아니,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십자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 위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중앙 제단 위에 높이 자리한데다 그 아래쪽의 십자가가 모든 시선을 가져가는 바람에, 고개를 치켜들지 않으면 확인하기 쉽지 않은 위치였다. 오색의 화려한 창문 위로 그려진 이름 모를 성인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 모든 혼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가 조롱을 이었다. “저들이 너희의 고달픔을 알더냐? 저들이 환난으로부터 너희를 구제해 주더냐? 보아라. 저를 모신다는 신도들이 이렇게 징벌을 받는 와중에도 그 잘난 성인들께선 아무 반응 없으시지.”
비릿한 투로 떠드는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저 잘나신 성인들이 모두 산산조각나서 너희의 머리 위로 부서져 내릴 것이다.
저 잘나신 성인들이 모두 산산조각나서 너희의 머리 위로 부서져 내릴 것이다-.
같은 문장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머릿속을 웅웅 울렸다. 나는 십자가 위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말에 겁을 먹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중, 삼중 창으로 만든다는 얘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황급히 다현을 보며 물었다.
“다현아. 저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닿을 수 있을 거 같아?”
다현이 고개를 들어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생뚱맞은 질문에도 다현은 성의껏 답해 주었다. “잘하면 될 것 같은데. 의자랑 상자랑 이리저리 쌓고 하면….…”
중얼거리던 다현이 말을 멈추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효신아. 그 여자 적당히 처리하고 따라와.”
짧게 내뱉은 다현이 중앙 통로를 달려 단상 위로 향했다.
“이미 늦었다니까! 너희는 비참한 생의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뒤편에서 우리의 목덜미를 잡아채듯 들려왔다. 그러나 다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다현이 망설임 없는 걸음을 옮겼다.
중앙 제단 위에는 아직 용케 쓰러지지 않은 금빛 촛대 하나가 남아 있었다. 보폭 큰 걸음으로 직진하며 다현이 금빛으로 빛나는 촛대에 손을 뻗었고,
그걸 꽉 쥐어들어,
있는 힘껏 스테인드글라스를 향해 내던졌다.
번쩍이며 빛을 반사하는 촛대가 무표정한 성인들이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와 맞닿았고,
챙강-.
맑은 소리가 한 차례 울려 퍼졌다.
이내 수십 수백의 조각이 허공을 향해 터져 나왔다.
붉은빛, 푸른빛, 노란빛, 초록빛. 오색의 유리가 찬란히 머리 위로 부서져 내렸다.
나와 다현은 몸을 숙인 채 머리를 감쌌다. 몇 초가 지나자 후드득, 하고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흐릿한 빛 한 줄기가 보였다. 어슴푸레한 겨울 아침의 희미한 빛이 유리가 부서진 자리를 따라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다현의 얼굴에 그제야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
“깨진 부분 날카로우니까 조심하세요. 이제 손 놓습니다.”
나와 다현이 젊은 신자의 등을 뒤에서 받쳐 그가 의자 더미를 밟고 창문을 넘도록 도왔다. 창문 저편에서 이미 탈출한 다른 신자들이 읏차, 하고 힘을 주며 그를 잡아 주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신자가 창문을 넘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였다.
“효신아, 우리도 얼른 가자.” 내가 뒤돌아 효신을 불렀다.
효신은 쓰러진 ‘만물의 눈’ 여자와 남자를 나란히 바닥에 두고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전기충격기로 몇 번 달군 것만으로도 이미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충분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데, 효신은 그 둘의 몸 위에 작은 원목 장식장을 엎어 버리기까지 했다. 정신을 차리고 도망가면 안 된다나.
나는 효신이를 척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다현이 손짓하자 쭈그려 앉아 있던 효신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뒤에서 손이 뻗어져 나와 효신의 발목을 잡아챘다.
효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았다. 엉망이 된 여자가 쌕쌕대는 숨을 내쉬며 효신을 노려보았다.
“끈질기네 진짜.” 효신이 다리를 흔들어 여자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여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와중에도 힘이 어디서 났는지, 효신의 발목을 놓칠 듯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여자가 입을 열자 쇳소리에 가까운 힘겨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말했듯…… 우리의 성전은 끝이 아니니라. 우리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 앞에 너희는 언젠가 고개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효신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여자가 잇새 사이로 계속해서 내뱉었다.
“순수한 피가 지상을 덮을지어다. 그날이 되면 너희는 오늘의 죄업을 뼈저리게 후회…….”
“끝까지 기분 나쁘게 하네. 그냥 가려고 했는데.” 효신이 여자의 말을 자르며 돌아섰다.
몸을 낮추어 여자와 눈을 맞춘 효신이 차분하게 내뱉었다.
“너 기름 붓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쓰는 거야? 아니, 됐다. 물어본 시간이 아깝지.”
효신은 흰자위가 벌겋게 드러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자의 앞에 도로 주저앉았다. 지니고 있던 작은 가방을 열며 효신이 낭랑한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말은 왕이 된다는 뜻이지. ‘메시아’라는 말도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고.”
효신이 가방 안쪽의 지퍼를 열자, 화장품처럼 생긴 작은 유리병이 나왔다.
“향유를 부어 준다는 건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고. 성당에 오래 잠입해 있었으니까 이런 건 이미 다 주워들었지?”
효신은 화장품 병의 뚜껑을 열었다. 다시 보니 그건 핸드오일이었다. 향이 강한 제품인지, 뚜껑이 열리자마자 서너 걸음 떨어져 서 있는 내게도 장미 향이 스멀스멀 풍겨 왔다.
작은 병을 내려다보며 효신이 중얼거렸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가지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했었는지……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가만 보면 이효영이 선견지명이 있어.”
효신이 천천히 손에 핸드오일을 부어, 여자의 얼굴에 가져다 발랐다.
이마 한가운데에서 가슴팍으로.
왼쪽 어깻죽지에서 오른쪽으로.
핸드오일로 여자의 몸에 성호를 그은 효신이 몸을 일으켜 뒤편으로 향했다. 효신의 걸음이, 신자들이 기도를 드리며 밝히는 작은 초를 모아 둔 찬장 앞에서 멈추었다. 찬장에 놓인 성냥을 그어 작은 초에 불을 밝히며 효신이 말했다.
“그거 장미 향인데 어때? 네가 준비했던 장미 향이랑은 좀 다르지?”
여자가 조소하며 대거리했다. “어리석은 아이야, 이따위 도발에 내가 동요할 것 같-.”
효신은 그녀가 말을 끝맺을 틈을 주지 않았다.
“향유는 아니긴 하지만 대충 비슷한 거라고 치자. 어쨌든 오일이고, 좋은 향기도 나니까.”
알 수 없는 말에 여자가 입을 다물었다. 작게 일렁이는 초를 한쪽 손에 든 채 효신이 여자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효신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한테 향유 부어 줬다. 응?”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네.”
효신은 나긋나긋한 투로 덧붙였다.
“너도 기름 부음을 받았으니, 영광으로 알라고.”
그 말을 끝으로 효신이 여자의 머리 위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런 뒤 손에 쥐고 있던 초를 그대로 떨어뜨렸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헤집고 빠져나가기 직전, 효신은 뒤편 향해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놀리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원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의 말은 어쨌든 조금 다른 방식으로 현실이 되기는 했다.
기름 부으심 받은 자 앞에 효신이 고개를 조아려 주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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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완료 공지]
구제 대상 건 2의 명칭을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에서 ‘성 발렌티노 축일 테러 미수 사건’으로 변경함을 알립니다.
익숙한 알림 소리가 내 정신을 잡아챘다.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기억 사이에 파묻혀 있던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작전이 끝났다. 무사히.
나는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나흘 전의 내가 몸싸움을 벌이며 누적된 통증이 지금의 나에게도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켠 나는 검색창을 열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신중히 입력했다. ‘예성1동 성당’.
나는 맨 위에 있는 뉴스 기사를 누른다. 3일 전 작성된 기사다.
예성1동 성당 가스 테러 시도, 다행히 사망자 없어
어제 아침 (14일) 7시 경, 서울시 예성1동에 위치한 예성1동 성당에서 신자 2명이 건물 내에 유독 가스를 살포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가스 살포를 눈치챈 신자들이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으며, 피해 신자 중 일부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수송되었으나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어…….
그러니까, ‘시도’ 였다. 테러는 미수에 그쳤다. 긴 한숨을 내쉰 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어느덧 밤이 되었는지 사위가 어둑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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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신, 왜 울어?”
방으로 들어서는 효신을 보자마자 해솔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응? 아냐 아냐. 방금 트리거 써서 돌아와서 그래.” 눈가를 훔치던 효신이 우리를 보고는 손을 내저었다.
연수 형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놀랐네. 난 또 작전이 그렇게 힘들었나 했다.”
그 말에 눈을 비비던 효신이 곧장 대꾸했다. “힘들기야 힘들었지! 내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는데.”
“네가 몇 번이나 죽일 뻔한 거 아니고? 야 효신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 살벌하게 잘 털더라.”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걸터앉은 연수 형이 캔맥주를 땄다. 치익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해솔이 정색하며 연수 형을 쳐다보았다.
“형. 애 앞에서 지금……”
효신이 헛웃음을 쳤다. “오빠, 나 성인이야.”
연수 형이 맥주를 홀짝이며 끼어들었다. “넌 얘가 아직도 애로 보여? 얘가 나가는 작전마다 사람들이 개죽이 되는 걸 보고도?”
이번에는 효신이 정색을 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죠? 그냥 사람들이 아니라 범인들이지. 누가 들으면 내가 생사람 잡는 줄 알겠어.”
“그래도 굳이 힘 빼지 말지. 적당히 잘 묶어 놓기만 했으면 경찰이 알아서 했을 텐데.” 해솔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 말에 효신은 눈을 내리깔았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효신의 입에서 한결 낮아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냥 화가 좀 나서 그랬어. 어차피 연합에서 그 사람들 살려 둬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땐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한때나마 믿었던 종교를 가장하는 게 얄미워서 화풀이 좀 했어. 내가 성당을 막 좋아하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잠시 망설이더니 효신은 덧붙였다. “우리 언니가 성당 진짜 열심히 다녔거든. 용서하라, 네 이웃을 도와라, 서로 사랑해라, 이딴 말들 지겨울 정도로 잘 지키면서.”
그 작은 얼굴에 찰나간 묻어난 것은 그리움이었다. 그걸 우리 모두 모르지 않았다. 연수 형과 해솔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진이 쭉 빠졌는지 식탁 위에 엎어져 있던 다현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효신아, 잘했어. 이번에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래. 우리끼리만 갔으면 뭐가 이상한지 아무것도 몰랐을 거야. 어떻게 세례명으로 떠 볼 생각을 했어?” 내가 거들었다.
“그런데 바르바토스가 뭐야?” 연수 형이 물었다.
효신이 맥주 캔 하나를 자기 앞으로 끌어 오며 답했다. “악마 이름이에요. 솔로몬의 72악마…… 뭐 영화에도 많이 나오고 하는 그런 게 있는데.”
“지옥의 공작이 된 역천사……. 새 소리를 듣고 점을 쳐서 재물이 있는 위치를 알려 주는 악마. 뭐야? 세상에 이런 악마도 있어?”
그새 옆에서 핸드폰으로 검색 창을 띄운 연수 형이 텍스트를 따라 읽고 있었다.
“오빠 내 말 안 듣고 있죠?”
“아니, 궁금하니까 빨리 찾아봤지. 너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았어? 너도 어릴 때 성경 읽고 그랬어?”
“아뇨. 저도 영화에서 봤는데요? 사제들 나와서 단체로 구마하는 영화 있어요.”
효신이 감자칩을 입에 쏙 집어넣었다.
“아무튼 다음 작전에서는 나 꼭 빼 줘요.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그때 스테인드글라스 못 봤으면 어쩔 뻔……”
말끝을 흐린 효신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계속 찜찜했던 게 있어요. 이번 지침서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뭐가?”
“창문이 쉽게 깨지지 않는 재질이라는 말은 쏙 빼놓고. 소지품 검사 하니까 탈출용 소형 망치를 챙기래서 그대로 챙겼는데 그걸로는 어림도 없었고, 그놈의 소지품 검사는 하지도 않더만. 작은 환기 창이 있다는 말도 없었고 119 출동이 늦을 수 있다는 말도 없었고. 무엇보다,”
효신이 바삭, 하고 감자칩을 씹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언급은 요만큼도 없고. 사실상 그게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출구였는데도.”
몸을 일으킨 다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나도 그 생각 했어. 지침서가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 물론 단순히 조사 부족이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모두가 의아함은 느끼고 있었을 터였다.
해솔이 침묵을 가르고 연수 형을 향해 물었다. “형, 본부 측에 한번 문의해 보면 안 돼요? 담당 사전 조사관이 누구였는지. 지침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잖아요. 지침서의 내용이 유출, 훼손, 조작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지체 없이 본부에 문의하십시오, 라고.”
연수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그럼-.”
“하나 더. 본부에 이것도 같이 물어봐 줘요.”
다현의 차분한 목소리가 연수 형의 말을 막았다.
“곧 테러가 한 번 더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